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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단 Nov 27. 2023

애(哀), 셋 - 청년의 죽음

청년, 명신의 이야기

  말끔히 잘생긴 청년이었다. 


귀티 나는 생김새와 달리 이 청년은 군 소재 시골에 본가를 두고 있었다.(이 또한 시골에 대한 편견이리라.) 이 친구 역시 청년이라기엔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못해 소년 티를 채 벗지도 못한 스물 세 살의 어린 나이였다.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그 어린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슬하에 아이도 하나가 있었다. 그 아이는 시골의 부모님이 대신 돌보아주고 있다고 했다. 말은 대신 돌보아주신다고 했지만 대신 양육한다는 말이리라.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 친구의 이름은 명신(가명)이다. 시골에서는 답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로 와서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돈을 벌고 싶었다고 했다. 허나 그 나이에 일하고 돈을 악착같이 모으는 것이 여간 결심과 의지가 아니고선 어렵기 마련이다. 여느 또래들처럼 돈이 생기면 놀고 싶고, 멋도 부리고 싶고, 그것이 사치는 아니나 명신에게는 하루하루 연명밖에는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러한 시간의 끝에 청소년 보호시설에라도 들어와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며 기관의 문을 두드린 친구였다.      


명신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친구였다. 워낙 조용히 지내기도 했거니와 손이 갈 일이 크지 않은 청년이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많은 나이가 부끄러워 움츠렸을까. 시설에 정해진 매뉴얼과 생활양식을 종사자들보다도 무난히 지켜 지내던 친구여서 더 그랬나 보다. 잘 지내고 있다고 여겼다. 이면에 쌓인 사연을 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후회이다.    

 

명신은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하더니 이내 아니 금세 합격하여 면허증을 슬며시 내밀었다. 그저 이쁜 친구였기에 함께 기뻐하고 축하했다. 거리에서 흘러들어 이곳에 온 아이들이 이 친구만 같으면 좋겠다 싶었다. 차량을 렌트 해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돈은 있는지 묻자 아르바이트로 모아 둔 돈이 있다고 했다.   

   

잘 다녀오라고, 조심히 다녀오라고 응원했다. 그리고 며칠 연락이 없었다.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았다. 인사 없이 떠나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에 그런가 보다 생각하려 했다. 그래도 명신이는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친구였다. 그래서 기다렸다.     


비가 내리던 그 날 나는 작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신호 대기 중이던 내 차를 후방에서 다른 차량이 충격했다. 병원에 들러 간단히 검사와 진료를 받고 출근했다. 비와 사고가 있던 날이라 기억이 선명히 짚어진다.     

출근 후 앉은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명신이를 아는 그리고 나를 아는 가출소녀였다.    

  

“선생님, 명신이 오빠 죽었대요.”

“무슨 소리야?”

“명신이 오빠 죽었대요.”     


운전면허를 땄다고 차를 빌려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교통사고인가 보다. 내가 접촉사고가 난 게 이것 때문인가 하는 되도 않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후회와 겁이 동시에 밀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다시 목소리가 넘어왔다.     


“명신이 오빠, 자살했대요.”

“.........”

“선생님?”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어, 무슨 소리야, 명신이가 왜 그래.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겠지.”     


아이들 사이에는 종종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문들이 생기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기도 하는 터라 그런거라 생각했다. 그러기를 바랬다.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문들은 하필 그럴 때는 진실이기도 했다. 명신이가 그랬다. 


왜? 면허도 따고 새로이 무언가 해보겠다고 부풀어 있었는데. 명신이가 왜?


아직도 모른다. 명신이의 장례식에서 그의 부모와 그의 아이를 보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사조차도 건네지 못했다. 묻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모른다.     


한가지 아는 건, 나는 정말 몰랐다는 거다. 물어봤어야 했다. 힘든 건 없는지? 괜찮다고 해도 정말 괜찮은지, 어떤 사연인지 물었어야 했다. 시간이 있을거라 생각했겠지만 망자가 된 젊은 청년에게 댈 수 없는 변명이다.     

‘명신, 너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겠구나. 미안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치 않았다면 너는 내게 어렴풋하거나, 어쩌면 기억에 없는 수 없이 지나 보낸 사례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이리 보니 그냥 지나치고 잊혀지는 것, 그것이 또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그냥 내게 잊혀지지 그랬니. 너무 선명히 남아 안쓰럽고 미안한 친구가 아닌 기억하지 못해도 좋으니 어디서든 살아내고 있는 명신이지 그랬니. 미안하다. 그러니 아직도 고되다면 부디 편안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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