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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단 Dec 04. 2023

애(哀), 넷-오토바이

준서(가명)의 흔적

  애증의 물건이다. 

배달을 업으로 삼는 아이들에겐 돈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그 몫으로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애증 그 자체다.


 청소년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관련 시설이나 지역복지관 등의 단체에서는 학교에서의 징계처분을 위탁받아 선도를 목적으로 교육이나 봉사활동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자라던 시절과는 참 다르다. 해당 청소년보호기관 재직시절 년에 한 두 번은 꼭 오토바이 관련 사고를 겪었다(아니 목격이 맞겠다). 명절 연휴 새벽에 술에 취해 오토바이를 몰다 사고가 나서 다리에 철심을 박아야 하는 아이의 수술 동의를 위해 병원의 호출을 받기도 했고, 타지에서 잘 사는 줄 알았던 아이가 역시 오토바이 사고로 두개골의 한편이 함몰되고 실명에 이르는 상태를 목격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개골 함몰을 겪은 아이는 앞서 언급된 다리에 철심을 박은 아이의 사고 소식을 그 새벽에 병원보다 먼저 내게 알려온 아이였다. 그 현장을 겪고서도 본인의 사고는 어찌할 수 없었던가 보다.


 이런저런 사고들은 안타깝게도 일상이다.      


 앞서 언급한 학교에서의 징계 이수를 위해 청소년기관에서 특별교육을 하던 아이가 있었다. 준서(가명)였다. 말끔하고 단정했으며 키도 훤칠했다. 지역 대표를 지낼 만큼 운동에도 소질이 있어서 보기에도 아까운 아이였다. 무슨 이유인지 학교를 가지 못했다. 결석이 계속되자 학교에서는 유급을 막기 위해 교내봉사, 사회봉사 그리고 나와 만났던 특별교육까지 조치가 다다른 친구였다. 딱히 비행은 없었다. 그저 학교를 가지 않았던 것. 그것이 이 친구에게는 나름 족쇄였다. 부모님과의 갈등도 이에 비롯되었고, 결석이 계속될수록 써야 하는 반성문도 늘었다. 늘어난 양만큼 학교에 대한 부담은 커졌고 부모를 피해 밤거리를 방황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어렵게 꺼낸 사연은 그랬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지역대표를 지낼 만큼 건장하고 튼튼한 준서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놀랐지만 아닌 척 했다. 준서는 그것을 매우 수치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몇 차례 방황과 설득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있었다. 밤에 준서의 어머니와 함께 방황하는 아이를 찾아 그 자리에서 밀린 반성문을 함께 쓰기도 했다. 준서의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준서는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싶은 눈치였다. 특별봉사와 같이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징계는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스치는 사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했다. 그 어머니의 간절함이 그랬고, 그런 어머니에게서 난 준서의 복이었다. 그렇게 준서는 겨우이지만 다행히 학교로 돌아갔다. 해가 지나고 기관에서는 여전히 이런저런 일들이 일상으로 오갔으며, 특별교육도 그랬다. 특별교육생 중 준서와 같은 학교의 친구가 위탁생으로 왔다. 학년을 보니 한해를 넘긴 준서와 같은 학년인 듯 했다. 교육을 위한 기초정보를 사정하고 이야기의 틈에 던지듯 물었다.     


 “너 혹시 준서 아니?”

 “강준서요?”

 “어! 아는구나?”     


괜스레 반가웠다.     


 “어떻게 지내니? 학교는 잘 다니나 모르겠네.”     


그러고 지난 해가 생각이 나 슬며시 웃음이 났다. 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학적을 지키는데 눈꼽만큼의 보탬이 되었다는 보람이 자연스레 섞여 나온 웃음이었다. 웃지 말았어야 했다.     


 “강준서, 죽었잖아요.”

 “뭐?”

 “죽었어요. 오토바이 타다가.”

 “...........”

 “친구인가 선배인가 아무튼 걔는 오토바이 잘 타지도 못하는데 누가 타라고 했나 봐요. 담벼락에 박아서 죽었다고, 그래서 학교가 좀 시끄러웠어요.”     


거기까지가 내가 아는 준서의 소식이다. 그저 뜬소문이길, 그게 누구든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내가 아는 준서가 아니었음 싶었다. 확인해보고 싶었다. 헛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저장되고 묻혀, 있는지도 모르는 전화번호들. 

준서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그랬다. 

걸었다. 받으면 어쩌려고, 무슨 말을 하려고 덜컥 전화를 걸었나. 받지 않았다. 저장된 내 이름을 보고 안 받으셨을 수도 있고, 저장되어 있지 않아 모르는 번호라 안 받으셨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모른다. 나는 그 뒤로 누구에게도 준서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준서가 살아있을 거라 기대도 되지 않는다.      


객기였을까? 누가 억지로 타라고 겁이라도 준걸까? 일탈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목숨과 바꿀 만큼의 잘못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또 한 아이를 잃었다. 결국 못 지켰다.  준서라는 아이의 흔적은 그렇게 또 지워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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