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2021 곰출판
처음에는 위대한 인물의 ‘그릿’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자리 지도를 만들고, 청소년기 땅의 지도를 만들고 꽃들의 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항상 혼자였고, 초/중/고를 중퇴했다. 그는 코넬대학을 다니면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눈에 사회 부적합자였다. 그런 그에게 루이 아가시의 <페니키스 섬 여름 캠프>는 하나의 큰 기회였다. 하버드 대학교수인 루이 아가시의 어류 수집 원정대원이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때가 바로 내가 바다의 물고기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그의 관심이 별에서 들꽃으로, 그리고 다시 바닷속 물고기로 옮겨갔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땅과 다르게 그에게 물고기들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고, 평생 맞춰야 할 퍼즐이었다. 그는 페니키스 섬에서 동료도 만나고 연인도 만난다. 그들과 함께 그는 드디어 사회 일원이 되었다. ‘긍정적 피드백이 없는데도 매우 장기적인 목표에 로봇처럼 뛰어들게 해주는 것’. 그는 이 ‘그릿’의 힘으로 인디애나주 교수가 되고 최연소 학장이 되고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 된다. 그는 드디어 ‘사회’에 힘을 발휘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제인 스탠포드가 하와이에서 독살당했을 때, 명백한 증거들도 사회지도층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이길 수 없었고 그대로 자연사로 묻혀버렸다. 그 어떤 순간에도 자연에 질서세우기 사명에 빠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화재도, 지진도, 자식의 죽음도. 그는 마음에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전 세계 2,500여 종의 어류에 이름을 붙여주면서 신이 되어갔다.
<자연에 질서세우기>가 안정에 접어들자 그는 이제 <사람에 질서세우기>로 시선을 옮겼다. 사회 부적합자였던 그는 사회 부적합자들이 꼴 보기 싫었나 보다. 그들의 모습에서 혼자 있던 자신을 보았을 테니. 그렇지 않다면 왜 그토록 악랄하게 ‘부적합자’를 박멸해야 한다고 열을 왜 올리겠는가. 그는 프랜시스 골턴이 영국에서 우생학을 주장하자마자 그 말을 신봉하여 강의와 논문을 통해 열렬히 지지하였다. 제인 스탠포드가 죽은 아들을 만나고 싶은 열망은 ‘사이어 소피Sciosophy’라는 말까지 만들어서 공격하더니 과학자가 진짜 과학자인 다윈은 무시하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에 빠져 죽는 순간까지 ‘부적합자’의 불임 법제화에 앞장섰다. 결국 1927년 강제 불임화 수술은 연방법으로 제정되었다. 법이라는 공식적인 날개를 달고 50여 년간 미국은 65,000여 명의 불임화 수술을 공식적으로 시행하였다. 그들은 주로 아메리카 원주민, 멕시코와 이탈리아, 일본의 이민자들 등이다. 비공식적인 기록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독일의 히틀러보다 더 빨리 국가 정책이 된 곳이 미국이다. 그리고 아직도 조용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룰루 밀러의 확인에 의하면 2017년까지도 말이다. 캐리 벅과 애나는 그들에게 같이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었다. 출장으로 집을 비웠을 뿐인데, 돌아오니 아내와 딸이 불임수술을 당한 조지 멀로리의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가니요’는 그들에게 공허한 아우성일 뿐이었다.
우생학의 뿌리는 19세기보다 더 깊이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들은 가장 훌륭한 여자들과 되도록 자주 성관계를 맺어야 하지만, 열등한 남자들은 열등한 여자들과 되도록 드물게 성관계를 맺어야 하네. 훌륭한 부모의 아이들은 탁아소로 데려가서 도시의 한 구역에 따로 떨어져 사는 간호사들에게 맡기겠지만, 열등한 부모의 아이들이나 다른 집단에서 불구로 태어난 아이들은 당연한 일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장소에 감춰버릴 것이네.’ 플라톤의 주장은 제국주의와 맞아떨어지면서 식민지를 지배하는 논리가 되었고, 그 칼끝은 자국민과 이민자에게 향했다.
우리나라도 우생학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세기 초반에 여러 국가들은 우생학을 지배에 이용하기 위해 너도나도 받아들였고,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우리나라도 1910년대에 우생학이 들어왔다. 이광수는 1922년에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주장했는데, 우리 민족은 열등하므로 일본의 보호와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신문 주필을 잠시 맡으며 독립운동을 했지만, 이내 열악한 환경이 싫어 상해를 몰래 떠나 경성으로 돌아온 후에 철저한 친일파가 되었다. 집에서 일본말을 쓰고 가장 먼저 창씨개명을 한 것도 이광수香山光浪이다. 1933년에는 <조선우생협회>가 창립되었는데, 이것은 베를린 의대를 졸업한 이갑수와 윤치호가 만든 것이다. 이광수, 송진우, 김성수, 김활란 등 이름만 봐도 일본에 충성하는 위인들이다. 이들은 한센인을 목표로 삼아 그들을 육지에서 쫓아 고흥 소록도에 감금시켰고, 그들에게 불임화와 임신중절수술을 시켰다. 한센인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그렇게 소록도에서 20세기를 보냈다. (지금의 소록도는 일반인 통제구역이다. 일부가 개방되었는데, 허가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센병은 전염병도 아니고 1950년대에 이미 치료제가 나와 있었는데도, 국가는 한센인에 대한 불임 정책을 80년대까지 유지했다. 또한 1973년에 제정된 모자보건법 14조에는 ‘의사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의 책임을 국가에서 개인으로 미루는 행위이다. 산모는 자발적으로 우생학적 기준으로 태아를 지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우생학 실태이다. 그나마 1999년에 법이 개정되어 낙태를 선택으로 하였지만, 초기 모자보건법은 강제 수술이 원칙이었다.
