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취 후 첫 생리가 나오면 병원에 방문하라고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두 번째 생리가 시작된 뒤 병원에 방문했다.
(첫 생리는 양이 어마어마했고, 생리통도 극심했다.)
그 사이 생전 하지 않던 운동에 발을 살짝 담가 보았다.
남편이 오랫동안 사고 싶어 했던 닌텐도 스위치 링피트를 샀는데, 남편보다 내가 더 즐기며 꾸준히 운동했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한 건 운동 축에도 못 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름 진지했다.
링피트는 유산소와 근력 운동이 다 된다. 조금 유치해 보이지만 게임 속 난관을 헤쳐나갈 때는 나름 재밌고, 남편의 캐릭터보다 더 높은 레벨을 유지하고 싶은 승부욕에 불타올라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을 했다.
이 모든 것을 이기는 더 큰 장점은 나 같은 집순이에게 최적화된 운동이라는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자체가 귀찮고 싫은 나는 집에서 나갈 필요 없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이식을 앞둔 두 달간 남편은 건강식을 만들어줬고, 배달 음식을 조금 줄이고, 운동을 했다.
또, 인공수정 마무리부터 시험관 진행까지 반년 정도 쉬는 기간 동안에도 임신 테스트기는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채취 후 두 달간은 임신 테스트기의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채취도 많이 되었고, 내가 준비되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던 것 같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 정도인 것 같다.
이른 여름휴가의 끝자락, 두 번째 생리가 시작되었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생리 이틀째 방문했는데, 방문일부터 ‘프로기노바’ 알약, ‘프롤루텍스’ 주사, ‘유로게스탄’ 질정을 처방받았다.
사람마다 처방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위와 같았다.
- 식후 프로기노바 1알씩
: 처음에는 하루 3알(식후)이었지만, 중간에 수치가 낮다며 저녁에는 2알을 먹게 되었다.
- 오전 중 프롤루텍스 주사
- 취침 전 유로게스탄 삽입
난자 채취 전에 맞던 주사처럼 2주 정도만 진행하면 될 줄 알았던 이 루틴은 이식 후 임신이 확인된 이후에도 꾸준히 지속됐다.
매일 오전 다섯 시 오십 분. 평소보다 10분 일찍 울리는 알람에 눈을 부비며 손을 씻고, 뱃살을 잡고 프롤루텍스 주사를 놨다. 처음에는 주사를 맞은 곳이 땡땡 부어올라서 다음날엔 반대쪽에 맞았는데, 주사를 맞을수록 부어오르는 것이 없어서 헷갈렸다.
주사 놓는 부위는 배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혈관이 모여있다는 배꼽 주변을 피하고, 배꼽 아래쪽으로 살이 많이 잡히는 곳에 놓으면 아프지 않다.
원래 나의 취침 시간은 12시~1시였는데, 이식을 준비하며 10시 30분으로 당겼다.
임신 호르몬이 밤에 활발히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시간에도 알람을 맞춰두고 매일 유로게스탄 질정을 넣었다. 손가락으로 직접 넣는 것이라 손톱을 바짝 깎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약을 삽입했다. 약은 흡수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므로, 그전에 흘러나오지 않게 바로 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약을 넣고 남편과 침대에서 수다를 떨다 잠에 들곤 했다.
넣은 약의 껍질은 다음날까지 조금씩 흘러나와서 속옷을 적신다. 찝찝하지만 패드를 자주 갈아주고, 집에 와서 바로 씻는 수밖에 없다.
식사 중간중간 먹은 프로기노바까지, 모든 것은 다 호르몬이다. 아기가 잘 착상될 수 있도록 내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호르몬 때문에 예민해지거나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식 전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몇 개를 이식하느냐 였다.
나는 만 34세 미만이기 때문에 3일 배양의 경우 2개, 5일 배양의 경우 1개 이식할 수 있었다.
