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2009/2021 해결책
“뿌려 놓은 사금처럼 백두산의 밤하늘을 수놓던 별들도 오늘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이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새까맣기만 합니다”
2023년 여름에 차인표의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학 필수도서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대서특필되었다. 배우 차인표인 줄만 알았는데, 그는 장편소설을 세 편이나 출간한 작가였다. 걷는 걸음마다 선이 굵은 획을 그어 온 차인표였지만, 작가 차인표는 정말 생소했다. 심지어 나는 오래전부터 그의 팬이었는데, 소식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
당장 책을 주문했지만, 이래저래 다른 일들에 밀려 가을에야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읽었다. 단순한 독서를 떠나 “왜” 한국학 필수 도서로 선정되었는지 궁금했고, 그동안 그가 보여준 모습을 봤을 때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차인표는 책 말미에 캄보디아에 사는 훈할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훈할머니는 열여섯 살에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에 끌려갔다가 어찌어찌 살아남았고, 1997년에 한국에 잠시 방문하여 가족과 상봉하셨다. 나는 2023년 겨울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통해 훈할머니의 눈물로 가득한 인생이야기를 보았다. 차인표는 훈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담아 1998년에 단편소설을 썼다. 하지만 저장했던 노트북의 고장으로 소설은 소실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2006년에 다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차인표는 제일 먼저 백두산을 찾았고, 2007년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는 <나눔의 집>을 다녀왔다. 오랜 수정과 모니터링을 통해 2009년에서야 책은 『잘가요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2021년에 다시 츨판하면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읽고 있으면 마치 차인표의 내레이션을 듣는 기분이다. 그는 차분하게 백두산 호랑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려준다. 작가는 먼저 일제강점기에 살던 청춘들이 겪는 시대의 아픔을 위로한다. 이어서 민족의 명산이라는 백두산의 정기와 자연을 소개한다. 그다음으로는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범죄를 폭로하고 고발한다. 훈할머니처럼 어린 소녀 시절을 빼앗긴 채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어 일본군이 가는 곳곳에 끌려간 나라 잃은 소녀들이 주인공이다. ‘순이’가 갖는 이름의 특징처럼. ‘순이’는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에서의 박순이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에서 아픔의 상징이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새끼 제비가 백두산 천지의 물을 박차고 오르면서 시작한다. ‘물찬 제비’ 또는 ‘공중 제비’를 하는 새끼 제비는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이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31년과 1938년이다. 십 대 초반의 아이들이 십 대 후반의 청춘이 되어 역사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여러 군데에서 장면이 연결된다. 엄대네 소를 잡아가는 호랑이의 모습은 나중에 순이를 낚아채서 도망가는 용이의 모습으로, 포수들의 쇠덫이 용이 발목을 꽉 물어버릴 것이라는 느낌은 나중에 실제로 용이의 발목을 물어버리는 장치로, 호랑이 마을에 해를 끼치는 어미 호랑이 육발이는 죽지만, 자식 육발이는 자신을 살려준 용이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다시 등장하며 연결된다. 또 아이를 많이 갖고 싶은 순이의 바람은 샘물 할머니의 십 수명의 자손으로 연결된다. 반면에 순이를 구하려는 일본 장교 가즈오와 돈만 생각하는 조선 포수 장포수의 대립은 역설적이다. 순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가즈오 마쯔에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는 선량한 일본인이기도 하고, 일본 제국의 범죄에 대한 제물이기도 하고, 또 역시나 제 욕심만 내는 일본 제국처럼 자신의 욕심을 위해 순이를 차지하려는 일본 제국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는 마지막에 순이에게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는데, 이때 제비가 흘린 눈물은 동감과 용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왜 옥스퍼드 대학교의 한국학 필수 도서로 선정되었을까”를 생각했다. 한국학 교재라면 한국의 정서와 한국어를 가장 잘 살린 교재일 것이다. 백두산과 호랑이와 순이와 용이는 한국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또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간결한 문체와 풍부한 어휘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우리말의 특징을 잘 살려주는 의성어‧의태어가 샘물처럼 넘친다. 아름다운 흉내말들이 백 여개가 넘게 소개되었다. 이런 흉내말은 사물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 생동감을 준다. ‘울퉁불퉁, 꼬불꼬불, 몽실몽실, 모락모락, 휘적휘적, 그렁그렁, 조근조근, 슬금슬금, 성큼성큼, 빙글빙글, 방울방울, 뭉툭뭉툭, 두런두런, 땡글땡글, 흘깃흘깃, 뉘엿뉘엿, 구석구석, 꼬물꼬물, 뚜벅뚜벅, 주렁주렁, 방긋방긋, 고래고래, 쌔근쌔근, 비틀비틀, 오글오글, 첨벙첨벙, 바들바들….’ 앞뒤가 반복되는 말들은 우리말이 가진 아름다운 말멋이고 말맛이다. 우리는 익숙하게 사용하는 말이라 그 말의 아름다움을 모르지만, 미국에서 살았던 차인표는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에 나온 부사들을 정리하면서 흉내말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백두산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백두산의 주인공은 한자어나 영어가 아닌 아름다운 우리말 꽃들이다. ‘연분홍 구름국화꽃, 노란 애기똥풀꽃, 새하얀 박새꽃, 진분홍 털개꽃, 자주빛 두메자운, 노란 애기금매화, 노랑만병초… 꿀밤나무,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사스래나무, 장군풀….’ 이 땅의 순이처럼 수많은 들꽃은 우리땅을 상징한다. 꽃들 이외에도 제비, 호랑이, 풍산개, 소, 돼지, 말, 곰, 독수리, 늑대 등 우리말로 된 동물들도 등장한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시대를 위로하는 책을 따라가지 못한다. 세계적인 큰 상을 받는 책들의 명단만 봐도 그렇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캠브리지 대학교에 비해 진보적이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우리 시대의 순이와 용이를 위로하는 시대정신이 담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를 선택했을 것이다.
황포수와 용이는 가족을 잡아간 백호를 찾아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백두산까지 올라왔다. 황포수와 용이가 똑똑히 보았다는 백호는 신기루일까. 백호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백호는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에 끝내 나오지 않는다. 순이는 힘들게 참고 견디는 용이에게 백호를 용서하라고 말하는데, 용이는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작가는 일본의 뻔뻔함을 비판하면서 또한 할머니들을 위해 일본이 진정한 사죄를 하여 할머니들 가시는 길이 편안하길 바란다. 어쩌면 일본 장교 가즈오는 작가의 바람이 투영된 인물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두 번 읽었다. 똑같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똑같은 곳에서 책을 잠시 멈췄다. 조근조근 대화하듯 담담하게 쓰인 이 이야기는 샘물이의 고장 난 눈물샘처럼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모두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