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무슨 말이냐면
내 고향은 사투리가 찰졌다.
학교를 핵교라 말하고 '길'은 '질'로, 미경이는 미갱이로 부르는 건 여사였다.
길에서 동네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꾸벅하면,
할머니 "누고? 미갱이가?, 핵교 댕겨오는 질이가?"라고 하셨다.
삼거리 처녀다방을 분기점으로 하여 쌀을 살로 발음하다면 쌍자음에 취약한 지역이라는
고등학교 지리선생님의 예리한 분석표까지 받았던 곳이다.
이뿐이랴, 어와 으를 구분 짓지 못하고,
증인을 정인으로 발음하여 웃지 못할 해프닝이 종종 발생했다.
앞뒤 자르고 눈을 감고 소리만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많은 곳이었다.
아지매 뭐 하십니꺼, 그것 제가 했어예, 말끝에 '꺼'와 '예'를 붙여 말하였다.
뭐라 카노, 뭐라꼬 카더노, 카더라 방송을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시청할 수 있었다.
가가 가가? '가'자 하나로도 문장을 끊임없이 생성할 수도 있다.
언어와 환경과의 관계를 좀 더 발전시켜 연구한다면 학술 논문지에 충분히 실릴법한 흥미진진한 곳이다.
서울사람들은 우리의 대화를 듣고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답답할지 몰라도
'툭'하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소리'로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자랐다.
어느 날, 학교에서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고 온 아들이 '짜매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었다.
척하면 삼천리다. 안 봐도 상황이 훤하게 그림이 그려져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 말을 한 분이 나이가 좀 있겠구나? 엄마처럼 사투리 색이 짙은 곳에서 살았나 보네" 하니
어떻게 알았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선생님이 품목별로 분리된 재활용품 자루를 짜매라 했는데,
가뜩이나 일머리 없는 우리 아들, 처음 들어본 말이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한참을 벙쪄있었다 하였다.
소심한 우리 아들 무슨 말인지 되물어 볼 용기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더니,
요즈음 아이들은 어쩌고 저쩌고 훈계를 잔뜩 늘어놓으셨는데
그조차도 뭐라 하시는지 못 알아먹고 있다 눈치껏 아주 열심히 따라 했다고 하였다.
아는 만큼 아는 대로 들리는 순진무구한 어린 나이였을 때,
가전제품 수거 차량의 확성기 소리 '세탁기 수거합니다'를 '촉촉한 수박입니다'로 의역하여
웃음꽃을 피워주던 천진난만한 아들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느닷없는 사투리에 불통을 맞고 처음 고개를 떨구었다고 시무룩해하였다.
50여 년 전, 여름은 확실히 아니었고 봄인지 겨울인지가 오는 길목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윗집, 아랫집, 옆집, 언니, 동생 가릴 것 없이 동네 아이들 집을 나와서는
삼삼오오 짝을 이뤄 밥때가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동네를 뒤지고 다니며 노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이 들리는 것 같다며 동네 언니는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다들 조용히 해 봐'라는
주문으로 우리를 얼음으로 만들어 놓고, 소리도 없이 지나가는 바람소리 마저 잠재우고 귀를 쫑긋 세웠다.
언니의 이름이 희미하게 들리자 언니는 겁을 잔뜩 먹고 허겁지겁 집으로 튀어갔다.
우리도 노는 것을 파장하고 산기슭에서 언니를 쫓아 뛰어서,
대문 밖 골목길에서 언니집 안을 기웃기웃하며 엿보고 있었다.
'할 일도 많은데 집에 싸개싸개 들어오든가 안 하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가, 부르는 소리 안 들리더나?'며
아지매 언니를 불같이 나무랐다.
아지매가 당장 언니를 잡아먹을 듯이 얼굴을 바짝 대고 말을 하여 얼마나 무섭던지 오줌을 지릴 뻔하였다.