요즘엔 대체로 5일 배양을 이식하는 추세라는 글도 보았고, 5일 배양이 3일 배양 배아보다 뛰어나다는 카페의 글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본 난임 전문 의사 선생님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3일이든 5일이든 어느 것이 더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하셨다. 최첨단 배양실보다 더 좋은 것은 엄마의 자궁 안이며, 3일 배아도 엄마 자궁 속에 자리를 잘 잡으면 임신이 된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5일 배양이 1개밖에 없어서 불안했다. 해동 과정에서 배아가 잘 못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3일 배양은 10개가 있었기 때문에 해동 중 잘못되더라도 다른 배아를 해동시킬 수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두 개를 이식할 경우, 쌍둥이가 생길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쌍둥이에 대한 아빠의 열망 때문인지.. 쌍둥이에 대한 큰 부담은 없었고, 지금껏 착상이 제대로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설마 두 개 다 착상이 되겠어? 한 개라도 되면 감사해’라는 생각으로 3일 배양 2개를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내 의견을 존중해준 남편에게도 고맙다.
수정란을 착상시킹 수 있을만큼 자궁 내막은 적절히 두꺼워졌고, 이식 시간은 오후로 잡혔다.
이식 후에는 영화 보는 것도 조심스러울 것 같아서 남편과 영화도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갔다.
복부 초음파를 보며 이식하는 것이므로 방광에 물이 가득 차있어야 해서 물을 많이 마셨다. 침대에 누워서 조금 대기한 뒤, 이식 방으로 옮겨졌다.
이식 전 의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설명을 듣고 우리의 결정에 안도했다.
처음 해동했던 2개 중 한 개가 분열을 멈췄고, 추가로 해동한 2개 중 한 개도 분열을 멈췄다고 한다. 분열을 멈춘 배아들은 2등급 배아들이었고, 결과적으로 1등급 배아 2개를 이식하게 되었다며,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채취 때와는 다르게 마취 없이 진행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찰나의 순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했다.
이식이 끝난 뒤, 이식했던 배아 사진을 받았다.
한 개는 분열이 조금 빠르고, 한 개는 일반(정상) 속도로 분열하고 있다고 했는데, 분열이 빠른 배아는 보통 경과가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이식이 끝난 뒤 40분 정도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는데, 이때 소변 참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나는 40분을 다 채우지 못하고 30분 만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다. 괜히 불안했지만, 괜찮을 거야~생각하면서.
병원에서 나온 뒤 시험관 대표 음식(?)인 추어탕을 먹고 집에 가서 쉬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꾸준히 약을 먹고, 주사를 놨고, 질정을 넣었다.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내 자궁 속을 들여다보며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나를 불안하게 한 것은 아무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배가 콕콕대거나 싸르르 아팠어서 증상 놀이를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무증상이었다.
3일 배양은 4~5일 뒤에 착상이 되는데 그 사이 임신 증상을 느끼는 것이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무증상은 조금 불안하긴 했다.
그래도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증상이 있었을 때는 전부 생리로 끝났잖아. 이번에 증상이 없는 게 진짜일 수도 있어.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그래서 첫 테스트는 3일 배양 이식 후 7일 차에 했다. 일반 임신으로 계산하면 ‘배란 10일 차’에 한 것이다.
조금 이를까? 걱정은 되었지만, 주사를 맞은 뒤 전날 쿠팡에서 배송받은 얼리 테스트기를 꺼냈다.
소변을 받고, 기다리는 3분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기다렸다. 증상이 없었기에 너무 불안했다..
그리고 본 두줄… 너무너무 놀랐다.
매직아이를 하고도 보이지 않던 두줄이 연하지만 확실히 보였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고, 남편에게도 보이는지 재차 확인했다.
남편도 놀란 표정으로 임신테스트기와 나를 번갈아가며 봤다. 그래도 우선 너무 앞서 가지 말고 차분히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3일간의 얼리 테스트 후, 확실하지 않으면 두줄은 뜨지 않는다는 ‘더블체크’ 테스트기에서도 확인을 받자 병원에 갈 날이 다가왔다.
정상 임신인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두 차례의 피검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