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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Sep 18. 2023

#책4. 『잉글리쉬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2018 그책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1992년에 부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져 1997년에 아카데미 9개 부분에서 수상했다. 너무나 유명한 영화라서 ‘아! 그 영화’라고 떠올리겠지만, 역시 영화와 소설은 다르다. 영화가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에 중심을 두었다면, 소설은 산 지롤라모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에 중심을 두었다.     

2018년에 맨부커상 50주년 기념으로 최고의 부커상 작품들 중에서 「골든 맨부커상」을 선정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그 영광을 안았다.


(독서토론 모임 책선정 주체로써)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선정한 이유는 첫 번째는 부커상에 대한 무한한 신뢰였고, 두 번째는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어떻게 나왔나 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부커상은 역시 믿고 볼만한 문학상이구나,

『역사』는 역시 위대한 고전이구나.”     


나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주인공은 치유하지 못한 시대라 보았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읽다 보니 이동순 교수가 소련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한인에 대한 시집인 『강제이주열차』도 보이고,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도 보였다.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눈물이 계속 나고 책을 덮고 나서는 몸까지 옥죄듯 아프다. 작가는 치밀하고 세밀한 묘사로 우리를 그 시대로 끌고 내려간다. '이제 이 책을 읽고 잊혀가는 그 시대를 네가 위로해 주렴' 이런 생각인가 보다. 시간이 흘러도 시대는 치유되지 않고 지나치기 때문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주인공들은 사회를 이루기 시작한다. 해나는 도적떼가 올까 봐 불도 켜지 못하던 빌라 산 지롤라모에서 영국인 환자를 돌본다. 해나 아버지의 친구인 카라바지오와 폭탄을 해체하러 왔던 킵이 합류하면서 음악과 술과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바뀐다.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고 나누는 아름다운 곳이 된다. 그러나 결국 유럽에 떨어진 독일군의 폭탄의 수보다 더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지면서 그 사회는 해체되고 만다. 우리의 주인공 알마시는 나름 안식을 이루며 세상을 떠나고(?) 키르팔은 의사가 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가장 어린 나이에 전쟁에 '선(善)'을 위해 참전한 해나의 모습은 쓸쓸하게 남는다.   

  

마이클 온다치가 만든 주인공에는 모두 사연이 있고 이름에 이유가 있다.     

*라디슬라우 드 알마시는 영국인 환자로 신분을 위장한 헝가리 귀족이다. 극 중 알마시 백작의 실제 모델은 ‘레슬로 알마시’로 알마시 백작과 똑같이 아프리카를 발굴하러 다니고 독일첩자의 누명도 쓴다. 단지 다른 점은 그는 이질로 스위스 사망한다는 점이다. 알마시의 불륜상대인 캐서린과 그의 남편 제프리 클리프튼의 모델인 클래이톤부부는 실제 비행기 파일럿 부부로 급성장염과 비행사고로 사망한다.


**해나는 이탈리아 전선에 파견된 캐나다인 간호사인데, 그녀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호의’라는 뜻이다.

카라바지오 <메두사의 머리>

**데이비드 카라바지오는 이탈리아 이름을 가진 캐나다 도둑으로 연합군 첩자이다. 이 이름이 쓰인 배경이 있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비지오는 철저한 사실적 묘사의 화풍을 연 바로크 시대를 열었는데, 그의 그림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트롱프 뢰유(눈속임 그림)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카라바지오는 산 지롤라모를 테마로 세 점을 그림을 그린다. 또한 도둑 카라바지오의 부인으로 나오는 지아네타는 15세기에 카라비지오 지역의 성모 발현을 목격한 여인의 이름이다. 도둑 카라바지오를 잡아 엄지손가락을 자른 토마소니는 17세기에 화가 카라바지오가 죽인 사람으로 카라바지오 몰락을 가지고 온 사람이다. 도둑과 화가에서 엄지손가락은 큰 의미가 있고 결국 도둑 카라바지오도 엄지손가락이 잘려 도둑으로서 능력을 잃는다.     


**키르팔 싱은 ‘킵’이라는 영국 별명을 가진 인도인 공병이다. 19세기 후반에 인도에는 키르팔 싱이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그는 무굴제국이 시크족을 학살하는 그림을 그렸다. 결국 영국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했지만 연합군이 아시아에 저지른 무시무시한 폭탄을 보고 시크교도인 키르팔 싱은 유럽을 떠난다. 소설 내내 ‘킵’으로 불리던 ‘키르팔’은 소설 마지막에는 ‘키르팔’로 불리는데 나는 작가가 그에게 정체성을 찾아준 것으로 해석했다.      


나는 그중에서 카라바지오를 중심인물로 꼽았다.

-해나, 영국인 환자, 킵을 보호하는 보호자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끝내 백인에 실망하여 떠나는 인도인 키르팔 싱을 위로하는

=어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주요 배경에는 이탈리아의 빌라 산 지롤라모와 아프리카 사막과 영국의 웨스트베리가 있다.

굳이 장소의 역할을 나누자면 치유의 장소,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장소, 문화의 장소로 분류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파괴된 곳은 빌라 산 지롤라모이다.      

성경을 라틴어로 처음 번역하여 대중화시킨 산 지롤라모였고,

하얀 사자의 발톱에 박힌 가시를 빼 치유의 성인이 된 산 지롤라모였고,

사막을 떠돌며 고행한 산 지롤라모였다.

기독교에서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산 지롤라모의 성지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남과 동시에 빌라 산 지롤라모는 희망이 없이 방치된다.

사막과 웨스트베리가 큰 손상 없이 남았던 것에 비하면 산 지롤라모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마이클 온다치가 빌라 산 지롤라모를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성지도 파괴해 버리는 유럽인을 비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중심이다.

헤로도토스가 서문에 밝힌 『역사』의 집필 의도인 ‘번성한 도시가 쇠퇴하는 이유’와 ‘칸타울레스와 귀게스에 대한 일화’가 알마시와 캐서린과 제프리의 관계에서 소개되고, 사막에 대한 중간중간 소개와 설명 등. 헤로도토스가 걸어간 길을 알마시가 걸었고, 이제 알마시의 눈으로 우리도 걷는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는 『역사』의 비중이 낮아 아쉬웠는데, 역시 마이클 온다치는 『역사』를 중심에 놓고 잘 활용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로마시대의 호라티우스가 『시학』에서 말한 ‘사태 한가운데로’에 충실하다. 호라티우스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극찬하며 ‘사태 한가운데로’라고 말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도 모든 이야기가 ‘사태 한가운데’로 던져진 후 주인공들의 회상을 통해 진행된다. 시간의 흐름도 제각각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 가장 나중에 소개되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모든 것은 속임수이다.

이것이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대한 나의 결말이다.

-트롱프 뢰유 : (진짜처럼 보이는) 그림의 속임수 – 총 네 번의 ‘트롱프 뢰유’가 나온다.

-폭탄 : 인간의 속임수, 사람을 죽이는 매번 새로운 장난질.

-잉글리쉬 페이션트 : 국적, 외모의 상실로 정체불명의 사람, 모두를 속인다.     

우리는 마이클 온다치의 말처럼 "이제 이 교회의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깨달"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닌,

지금의 평화가 진짜 평화가 아닌,

참혹한 그 시대를 깊이 새기고 위로해야 하는 것은 독자인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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