언니 울먹이며 '너무 멀리 있어서 부르는 소리 못 들었다'라고 사실을 말하자
아지매 '뭐라꼬 자꾸 시부리노, 안 닥치나, 아가리를 찢어버릴 쁄라마'라고 닦달을 하였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었지만 아지매의 성난 표정에 기겁을 하여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가,
나 또한 엄마에게 '아가리'가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숨을 헐떡이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저녁 준비로 분주한 엄마를 도우며 부엌 주변에 있던 언니들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하! 그런 뜻이었어' 언니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고서,
나는 갖춤과 버림을 반복하며 어휘력을 한 뼘씩 확장시켜 나갔다.
참고로 나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지만 사투리와는 조금 동 떨어져 자랐다.
내가 듣고 자란 말은
가끔 저녁에 한두 시간 티브이 방송,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의 정규화되고 표준화된 말이 9할을 차지한다.
모든 것을 아껴 써야 하는 살림살이로 말미 삼아 심지어 '말'마저도 극단적으로 근검절약하시는 부모님 덕에
그나마 사투리 영향을 덜 받았다는 웃픈 사연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었셨는데 상담 시간에
"미경아, 너는 다른 곳에 살다 이사 왔니? 말씨가 이곳 아이들과는 다르게 사투리를 쓰지 않네" 라며
출처가 불분명한 내 말투를 보고 의아해하셨다.
듣고 자란 말로 체화된 나의 말은 말끝이 정리정돈되어 또래들보다 얌전한 편이었다.
중학교 이후로 줄곧 객지 생활을 했던 나는 고향땅을 밟을 때면 사투리를 사용하지,
평소엔 거울 앞에 스리슬쩍 대어 본 외출복 같은 말을 구사한다.
쌍자음을 발음할 때에는 뜸을 들인 후 천천히 또렷하게 말하는 등 특별히 신경을 쏟는다.
억양은 지방색이 묻어나지만, 표준어가 지향하는 교양 있어 뵈는 말을 사용하러 나름 공을 들인다.
자연스레 주양육자의 말을 모방하고 학습하는 우리 집 아이들도 비교적 순화된 언어 환경에서 자랐다.
그리고 요즈음은 말도 세대교체가 되었는지 바깥에 나가 보아도 사투리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더욱이 젊은이들이 쓰는 말은 서울이든 지방이든 거기서 거기 별반 다를 게 없으니
사투리가 귀에 익지 않은 우리 집 아이들, 조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도통 못 알아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집 사람들, 한데 모이면
한 집안사람임에도 서로의 말을 몰라 동문서답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곤 한다.
가정마다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나 상황별 표현법이 조끔씩 다를 것이다.
평소에 자주 접하는 단어가 아니면 같은 나라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귀에서 자꾸 튕겨나간다.
하물며 기삿거리 하나 볼라치면 전문용어는 왜 그리 많은지, 여기에 신조어나 말줄임표현에,
게다가 우리말이 있음에도 외국어가 뒤죽박죽 혼용되어 있어 뭔 소린지 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읽는다.
노안으로 눈도 침침한데 별나게 생긴 단어의 참뜻을 파악하느라 시간을 들이붓고 앉았으니,
문해력이 한참 밑도는 바일터다.
나는 아직도 '문상'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슬픔을 등에 지고 위로를 건넬 생각부터 먼저 한다.
처음 각인된 이미지를 변환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말이 천리를 달리며 천차만별 분화되어 대화의 흐름과 몰입을 방해하니,
나와는 다른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면 언어번역기 하나쯤은 갖춰야 할 모양새다.
아들아, 이제 너도 알 터이지만 '짜매다'는 '잡아매다'의 방언으로 흩어지지 않게 한데 매다는 뜻이다.
재활용품 자루 윗부분에 있는 끈을 세게 잡아당겨 친친 감아서 매는 게 짜매는 것이다.
처음 들어 봐서 뭔 말인가 싶어 많이 당황했지?
엄마는 자취생활 할 때,
외할머니가 광목으로 만들어주신 조그마한 쌀자루에 쌀 한두 되 넣어 꽁꽁 짜매어 가방에 넣고 다녔었다.
그렇게 또 배워가는 게 삶이다.
아들이 사투리 한 단어를 걸쭉하게 배운 날의 깨달음은,
너도 나도 우리말 고운 말 바르게 사용하여 세대 간의 소통을 넓히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