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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단 Nov 24. 2023

애(哀), 둘 - 고아, 보호종료, 독립

호선(가명)의 이야기

  호선이는 또 다른 청소년일시보호시설에서 만났다. 낯이 익었다. 호선이도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긴가민가하는 눈치이다.      


“혹시......00보육원에 있었지 않았니?”

“어! 맞아요!”

“그치? 그래. 나도 거기서 일을 했었거든.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얼굴이 기억에 남아서 긴가민가했어.”

“네, 선생님, 저도 그랬어요. 저는 호선이에요.”

“아, 그래 호선이. 나를 기억할지 모르지만 ㅇㅇㅇ 샘이야.”

“네, 기억나요. 제가 초등학생 때 였어서 잘은 기억 안 나지만 기억나요.”

“그런데 어쩌다가 여기에 온 거야?”     


당시 호선이는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호종료 아동, 자립준비 청년이었다. 열여덟 해를 지내고 보육원에서 나왔다. 채 스물도 되지 못한 나이니 청년이라 하기엔 사회가 붙여준 호칭이 너무 무겁기만 하다. 보육원에서 자립 비용으로 500만 원을 받아서 나왔다고 했다. 물론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랬으니 청소년 보호시설을 찾았으리라.     


호선이는 지적장애 2급이다. 왜 사회적 약자인 이들은 하나도 버거운 불리함을 두 개, 세 개, 네 개, 덕지덕지 안고 살아가는지 알지만, 또 모르겠다. 호선이는 집이 있었다. 아니 방이 있었다. 자립준비 청년에게 지원되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기에 잘만 활용하면 그래도 생계를 이어가며 내일을 기대해 볼만 한 조건이다. 그러나 그 혜택의 반대편에 서 있는 문제는 또 복합적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호선이는 지적장애를 지니고 있다. 스스로의 삶을 꾸리는 것에 치밀할 수가 없다. 거기에 호선이는 열여덟 살이 되도록 정해진 식판에 주는 밥과 정해진 잠자리, 정해진 사람들과 정해진 일과를 보내는 것에 익숙함을 넘어 편안함과 안정을 느끼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그대로 야생으로 던져진 셈이다. 호선에게는 호의적인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결국에 호선이는 혼자였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      


‘독립(獨立)’    

  

그 독립을 하라고 말이다.


독립은 원하지 않는 이에게는 공포다. 더군다나 호선이처럼 사주경계라는 것을 모르는 순진한 아이는 야생에서는 언제나 최우선 먹잇감이다. 역시나 호선은 여럿에게 잡아 먹히는 중이었다. 호선이 명의의 휴대폰은 세 개나 되었으며 당연히 밀린 요금, 할부원금 등은 수십을 넘어 백 단위를 이미 넘겨 있었다. 그리고 호선은 그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못했다. 휴대폰을 개통하면 돈을 준다는 이의 말을 호선은 호의로 여겼을 것이다. 이러한 호선을 누구도 돕기가 어려웠다. 결국 절대적인 보호 자원 즉 가족, 적어도 가족에 준하는 생활 공동인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도리어 호선은 그러한 환경에서 독립을 하라고 내어진 처지였다.  

    

누구도 잘못은 없다. 사회의 제도도, 호선이 있던 보육원도, 그리고 지금의 나와 같은 청소년기관의 종사자도 모두가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절대적인 ‘내편’이 호선에게는 없다. 그러한 호선이 본능적으로 ‘내’을 찾고 싶었나 보다. 호선 역시 길수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찾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호선에게도 길수와 같은 과정을 안내했다. 호선은 주민센터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달랐다. 걱정이 앞섰다. 호선이가 상황을 인지하든 못하든 길수와 마찬가지로 친부모가 만나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패배감이 우선했다. 그보다 고아가 된 호선의 부모를 찾을 수는 있을까도 염려되었다.      


간혹 보육원에 속한 아이들이 같은 성(姓)씨를 지닌 경우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아주 어린 나이에 미아로 보육원에 등록되는 아이들의 경우 인적사항을 알 길이 없어 부득이 주민등록을 새로이 생성해주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런 경우 아이들의 성씨를 보육원 원장의 것을 따르게 하기도 했었다. 호선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자신의 성씨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쩌면 부모를 찾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해당과정을 위해 호선의 주민등록을 먼저 검색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찾던 주민센터의 직원은 난감해했다. 호선보다 같이 온 나에게 먼저 호소와 같은 눈빛을 보냈다. 그 곤란함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말을 꺼내기가 미안하다는 눈빛이었다. 내가 입을 뗄 수 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나요?”

“저기.......장호선씨 가족관계등록부를 보니까요 일가가 없네요.”

“무슨말씀이신지.......”

“장호선씨가 보육원에 계셨었다고 하셨잖아요. 아마 미아셨던거 같아요. 해당 성씨가 전국에 장호선씨 한 분으로 검색이 돼서요.”

“아......”      


짧은 탄식이 절로 뱉어졌다. 세상에 호선이는 정말 혼자였다. 누가 버렸는지 왜 버렸는지 아니 잃어버려진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하필 나랑 듣다니. 그 와중에 어떻게 얘기해주나 내 걱정이 앞섰다.

주민센터를 나섰다. 그리고 호선과 함께 인근 커피숍을 찾았다. 호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호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샘, 저도 그 정도는 알아들었어요. 부모님 못 찾는 거죠?”

“응, 그렇다네. 괜찮니?”

“네, 근데 뭐라는 거에요. 제 성씨가 왜 저밖에 없어요? 저와 같은 장씨 여기저기 겁나 많던대요.”

“아, 어, 그러니까 음.....소리나는 성씨는 같은 사람이 많은 게 맞아. 근데 음....있잖아 왜. 밀양박씨, 김해김씨 뭐 그런 것들. 그런 거 알아?”

“네, 아는데 저는 무슨 장씨인지 모르는데요.”

“응, 뭐 괜찮아. 그거 모르는 애들 많아. 어쨌든 그런게 있는데 호선이의 성씨는 그러니까, 그 근본을 본관이라고 하거든. 근데 호선이의 성씨의 본관은 호선이가 최초인거 같아. 박혁거세가 박씨의 시조이고 뭐 그런 것처럼 호선이가 호선이의 성씨의 시조인 셈이야.”

“시조가 뭔데요?”

“가족? 혈통? 뭐 그 성씨를 가지게 된 최초의 사람. 그렇게 이해하면 돼.”

“와, 그럼 전 세계에 저랑 같은 장씨는 저 하나라고요? 오진다 진짜......”     


이런 비극을 신기한 경험으로 여기며 ‘오진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호선이의 모습이 차라리 다행일까, 아니면 비극의 완성을 더하는 잔인함일까. 호선은 여전히 청소년일시보호시설에 복덕방 들리듯 들러서 밥도 먹고 컴퓨터게임도 하고, 그곳의 상담사들에게 귀여움도 받으면서 지낸다고 한다. 때때로 알선해준 아르바이트를 무책임하게 빠져 꾸중도 듣는다고 한다. 그래도 행복하다 그런다고 한다. 호선이가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어 가며 정말 청년이 되어가는 호선이 계속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 걸까. 장년이 된 훗날의 호선은 여전히 귀엽다고 여겨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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