엄마의 육아휴직
메니에르 병으로 인해 약을 복용하며 한때는 개선된 듯 보였으나, 엄마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습니다. 마치 한 기계의 부품이 고장 나면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다른 부분들 또한 문제를 일으키듯, 엄마의 몸의 여러 곳이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새벽, 가벼운 운동을 하던 중 무릎 관절 사이의 액체가 터져 낭종이 생겼고, 위염과 과민성 대장염의 괴로움은 날마다 엄마의 잠을 앗아갔습니다. 온몸에 다발적으로 염증성 피부 질환이 생겨나자, 엄마는 마치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건강이 점점 악화되자,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몇 달 간 지속된 통증은 엄마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엄마는 큰 병에 걸려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떨었습니다. 밤이 되면 잠은 더욱 멀어졌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감정은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자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엄마는 모든 감정이 생존을 위해 자동으로 둔감해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큰 병이나 사고로 인해 죽게 된다면, 그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것 같았고, 일상생활조차 힘겨운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엄마 곁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더욱이, 아이를 돌봐주셨던 시어머님마저 건강에 문제가 생겨, 당장 다른 돌봄이 필요했습니다.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큰아이와 아직 어린 둘째를 동시에 돌봐줄 사람을 찾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복직 후 결혼한 팀원들이 하나둘 떠나고, 결국 엄마는 혼자 팀에 남게 되었습니다. 매번 병원과 아이들 문제로 연차를 쓰는 일이 눈치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배우기 전부터 집중하지 못하고 업무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고, 기억력 또한 저하되어 결정을 내리는 일도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엄마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들은 엄마를 부담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엄마는 어느새 회사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는 팀장 승진을 위한 파견 근무 제안을 받았습니다. 결혼 전,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해외 파견을 희망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엄마 상황을 돌아보면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회사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없었던 엄마는 마지막 육아휴직을 결심했습니다. 함박눈이 소복히 내리는 어느 날, 마지막으로 회사의 문을 나서는 그 순간, 하얗게 쌓인 눈길 위에 엄마의 새로운 발자국이 하나하나 남겨졌습니다. 그 발자국들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향한 작은 걸음과도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