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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Jun 15. 2024

#책8.『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2011 민음사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일본계 혼혈인 비서였던 아름답고 젊은 마리아 고타마에게. 그녀는 87세의 보르헤스와 결혼해 마지막 석 달을 함께 지냈다. 그가 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제 묻히고 싶어했던 도시 제네바에서 그의 임종을 지켰다.


  한 연구자는 자신의 책에다 그 짧은 묘비명이 ‘서슬 퍼런 상징’이라고 했다. 보르헤스의 문학으로 들어가는 의미심장한 열쇠라고 -기존의 문학적 리얼리터와 보르헤스 식 글쓰기 사이에 가로놓은 칼 -믿었던 그와는 달리, 나는 그것을 지극히 조용하고 사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였다.


  그 한 줄의 문장은 고대 북구의 서사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침상에서 보낸 첫 밤이자 마지막 밤, 새벽이 올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장검이 놓여 있었다. 그 ‘서슬 퍼런’ 칼날이, 만년의 보르헤스와 세계 사이에 가로놓였던 실명失明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강의 『희랍어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강 작가가 작품의 첫머리에 보르헤스의 이름을 올린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덜컥 《픽션들》을 사서 펼쳤으나 이내 덮고 오랫동안 책꽂이에만 꽂혀 있었다. 서재에서 어떤 책을 찾다가 보면 언제나 《픽션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음에…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고 애써 외면한 책이었다. 그러나 언제고 읽어야 할 책이고 넘어야 할 산이었다. 스스로 읽지 못할 바에는 강제로 읽으려고 독서 토론모임에 《픽션들》을 추천했다. 다행히 회원들은 그전에 읽었던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헤 노인이 보르헤스를 데려다 만든 인물임을 알기에 보르헤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흔쾌히 채택했다. 《픽션들》의 첫 번째 단편은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인데, 보르헤스는 독자들을 시험에 들게 할 요량인지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는 단편을 첫 장에 실었다. 독서 토론모임만 아니었다면 한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을 테지만, 어쨌든 기어이 읽었다. ‘기어이’ 《픽션들》에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보르헤스는 예민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19세기 중반부터 아르헨티나는 유럽의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였고, 보르헤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영국 출신의 이민자이다. 외할아버지는 우루과이계 군인이었다. 영국인 할머니는 어린 보르헤스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들여 교육했고, 청소년 시절에는 유럽에서 살았다. 영국인 할머니는 호르헤라는 스페인어 이름 대신 조지라고 불렀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보면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에서 정체성을 갖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도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도서관의 책들을 읽으며 지냈다고 한다. 많은 문인과 교류도 했지만, 아르헨티나의 이방인인 그는 외톨이이지 않았을까. 그런 상황이 그를 관념적으로 만들었고, 단편들에 녹아 있다. 《픽션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외부와 교류가 거의 없다. 《픽션들》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과 『기교들』로 이루어진 두 개의 단편집 모음이다. 그나마 《픽션들》 중에서 나중에 발표된 『기교들』은 이야기 형식을 띠고 있지만,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대체로 논문이나 평론처럼 주인공 한 명만 등장한다. 그들에게서 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하고 상상하는 보르헤스의 모습이 보인다.     

  보르헤스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의 단편들이 탐정소설과 환상소설이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는 영미 백과사전에 소개된 어느 지역에 관한 이야기인데, 알고 보니 17세기에 비밀결사에서 만든 이상적인 가상 세계였다는 것이 결말이다. 틀뢴에서 보르헤스는 그 당시 세계의 주류를 이루는 고전주의를 해체하고 모더니즘 세계를 창조한다. 어렵게 읽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넘긴 단편인데, 이제야 보르헤스가 틀뢴이라는 행성을 만든 이유를 알겠다. 틀뢴에서 연구된 새로운 세상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의 마지막 단편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중국인 추이펀의 미로에서 재창조된다. 하지만, 결국 보르헤스가 만들고 싶었던 새로운 세상은 기성 사람들에 의해 ‘무책임한 상상의 방종과 같은 행위’ 또는 ‘어지러운 원고 뭉치’, ‘거대한 수수께끼’ 등으로 평가받은 채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끝난다. 그래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의 시작을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이 열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 닫는 것이 맞다.      

