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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r 11. 2024

포복절도 심부름

안돼~, 두부를 살려야 해

하나 하면 할머니가 찐빵을 찐다고 랄랄라

둘 하면 두부 장수 종을 친다고 랄라라

셋 하면 새색시가 화장을 한다고 랄랄라



우리 집 앞에는 나를 보면 언제나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인정 많던 아지매가 하는 점빵이 있었고,

우리 집 뒷집 건너에는 길모퉁이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소담하게 둘려진 담뱃집이 있었고,

담뱃집 맞은편에는 이발소가, 이발소 옆에는 나와 이름이 같은 동생네가 하는 점빵이 있었다.

그리고 산아래 걸쳐진 오르막길에는 

방천길을 따라가거나, 친구집이 있는 안골목으로 들어가거나 해도 통하는 두부 장수 집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우리 동네가 깊은 골짜기라는 것을 모르고 세상의 전부라는 어마무시한 착각 속에 살았다.

들로 산으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자연의 때구정물을 새까맣게 묻히고 살았다.

지천에 늘린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과 귀가 호강하며 희희낙락 살았다.



심부름을 떠나요

나는 오늘 심부름을 가요

엄마 없이 멀리멀리

처음이라 쪼금은 두근두근

돈은 주머니에 쏙 넣고 

뭐 뭐 사는지 기억해

자 이제 출발!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심부름을 하였다.

양은 주전자 들고 앞집에 쫄래쫄래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고,

담뱃집에 타박타박 가서 '청자', '솔' 담배를 한 보루씩 사 오기도 하였다.

이발소 아재가 면도칼을 기다란 가죽띠에 씩씩 다뤄 아버지 목에 겨눌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이 질끈 감겼다. 


제삿날과 명절에는 두부 사 오는 심부름을 하였다.

셈을 능숙하게 하지 못할 때부터 하였다.

엄마가 천 원, 오백 원 지폐를 주시며 '주리(거스름돈)를 얼마 받으면 된다'라고 하셨고,

두부집 아지매가 거슬려 주시는 대로 주리를 받아 엄마에게 드렸다.

은양푼을 들고 폴짝폴짝 껑충껑충 뛰어갔었다.


한 날은 받아야 할 거스름돈보다 내 손에 많이 쥐어져 고개를 갸웃갸웃 수상히 여기며, 집에 돌아와서는

두부집 아지매가 주리를 이렇게 내어 줬다며 두부 값이 맞게 계산되었는지 바로 확인 작업 들어갔다.

백 원하던 두부 값이 백오십 원으로 인상되어 한동안 밥상물가 시끌벅적하게 입에 오르내렸기에,

값이 내렸나 했었다.

아무래도 계산을 잘못한 것 같다고 엄마가 아지매를 만나 그 얘기를 하며 차액을 돌려드렸더니,

두부집 아지매 그 일을 가지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칭찬을 하시지'하며 부끄러워하였다.

별일도 아닌 것을 눈만 마주치면 칭찬을 자자하게 늘어놓아 주위 사람들 보기 민망하여 

한동안 아지매를 마주치지 않으러 살금살금 다녔다. 



명절에는 두부 사러 양은 양동이를 들고 덜래 덜래 덤벙덤벙 뛰어갔다.

우리 할머니 예닐곱 살 때 내 뛰는 모습을 보시고 '벌 날아오듯이 달린다'라고 하셨다.

두부집은 동네 외곽에 위치하여 대나무숲 길을 지나 오르막을 타야 했다.

갈래길 옆으로 골짜기 계곡물이 졸졸졸 내려와 방천을 따라 흘러 강으로 내달렸고

골짜기 산 중턱 낭떠러지에는 '당산집'이 꿀밤나무에 둘러싸여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혼자 이 길을 지날 때면 왠지 모를 스산함에 벌 날듯이 뛰었다.


까치 까치설날에 두부를 서너 모 사서 양동이에 차곡차곡 담아, 삐거덕 나무 대문 나서자마자 냅다 달렸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내리막길 줄행랑을 치듯 달렸다. 

'틱 탁' '앗!' 이게 웬 말이냐!

그만 돌부리에 걸려 철퍼덕 엎어짐과 동시에 양동이도 챙그랑 패대기가 쳐졌다. 

그 찰나에 머리에 스치는 생각은 단 하나, 포동동한 두부 구하기였다.

'안돼, 두부를 살려야 돼'

나의 절규에도 두부 2모가 양동이를 뛰쳐나와 크고 작은 흙알갱이로 분칠을 하고 말았다.


무릎은 까이고, 손바닥도 허연 분칠을 하여 선홍빛 붉은 피가 뽀작뽀작 피어올라 따끔거렸다.

괜찮다, 이내 몸은 괜찮다. 부서져도 괜찮다.

달리기 쫌 한다고 방심했던 나에게 눈 흘기는 것도 잠시

나의 신경은 오직 두부, 두부에 몰려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당장 숨이 넘어갈 듯한 두부를 이대로는 집으로 데려갈 수 없으니 심폐소생을 해야 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주위를 둘러보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계곡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내려갔다.

살얼음 밑으로 계곡물이 졸졸졸 흘렸다.

조심조심 흔들어 두부에 묻은 까맣고 누런 흙을 닦아내었다.

손이 빨갛게 탱글탱글 부어올라 이내 뻐덕뻐덕 고드름이 맺힐 것 같았지만 

'두부를 살려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참고 참는 '들장미 소녀 캔디'가 되어 정성 들여 씻었더니 

말 안 하면 모르는 원래 모양 착한 두부가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렷다. 

흙바닥을 구른 네모 난 두부,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은 천지신명님과 조상님이 도운 것이리라.

우리 집 대문밖까지 다리를 절룩거리며 조심조심 얌전히 걸었다.


"엄마, 두부 사 왔어, 어디에 둘까"

솥뚜껑에 노릇노릇 두부전 다 구워질 때까지 마음 졸이며 있었다.



그날의 진실, 미숫가루 사건과 함께

나만 아는 비밀이야기 2탄 포복절도 심부름입니다.


* 오른쪽 길 오르막을 올라 모퉁이를 돌면 막다른 길 두부 장수 집이 나왔어요.

  왼쪽 길을 오르면 하늘과 맞닿은 산동네로 이어지고

  왼쪽 길 옆 골짜기에는 계곡물이 사시사철 흘렸습니다.

  골짜기 깊숙한 저기 저 안쪽에서 계곡 물 떨어지는 소리가 치적치적 차작차작 음산하게 새어 나왔어요.

  옛날 집집마다 우물이 없던 시절 마을의 식수원이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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