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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copaik Dec 10. 2024

비운의 오페라 극장 - Semperoper

Sachsische Staatsoper Dresden





독일 작센 주에 속한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하우스(Sachsische Staatsoper Dresden)를 젬퍼오퍼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극장의 설계자인 고트프리드 젬퍼(Gottfried Semper)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1841년 완공된 이극장은 1869년 큰 화재로 소실되어 1878년에 재 건축된다.


1841년 4월 3일 베버의 "오이리안테"로 시작된 오퍼는 초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과 그리스의 코린토 

양식까지 가미된 건축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극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베버와 바그너의 

수많은 명작들이 작곡가의 직접 지휘와 세계 最古의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트 카펠레가 직접 반주를 

맡아해 유럽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 하우스로 인식되었다.

 

1869년 발생한 끔찍한 화재로 극장이 소실되자 드레스덴 시민들이 빠른 재건축을 희망하면서 재건축 역시 

젬퍼가 맡기를 주문했지만 1849년에 발생한 작센 혁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젬퍼는 추방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만프레드가 아버지를 대신해 설계를 하고 재건축을 지휘한 끝에 1878에 완공시킨다.  

설계도 변경이 있어 후기 르네상스 스타일로 건축된다.

Feuer von der Semperoper in Dresden (1869) – Vektor Illustration



Dresden. Semperoper. Straßberger. Erscheinungsdatum: 1878


재건축이 완료되자 이 극장은 드레스덴 바로크의 가장 우수한 상징물이 되고 현관의 천정에는 디오니서스 상4 마라의 사자가 끄는 마차의 조각상과 괴테, 쉴러, 셰익스피어, 소포클레스, 몰리에르, 유리피데스 등 저명한 문화예술인의 모뉴먼트가 장식되어 있다. 극장 로비 곳곳에는 작가 에른스트 리첼 에른스트 율리우스 하넬 등의 회화 작품이 걸려있다. 객석수 1,800석으로 재개관한 젬퍼오퍼는 화재를 막기 위해 돌과 대리석을 많이 

사용하여 건축하였다.

 



이 비운의 극장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 연합군의 드레스덴 대 공습으로 인해 다시 파괴된다.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항공대가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드레스덴에  청천벽력-Thunderclap이라는 작전 

이름하에 감행된 폭격은 영국군 722대의 폭격기와 미국군 527대의 중폭격기가 3일간 3,900톤 이상의 폭탄을 쏟아부어 재의 수요일인 2월 14일 이른 아침 도심부와 알테슈타트를 포함한 지역이 1,500도가 넘는 온도의 화염 폭풍에 휩싸인다.

 

모든 건물의 90퍼센트  이상이 파괴되었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로 이름을 떨쳤던 드레스덴은 잿더미로 변하고 아름다운 젬퍼오퍼와 프라우엔 교회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독일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3월 22일에 집계된 사망자 수는 약 25,000명이라고 했지만 1966년에 재건을 위한 공사도중에 2,000여 구 희생자가 

한꺼번에 발견되었고 통독 후 1989년에 새로운 빌딩을 건설하기 위해 기초 공사를 하던 중 또다시 폭격으로 희생된 많은 시신을 발견한다. 이 폭격으로 인해 숨진 사망자만 적게는 35,000명에서 10만 명 이상 숨졌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사람들은 유서 깊은 도시는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파리와 로마처럼 유서 

깊고 역사 있는 도시인 드레스덴에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고 또 나치가 거의 패전이 명확해진 상황의 때라 그곳에 있는 피난민들은 연합군의 폭격을 전혀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패전의 눈앞에서 군사적으로나 군수면에서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명분은 이치에 맞지 않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드레스덴 폭격을 명백한 전쟁 범죄로 규정했고 영국의 역사학자 

프레드릭 테일러도 "드레스덴 공습은 터무니없는 것이고 엄청나게 후회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말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23인의 현악기을 위한 그의 작품 "Metamorphosen"에서 "이 세상에서 최고음악의 성지인 괴테 하우스(바이마르)는 파괴되고, 내가 제일 좋아한 드레스덴, 바이마르, 뮌헨은 모두 사라

져버렸다"라며 절규했다. 제1차 세계 대전도 겪은 그였지만 당시에는 참호전과 국지전을 중심으로 전쟁이 

벌어진 반면 이렇게 도시 전체와 시민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참혹하고 무자비한 경우는 없었기에 그 슬픔의 강도는 더욱 컸을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의 앞서 말한 스케치북에 음악과 결부된 것으로 만년의 테마인 ‘온순한 풍자시집

(Zahme Xenien)’의 제7집에서 2편의 시를 적어 넣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자신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매일매일 결국은 밖으로 향하여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바라는지를 분명히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실제로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또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말 그날이 손길을 뻗쳐 오기를 이성을 갖고 믿으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지나가고, 마지막에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10, Dezember,  2024.  wien.   franciscopaik.   


 



드레스덴은 이 공습으로 즈빙어 궁정, 프라우엔교회와 함께 젬퍼 오퍼를 잃었다. 젬퍼 오퍼는 건물 외벽만 

남겨 놓고 몽땅 타버렸다.  겨우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응급조치만 한 채 20년 넘게 방치돼 있었다.

외벽은 살리면서 내부는 현대식 오페라극장으로 새로 짓자는 의견이 있는 가운데 1975년 빈(wien)의 한 

도서관에서 처음 설계자인 Gottfried Semper의 설계도 원본이 발견되면서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한다는 

방침이 결정된다.

 

젬퍼 오퍼는 동독시절 1977년 6월 24일에 공사를 시작해서 1985년 2월 13일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무대에 올리면서 재개관을 한다.



세계적인 건축 음향학자인 레오 베라넥이 오페라 지휘자 21명에게 세계에서 가장 음향이 좋은 오페라 극장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1위는 테아트로 콜론(아르헨티나)이 공동 2위는 이 젬퍼 오퍼와 라 스칼라가 차지

했다. 좋은 음향을 가진 젬퍼 오퍼는 오페라 공연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드레스덴 카펠레가 콘서트 공연장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콘서트 때는 음향판을 따로 설치하여 홀의 어쿠스틱 질을 더욱 

높인다.


- 젬퍼 오퍼에서 초연한 오페라와 연주곡 - 

Wilhelm Richard Wagner : 리엔치 (1842년),  방황하는 화란인 (1843년),  탄호이저 (1845년) 


Richard Strauss : 

살로메 (1905년),  엘렉트라 (1909년), 장미의 기사 (1911년) 알프스 교향곡 (1915년),  인터메조 (1924년), 이집트의 헬레나 (1928년) 아라벨라 (1933년), 그림자 없는 여인 (1935년), 다프네 (1938년)


슈만 : 피아노 협주곡 a_moll (1845년)

뒤카 : 아리아드네와 푸른 수염 (1907년)

블로흐 : 멕베스 (1910년)

부조니 : 파우스트 박사 (1925년)

힌데미트 : 카르디약 (1926년)




2002년 젬퍼는 또 한 번의 시련이 온다. 유럽의 대홍수로 엘베 강이 범람하면서 강가 바로 옆에 있는 극장이 

물에 잠겼다. 전 세계에서 성금이 답지하면서 복구공사는 순조롭게 끝이나 그해 12월 재개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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