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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18. 2023

코흘리개가 처음 고개 떨군 날

마음아, 오늘은 어때?

같이 가자는 내 말을 듣고서도 언니는 벌써 대문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네

가방을 미처 메지도 못하고 방에서 황급히 뛰쳐나왔건만 덩그런 대문소리만 휑하니 남았네

"같이 가, 같이 가" 다급히 외치던 나를 남겨두고서 언니가 혼자서 학교에 가버렸네

코흘리개 1학년 새 학기 첫날, '혼자 어찌 학교 갈까' 막막함에 휩싸여 그만 울음보가 터져버렸네

나의 앙칼진 울음소리에 아버지는 "가시나가 어데서 이리 우노" 노발대발하며 역정만 내셨네


이리 흘깃 저리 흘깃하시던 아버지는 팔을 높이 들더니 순간 내 머리를 한 대 내리치셨다.

마루 끝에 서있던 나는 축담으로 꼬꾸라져 입에는 붉은 피가 낭자했다. 

눈물 콧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서러운 울음소리가 목구멍에 껄떡껄떡 걸렸다.

옆에 있던 엄마와 할머니는 놀라서 부랴부랴 나를 일으켜 세우며 달래셨다.

피와 코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쳐내고, 나는 할머니 뒤를 따라 고개를 떨구고 학교에 갔다.



내 유년기 가장 가슴 시린 기억이다.

초등학교 1학년 3월, 갓 입학했을 때로 기억된다.

세 살 터울인 바로 위 언니는 같이 가자고 하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지 혼자서 팽 내빼버렸다.

8살이 되도록  엄마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대문 앞 골목길이 전부인 양 살았던 내가 

구만리 같은 등굣길을 혼자 걸어 갈러니 눈앞이 아찔하고 깜깜하여 서글퍼서 울음보가 터져버린 것이다. 

내가 우는 게 눈꼴사납다고 나를 때리신 아버지도, 나를 두고 혼자 학교 가버린 언니도, 옆에 서 계셨던 

엄마와 할머니도, 한 없이 여리기만 했던 나 자신도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쉰 고개를 한참 넘긴 지금도 이 장면이 떠오르면 그때 목구멍에 걸려 있던 서러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마치 생선 가시가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따끔거리며 서럽게 아프다.

지금껏 아물지 않고 있는 이 상처, 나의 첫 옹이.

더 늦기 전에 오늘은 나의 깊은 옹이에 연고를 발라야겠다.


아버지, '그만 울어라, 걱정 말거라' 하시며 토닥토닥 다독여줬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언니야, '언니랑 같이 가자'며 내 손 잡고 오손도손 학교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엄마, '동생 데리고 같이 가라'며 먼저 가는 언니 싸개싸개 붙잡아줬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혼잣말로 수 없이 읊조리며 깊게 파인 옹이가 아물도록 연고를 살살 펴 바른다.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마음아, 오늘은 어때?'라고 자꾸자꾸 물어본다.


내 마음이 '괜찮다'라고 응답할 때까지 연고를 바르며 쓰담 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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