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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ro Jan 17. 2024

거룩하고 평범한 맥간의 숲

1984년 논산 훈련소에서 경산으로 자대배치받고 동대구 역에서 내렸을 때,

도심 중앙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침엽수들이 하얗게 눈을 이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거룩한 설송(雪松)의 이미지였다.

무슨 나무? 물었더니,

누군가가 "히말라야시다!"라고 했다.

한반도 남쪽에 웬, 히말라야? 했었는데, 맥간에 오니 이제 그 뜻을 알겠다.

맥그로드 간지는 히마찰 쁘라데쉬주에 속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히마(hima)는 눈, 히말라야의 어원이 그로부터 왔다.

'히말라야'가 눈을 뜻하는 '히마'(Hima 雪)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라고 하니,

'세계의 지붕'이란 뜻이 대체로 이해가 된다.

히말라야 시다(Himalaya Cedar)는 히말라야 삼나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 자생하는 개잎갈나무를 뜻한다. 개잎갈?

개는 MZ세대식 표현으론 "끝내준다"는 뜻이지만 내 세대는 별 볼 일 없을 때 주로 썼다.

부친께서 즐겨 쓰시던 '개나발', '개코' 같은 표현은 입과 코를 비하하는 표현이었으니까.... 암튼, 그렇다면 개잎갈은 잎갈이 아니란 뜻인데, '잎갈'을 찾아보니 잎을 간다는 뜻, 그러니까 '개잎갈'은 잎을 갈지 않는다, 따라서 '개잎갈나무'는 잎을 갈지 않는 늘푸른나무, 낙엽송보다는 상록수에 가깝겠다.

맥간의 숲은 깊고 고요하다.

남걀사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우리 읍내 정도의 마을 번화가를 벗어나면 금방 인적이 드물어진다.

어른 키의 수십 배는 될지 싶은 빽빽한 침엽수림, 개잎갈나무 숲이다.

개잎갈나무 학명은 Cedrus deodara,

deodara는 산스크리트 어 '신의 나무'를 뜻하는 Deodar가 어원이다.

신들의 거처 데오다르(Deodar) 숲에 오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숲 속에 교회가 하나 있다.

Church of St.John in the wilderness, 북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만신의 나라 힌두스탄에 자리 잡은 서구풍의 교회라니. 이건 또 웬일일까 싶다.

앵글리칸 처치라면 성공회, 그렇다면 이 교회는 영국식민지 당시 인도에 세워졌을 것이다. 통치자 맥그로드 부지사께서 휴양차 왔을 때 아마도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의 영혼을 보듬는 종교는 때때로, 아니, 아주 자주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 텐데 이곳에 오면 그런 과거사가 느껴지지 않는다. 고요함 속에 충만한 기운이 감돈다.

힌두와 이슬람 복장을 한 인도인들이 경건하게 예배를 올리고 있다. 시간은 공간의 흉터를 아물게 한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어찌 보면 필요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세월은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간다. 흘러가는 물에 의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것이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겠다는 시도는 집착일 뿐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말한다.


"전쟁의 목적은 단지 왕권을 찬탈하는 것이 아니다. 불의에 맞서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는 사익, 후자는 공익의 영역일 것이다.

히말라야의 작은 티베트가 자리 잡고 있는 북인도 맥그로드 간지,

이곳에서 식민의 잔재를 보는 것은 아픈 역사의 현장확인일 수 있겠지만, 이곳이 폐허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 아픔을 겪은 평범한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들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거룩하고(聖) 보편적인(公)' 성공회(聖公會) 교회가 있는 맥간의 숲은 오랜 세월 속에서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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