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이윤기 번역 1980 열린책들
『장미의 이름』은 방대한 분량이지만, 중세의 카톨릭 분쟁과 철학과 살인사건이 아주 잘 버무려져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세계를 관통하는 역사와 이야기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황과 프란체스코회의 분쟁이 어려웠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생각을 읽고 나니 모든 논쟁에는 의미가 있고, 그것을 통해 중세의 몰락을 다시 짚어볼 수 있었다.
1. 『장미의 이름』은 왜 ‘장미의 이름일까’
『장미의 이름』의 시작과 끝에 제목의 배경을 암시한다. 제1일 1시과에는 알라누스 데 인슐리스의 시가 인용되었다.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원문에는 짧은 구절이 있지만, 우리는 번역자 이윤기 씨의 주석을 통해 ‘장미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설명하고, 우리의 삶을 읽어 준다. 장미는 아침에 피어, 만개했다가 이윽고 시들어 가니까.’라는 부분이 이어짐을 알 수 있다. 뒷말에는 베르나르 드 클리뉘의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서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 소개되었다.
또한 불교의 꽃이 연꽃이듯, 카톨릭의 꽃은 장미라 할 수 있다. 카톨릭에서 묵주나 묵주기도를 뜻하는 로사리오(rosario)는 도미니쿠스가 이단자와 싸우면서 ‘성모님께 영적인 장미꽃다발을 바친다’라는 구호를 쓰며 영적인 무기로 사용하였다. 이탈리아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는 가시가 없는 장미 정원이 있는데, 프란체스코 성인이 번뇌로 힘들 때 장미정원에서 몸부림쳤는데, 그때 장미 가시가 다 떨어졌고, 그 뒤로 가시가 없는 장미가 자란다고 전해진다. 『장미의 이름』에서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이단 논쟁을 벌인다.
이렇게 ‘장미’라는 이름은 제목으로 적합하다. 결국 인생의 덧없음을,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수도원 장서관의 비밀도 덧없음을 작가는 아드소의 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한다.
2. 수미상관식 이야기 구조
나는 모든 책에서 호메로스를 찾는다. 작가의 의도이든, 나의 착각이든 아주 즐거운 행복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나는 여러 군데에서 호메로스를 찾을 수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앞과 뒤의 짝이 맞는 것이다. 『일리아스』는 1권과 24권, 2권과 23권이 서로 연결된다. 나는 『장미의 이름』에서도 프롤로그/제1일과 제7일/뒷말이 연결되고 있음을 알았다.
1) 윌리엄의 추리 : 시작에 윌리엄은 수도원 원장의 말 브루넬로를 찾아 그의 능력을 초반부터 과시한다. 그리고 추리와 우연 끝에 장서관의 비밀장소인 ‘아프리카의 끝’을 찾는다.
2) 윌리엄에 대한 평가 : 아드소는 윌리엄 사부님을 소개할 때 ‘허영심의 유혹에도 기꺼이 굴복’한다고 했고, 마지막에는 ‘지적인 허영에 못 이겨’라고 그를 표현했다.
3) 하르마게돈 : 아드소가 도착한 수도원의 교회 정문 장식에 하르마게돈이 자세히 표현되었다. 그리고 수도원이 불탈 때 수도사 파치피코는 아드소에게 ‘하르마게돈에서 도망쳐’라고 말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 : 『장미의 이름』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시작과 끝에만 배치되어 웃음의 효과에 대해 윌리엄과 호르헤가 논쟁한다.
4) 가짜 그리스도 : 천년 만에 나타나 기독교사회를 교란할 가짜 그리스도는 노수도사 호르헤를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된다. 제1일에서 제1일에서 호르헤는 아드소가 10세기 이전에 「가짜 그리스도에 대하여」를 쓴 저자라고 소개한다. 또한 제7일에서 윌리엄이 가짜 그리스도로 호르헤를 지목했다. 결국 잘못된 맹신으로 사람을 죽이고 기독교 세상의 파멸을 가져온 ‘가짜 그리스도’는 앞과 뒤에 정확하게 배치되었다.
5) 수도원의 소개 : 아드소의 눈을 통해 수도원의 건물 배치가 초반에 소개되었고, 나중에 수도원이 불타는 순서로 수도원이 다시 한번 소개된다.
6) 황제와 교황의 분쟁 : 프롤로그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드비히와 프랑스인 교황인 요한 22세의 세력 싸움을 자세하게 소개했고, 뒷말에서는 밀라노에서 대관식을 올린 황제가 결국 후퇴하고 교황의 승리를 기록했다.
7) 장서관 :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유럽 최고의 장서의 보고인 장서관에 대해서도 초반에는 소개의 의미로, 끝에는 ‘양피지 조각과 인용문과 자투리 문장으로 남은 파편으로 된 장서관’이라는 의미로 장서관이 쓰였다.
3. 호메로스식 서술 방법
1) 외모에 대한 편견
『일리아스』는 귀족적인 서사시이다. 그래서 아킬레우스나 여러 왕은 아주 멋지게 설명된다. 하지만 테르시테스와 돌론에 대해서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외모와 형편없는 성품을 소개한다. 『장미의 이름』에서도 아드소는 프롤로그에서 ‘이제부터는 글을 쓰되 개인에 대한 묘사는 되도록이면 피하고자 한다. … 인간의 외양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윌리엄과 본인 아드소에 대해서는 뛰어난 외모를 자랑하지만, 레미지오-살바토레-호르헤-말라키아-베렝가리오-베르나르 기에 대해서는 외모적으로 아주 혹평해놨다. 단순한 생김새의 의미를 넘어 어쩌면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우리 말과 상통할지도 모르겠다.