우생학은 여전히 우리 곁이 끈질기게 붙어있다. 첫 번째는 우량아 선발대회이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1908년 우생학 열기로 루이지애나주에서 처음 실시였고, 한국은 1971년 MBC와 남양유업 주최로 처음 열렸다. (1984년까지) 두 번째인 IQ(Intelligence Quotient 지능발달지수)검사는 1904년에 프랑스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히가 제안하여 만든 것으로 1916년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보완하여 만들어 지금까지 대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912년 우생학자 고다드는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에게 영어로 된 IQ 검사를 하여 80% 이상이 정신박약이라고 기록하였고 이후 IQ는 우등과 열등을 가리는 척도가 되었다. 세 번째는 양수검사인데 모자보건법 14조에 의하여 DNA 검사로 기형아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네 번째는 정자 기증으로 좋은 정자를 유전적 선택한다. 현재 비혼모 사유리가 백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젠을 낳아 사회적 논란에 있다.
다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돌아간다. 8장 ‘기만에 대하여’에서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22살까지 사회 부적합자로 초중고를 중퇴하고 대학 학위를 갖고도 직장을 구하기 힘들었던 조던이다. 성장기 낮은 자존감과 청도교적 강박으로 쓸모 있는 사람에 대한 욕구가 컸다. 사회적 지위를 얻자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로버트 커틀러의 주장이 맞다면 심지어 제인 스탠포드를 살인할 정도로- 자기기만에 빠졌다. 룰루 밀러는 그가 별을 좋아하여 star를 중간 이름으로 넣었다고 책에 썼지만, 그의 중간 이름은 star가 아니고 Starr이다. Starr의 사전적 의미는 엄격함, 단호함, 완고함, 불편함이다. 그는 그 자신에게 딱 맞는 중간 이름을 찾은 것이다. 룰루 밀러는 작은 꽃을 좋아하던 아이가 루이 아가시를 만나 ‘가장 높은 선교활동’에 의미를 찾으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그는 처음부터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역사가 로이 포터의 말처럼,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가 가져 마땅한 미치광이들이 생겨난다.” 히틀러도 재능이 부족해 미술가가 못 되었고, 신체 부적합자로 병역에서 면제되었다.(나중에 제1차 세계대전 때 자원입대한다) 내 생각에는 이런 열등감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들이 세상의 거물이 되어 세상을 망친다. 그는 『사이언스』에 「과학과 사이어소피. 1924」 논문을 제출할 때 이런 구절을 썼다. “진실이 아니란 걸 우리에게 분명히 아는 것을 믿으려 하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고통을 초래한다.” 결국 본인이 쓴 대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고통을 초래했다.
13장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a’는 그리스 말로 ‘기계장치에 의한 신’이란 뜻으로 비극작가인 에우뤼피데스는 거중기를 이용하여 신을 등장시켰는데, 거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결말을 억지스럽게 신을 개입하여 마무리한다는 의미도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신의 사다리는 무시하고 스스로 자연에 질서를 세운다. 물고기 이름짓기에 성의도 없다. 이쁜 물고기는 친구의 이름을, 못생긴 물고기는 적의 이름을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 물고기를 지배하는 신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진짜 신의 개입으로 몰락한다. 신은 끊임없이 경고했다. 1883년에는 화재로, 1900년에는 편애하는 딸 바버라의 죽음으로, 1906년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1926년에는 바버라를 대신하여 얻은 아들 에릭의 죽음으로 신은 끊임없이 그의 바벨탑을 무너뜨렸다. 그렇지만 ‘낙관적 방패’와 ‘그릿’으로 무장한 조던은 너무 강력했다. 결국 신은 분기分岐학자들을 분기奮起시켜 그가 완성해놓은 어류들을 살해했고, 그조차도 30년 동안 효과가 미미하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히트시켰다. 그 결과 스탠포드 대학의 조던 홀은 ‘조던’의 이름을 버렸다. ‘이름’에 집착한 이에 어울리는 최후이다. 세상은 조던과 우생학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12장 ‘민들레 법칙’에서 민들레는 잡초도 되고 약초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 민들레는 포공영이란 이름으로 염증이나 해독작용에 쓰이는 아주 유용한 한약재이다.
민들레 원칙은 2013년 오스틴 교수(덴마크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가 덴마크 소프트웨어 검사 회사인 스페셜 리스테른을 두고 한 말이다. “‘자폐 성향(민들레)’조차 ‘장애(잡초)’가 아닌 ‘남다른 경쟁력(약초)’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라는 것이다. 사람들 개개인에게 숨겨진 강점을 간파해 내는 것은 마치 민들레의 효능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 진가를 아는 사람만이 민들레를 잡초가 아닌 약초로 활용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2004년에 토킬 손은 스페셜 리스테른을 창업하면서 직원의 75%를 자폐 성향을 보인 이들로 채용했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가지고 일반인들이 싫증 낼 만한 일들도 지치지 않고 해낸다. 그의 이런 성공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다른 회사에서도 자폐 성향을 보인 이들을 채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그들에게 ‘부적합자’는 제거의 대상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다. 메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에 관심을 가졌던 다윈은 그 실체를 알고서는 더 열심히 변이의 힘을 칭송하며 우생학을 비판하였다. 가끔 잘못된 정보에 우생학이 다윈의 진화론에서 나왔다고 하니 다윈으로써는 무덤에서 팔짝 뛸 일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덮었지만, 혼돈이 나를 집어삼켰다. 룰루 밀러는 외피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물고기도 분류하지 말라고 하지만, 여전히 어류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자비한 사람이 맞는 최후의 말로를 통해 결국 정의는 언젠가 실현된다는 교훈을 얻은 것으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