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카시아 Sep 18. 2022

시험관 1차 시작, 첫 난자 채취

인공수정 3회 차를 마무리하고, 잠시 쉬어가는 기간에 미루고 미루었던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2차 접종을 한 지 2개월이 채 안되었을 때 처음 혈변을 봤다.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넘겼는데 어느 새벽녘, 복통이 심해 응급실에 갔다. 허리를 피지 못할 만큼 아픈 와중에도 나는 ‘임신 가능성’과 ‘자궁외 임신’을 언급했고, 소변검사부터 받았다.

당연히 임신은 아니었고, 복부 CT와 내시경을 통해 ‘허혈성 대장염’을 진단받았다.

일주일간의 입원기간 중 금식을 하며 염증 수치를 떨어뜨린 뒤 퇴원을 했지만, 배가 시도 때도 없이 아파서 다른 병원에서 다시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내시경으로 본 내 대장에는 희끗희끗 염증이 서려있었다. 용종을 몇 개 제거하고, 약을 복용하며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몸이 괜찮아졌을 때쯤 봄이 왔고, 시험관 임신 성공률이 높다는 병원으로 옮겼다.

이미 오랜 배란 유도 기록과 인공수정 실패 이력이 있어 시험관 진행이 바로 가능했다.

몸이 아팠을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생리 유도 주사부터 시작했다.

주사를 맞은 지 10일 만에 생리가 시작되었고, 생리 시작 이틀 차부터 본격적인 시험관을 진행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시작 당일 보건소에 난임부부 지원 신청도 했다. (신선 1차 110만 원 지원 가능)


맨 처음 해야 하는 것은 난포 성숙이다.

난포를 많이 자라게 하는 것은 인공수정과 동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인공수정은 ‘페마라’를 복용하며 2~3개의 성숙한 난포를 자라게 했었는데, 시험관은 더 많은 난포를 자라게 하기 위해 ‘고날 에프’라는 주사를 맞아야 했다.

처음 놓는 자가주사였어도 무섭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위치를 잘못 잡았는지 주사부위에서 피가 나고 아팠지만, 놓으면 놓을수록 안 아프게 놓는 방법을 터득했다.

주사를 맞는 도중 몇 차례 병원에 방문해서 난포가 자랐는지 확인한 뒤, 채취일을 잡는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난임 병원의 운영 시간은 8시~16시이지만, 나의 업무 시간은 8시~17시이기 때문에 무조건 반차를 써서 병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시험관을 진행하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알릴수록 나의 결과를 궁금해할 사람들이 많아지기에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므로.. 상급자에게 나의 사정을 설명했다.


“시험관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유 참 고생 많겠다.. 뭐 필요한 게 있니?”

“병원을 2~3일에 한 번씩 가야 하는데, 제가 원하는 날 가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지정해주는 날 가야 해서요.. 갑자기 반차를 쓸 상황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그래~말해줘서 고맙다. 그런 것 걱정하지 말고 부담 없이 결재 올려 괜찮아. 잘 되길 바란다~”

생각보다 섬세한 상급자는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주었고, 진행과정 내내 편하게 반차와 연차를 사용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꼬박꼬박 주사를 잘 맞았더니 어느새 난포 채취 직전이 되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었던 나는 난포가 정말 많이 자랐다. 채취 직전에 본 초음파에서 담당 의사 선생님은 20개 이상 채취가 예상된다고 말해주셨다.


친정 부모님께는 이 모든 과정을 말씀드렸지만, 나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시댁에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채취일 3일 뒤에 가족 행사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시댁에도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시어머님은 ‘젊은데 왜 벌써 그런 걸 하니~?’라고 재차 물으셨고,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젊어서 선택한 거예요^^ 나이 들면 제가 선택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제가 선택할 수 있어요. 그래야 수정될 확률도 높고, 건강한 아이가 만들어져요. 이제 마냥 젊은 나이도 아니고, 남편이랑 같이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괜히 속이 쓰렸다. 남편에게 말하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고, 속이 좀 상했다..


채취 당일, 실제로 채취된 난포는 49개였다. 난포가 자라는 동안 가스가 가득 찬 듯 아팠고, 살짝만 건드려도 아팠는데 그럴 만도 했다… 그중 성숙 난포 33개였다.

(미성숙 난포가 남아있으면 복수가 차기 쉽다고 하셔서 모든 난포를 다 채취하셨다고 말해주셨다.)

전신마취 후 채취를 했기 때문에 채취 당시의 느낌은 모르겠다.

생에 첫 산소 호흡기를 끼고, 마취제가 투여된 뒤 속으로 ‘하나, 둘,,’까지 셌던 기억만 있다. 채취 후 회복실에서는 생리통 정도의 통증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할만하네’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마취가 풀린 이후 5일 정도는 걷기 힘들어서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녔고, 웃거나 말하면 배가 많이 당겼고, 아팠다. 아픈 와중에도 복수가 차지 않도록 이온음료를 계속 마셨다.

당분이 높지 않아 시험관 하는 사람들에게 유명하다는 이온음료를 한 박스 사서 거실과 침대 위에 두고 쉴 새 없이 마셨다. 출근을 해야 했기에 출근길에 3병을 들고 가서 모두 마시고 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다행히 복수는 차지 않았고 일주일 정도만에 회복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시험관 진행 과정을 통틀어 채취 후 회복 기간이 가장 아프고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많이 채취되었기 때문에 난소가 부어서 ‘신선 이식’은 불가능했고, 동결만 가능했다.

33개의 성숙 난포 중 21개가 수정과 3일 배양에 성공했다.

3일 배양까지 성공한 21개의 수정란 중 10개는 5일 배양까지 진행했는데, 살아남은 건 1개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3일 배양 10개, 5일(6일) 배양 1개를 동결시켰다.


채취가 끝나면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110만 원은 모두 소진된다. 11개의 수정란들을 1년간 보관한다는 데 동의하고, 병원에 **만원을 추가로 지불했다. 1년 단위로 최대 5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5일배양 등급 (출처: 네이버)

* 3일 배양 등급 기준 : 1~3, 1등급이 제일 좋음

* 5일 배양 등급 기준: 1~6 + ABC

   -6등급이 제일 좋음, 2등급부터 양호한 상태

   -A가 제일 좋음, 숫자보다 영어 등급이 더 중요

     ex) 5C보다 3B가 더 좋은 것


국가에서 난임부부에게 지원해주는 금액은 매우 적다.

지원금액뿐만 아니라 횟수에 한도가 있다. 심지어 지원 대상을 소득 수준으로 나누어 구분해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각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소득 수준을 보지 않고 지원해주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1인당 출산율이 1명도 채 안 되는 나라인데, 아이를 낳고자 하는 부부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채취 즈음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내가 가장 집중해서 본 부분은 난임 부부 지원 정책과 출산, 육아 정책이었다.

책자를 뒤적여도 시원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고, 검색을 통해 상세 내용까지 봐보았지만 뭐랄까… 그저 허울뿐인, 빛 좋은 개살구처럼 그럴듯하고 두루뭉술한 말만 갖다 붙여 놓은 느낌이었다.

내가 가진 고민을 덜어주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고 싶었는데, 그들에게는 나의 고민이 주요 안건이 아니라는 것이 씁쓸했다.


어쨌든 이렇게 채취가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수정되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채취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것이 제일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험관을 시작하기에 앞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