2) 호메로스는 중요한 사물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목록 넣기를 좋아한다. 특히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의 선물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미의 이름』에서도 교회 정문 조각이나 성물방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된다.
3) 단순한 서사 구조를 넘어 한 시대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일리아스』에서 나오는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신화가 소개되면서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노래한다. 『장미의 이름』도 셜록 홈즈식 추리소설에 중세 교회의 분쟁을 소개하면서 중세 말의 세계관을 연결한다.
4. 기독교 세계의 종말
예수 그리스도는 서기 1년에 태어나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예루살렘 베들레헴에는 327년에 예수 탄생기념성당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장미의 이름』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327년에서는 수도원이 불탄다. 이것은 기독교 공인(313년) 이후 천년 만에 교회가 몰락하여 신학 중심 중세 시대가 저물고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새 시대를 열리는 것을 의미하고, 신학의 파편(아드소가 주운 양피지)만 남아 신의 세력이 약해졌음을 밝힌다. 또한 『장미의 이름』이 쓰인 1980년은 두 번째 천년을 이십 년 앞둔 시기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본인이 겪는 세기말과 기독교의 세기말을 『장미의 이름』에서 잘 융합했다.
5.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왜 썼을까.
작가들은 그 작품을 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을 찾으려 노력했고, 나만의 해석을 더한다. 제1일에서 프란체스코회 엄격주의파 노수도사 우베르티노는 ‘지적 교만이 언어에 대한 교만, 지혜에 대한 환상으로 축성’되며 ‘지나치게 많이 아는 자들 사이에서 그 원인을 찾도록 하게.’라고 말했다. 제7일에서 윌리엄은 아드소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장미의 이름』은 지식에의 탐욕, 육체를 탐하는 탐욕, 권력에의 탐욕, 부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라고 한다. 탐욕과 교만은 자신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우리의 주인공 윌리엄도 지적 허영심에 따른 탐욕으로 수도원을 불태우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런 일반 사람의 탐욕과 더불어 교회의 탐욕과 분열을 폭로한다. 부를 축적하는 교황청에 대한 프란체스코회의 청빈 주장과 이단 몰이와 마녀사냥은 교황청의 폭력을 말한다. 또한 수많은 보물 같은 고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내놓지 않은 수도원 장서관을 통해 교회의 탐욕의 끝을 보여준다.
6. 움베르토 에코의 모습은 이탈리아인 아이마로이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모습을 아이마로에서 찾았다. 에코와 아이마로는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아이마로는 매사 빈정거리며 수도원의 폐쇄적인 모습에 불만을 표출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래학자로서 세기말의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하려 했고, 그의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7. 내가 본 『장미의 이름』은 환상소설이다.
제1일 교회 정문 장식 앞에서 - ‘나는 비로소, 내가 본 환상은 바로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부터 내 이 교회 문간으로 달려와 내 체험이 이 문간의 예언과 그대로 일치한다고 무릎을 친 것이 무릇 몇 번이던가!’
『장미의 이름』은 어린 수련사 아드소의 성장을 다루면서 작품이 시작할 때 ‘환상’이라는 단어를 넣어 환상소설임을 미리 밝혔다. 『장미의 이름』에서 가장 대표적인 환상은 아드소의 꿈인 ‘키프리아누스의 만찬’이다. 그러나 제1일에서는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 교회 정문 장식, 제2일에서는 장서관 거울, 촛불, 찬바람, 바람 소리를 통한 마법 같은 환상 체험, 제3일에서는 아드소와 마을 소녀의 꿈같은 만남, 제4일에서는 장서관에서 엉뚱한 서책들이나 사랑의 치료법에 대한 소개, 제5일에서는 유쾌한 약속이 그려진 집회소 장식, 제6일에서는 아드소의 꿈 –키프리아누스의 만찬, 제7일에서는 하르마게돈을 방불케 하는 수도원의 불에서 각 날들의 대표적인 환상을 찾아본다.
『장미의 이름』을 온통 감싸고 있는 요한묵시록은 요한이 받은 환상적인 계시를 담은 묵시록이다. 요한묵시록은 사탄의 파멸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과정을 환상적으로 소개하는데, 『장미의 이름』을 안개처럼 감싸고 있다.
좋은 상을 받는 책들에는 대체로 환상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게 봤을 때 프랑스의 메디치상을 받은 『장미의 이름』을 환상소설이라는 나의 해석도 그럴싸하다.
그리고
1) 두 개의 건초더미 사이에서, 어느 쪽을 먼저 먹을까 망설이다가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는 나귀 이야기
2) 서책이라 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탐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서책을 대할 때는 서책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3) 유능한 조사관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도, 진실을 말한다는 이유에서 혐의를 두는 법이다.
...가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장미의 이름』을 2회독을 하면서 나름의 독후감을 완성했다. 아드소가 파편으로 만든 장서관을 가지고 있듯이, 이렇게 나의 장서관도 완성해간다.
그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