 「원형의 폐허들」에서 다친 주인공은 ‘남부’에서 왔다. 남부에 따옴표까지 쳐져서 강조되었고, 《픽션들》의 마지막 작품인 「남부」가 보르헤스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봤을 때 「원형의 폐허들」의 그는 자기 자신 보르헤스를 말한다. 그는 버려진 신전 터에서 혼자 지내며 꿈을 꾼다. 꿈과 환영 속에서 제자를 키우고 자식을 기른다. 천 하루 동안. ‘천 하루’는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거울’, ‘미로’에 버금가는 중요한 단어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그의 세계이고 우주이다. 처음에는 도서관의 구조를 소개하고, 점차 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말하고 점차 도서관은 우주의 혼돈처럼 어지럽게 빙빙 돈다. 작가는 무질서가 반복되면 질서가 될 것이라며 소설을 마무리한다. 「바벨의 도서관」의 ‘그’는 눈먼 사람이고 죽음을 앞둔 사람인데, 유전적으로 눈이 나쁜 보르헤스의 가문을 생각하면 역시 「바벨의 도서관」의 ‘그’도 보르헤스이다.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 허버트 퀘인은 죽었다. ‘나’는 허버트 퀘인에 대한 《타임즈》의 추모기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 허버트 퀘인은 실험적 정신이 강하여 간결하면서 완결된 작품을 썼고,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분석한다. 그리고 작품의 끝에 「원형의 폐허들」과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 등장한다. 또다시 ‘나’는 보르헤스임을 드러낸 것이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부터 시작하여 일곱 개의 생각을 거치며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와서야 혼자였던 보르헤스는 드디어 “사람”과 마주하여 그동안 만든 세계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러나 결국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도 ‘그’의 문학이 빛을 보기 전에 안내자는 죽는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주인공 ‘나’ 또는 ‘그’는 단편들을 통해 여행한다. 메소포타미아, 인도, 스페인, 페르시아, 바빌론, 영국을 배경으로 그의 생각이 담긴 환상 세계를 보여준다. 반면에 『기교들』에 흐르는 주제는 ‘죽음’이다. 아홉 개의 단편 중에 여덟 개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죽거나 죽은 것과 다름없다. 지독한 불면증과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났다거나 창문에 이마를 부딪쳐 패혈증으로 죽을 뻔했던 30대의 보르헤스의 머릿속에는 항상 ‘죽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보르헤스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보였던 은둔형 외톨이 학자의 모습을 벗어나 『기교들』에서는 주인공이 사회에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모습이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나  「끝」은 아르헨티나의 원주민-메스티조, 물라토, 흑인, 인디오- 가우초(카우보이)가 주인공이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다국적 세계관을 가졌던 그는 『기교들』에서 민족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가 백인 이민자를 장려하면서 원주민들은 이민자와 근대문명에 쫓겨 평원으로 밀려났다. 19세기 중반 호세 페르난데스는 『마르틴 피에로』라는 산문시에서 가우초의 삶과 애환을 노래했다. 보르헤스는 페르난데스의 시를 가져와 「끝」을 썼다.  「끝」에서의 검둥이와 이방인의 결투는 「남부」로 이어진다. 「남부」의 후안 달마는 호르헤 보르헤스 자신이다. 달마는 보르헤스처럼 이마를 창문에 부딪혀 패혈증으로 죽다 살아났다. 죽다 살아난 달마는 평온이 주는 일상을 느끼며 남부에 있는 별장으로 향한다. 그는 들떠 있고 행복하다. 그러나 차장은 내려야 할 곳도 아닌 곳에 그를 내려주고, 식당에서는 주변 노동자들이 시비를 건다. 결국 칼을 잡아본 적이 없는 달마는 결투를 거부하지 못하고 칼을 들고 평원으로 나가면서 「남부」는 끝난다. 그렇게 『기교들』도 끝나고 《픽션들》도 끝난다. 보르헤스는 개인적 상념에서 벗어나 아르헨티나에 관심을 가진 듯하지만, 작품에서 그는 여전히 이방인으로 마무리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986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보르헤스는 죽고 없지만, 많은 작가가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보르헤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점이 어떻게 생각하면 보르헤스를 알기도 전에  『한밤의 아이들』, 『잉글리쉬 페이션트』, 『장미의 이름』 그리고 줄리어 반스나 한강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학을 통해 그의 화법은 익숙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라도 보르헤스를 알아서 다행이다. 《픽션들》 정말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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