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할 내용이 있다며 기자실을 찾았는데 다른 기자들이 시큰둥했다. 나만 만났다. 얘기를 듣고 나니 얘기가 됐다. 기사가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에 들어갔다.
특정 케이스를 방송이라는 공기(公器)에 담기 위해 리포트를 만들 경우 아래 몇 가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1. 특정 케이스가 공익에 부합하는가?
2. 공익적이라 하더라도 특정인의 사례에 국한하는가?
3. 국한한다면 다른 유사한 케이스를 찾을 수 있는가?
4. 이 사안에 대한 반론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가?
2007년 발생한 김명호 교수 사례는 이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영화화되기까지 한 소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제법 큰 뉴스였다. 하지만 내가 김 교수를 처음 만난 시점은 2005련 봄, 그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 2년 전이었다. 나는 김 교수 사례를 리포트하기 위해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출 경우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란 판단 아래 또 다른 해직 교수를 수소문했다. 마침내 두 해직 교수 사례를 엮어서 하나의 리포트로 완성했다. 두 교수 입장만으로 객관성이 담보되기 어려울 것에 대비해 교육부 관계자의 인터뷰까지 실었다. YTN 리포트로 1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은 별 반응이 없었다. 아래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제목 : 해직교수, 험난한 복직의 길
[앵커멘트]
얼마 전 서울대 김민수 교수가 오랜 법정투쟁 끝에 다시 강단에 섰습니다만, 이처럼 험난한 법정공방을 거치지 않고도 해직교수들이 복직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이 이달 중 국회를 통과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정작 관련 교수들은 이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김호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96년 대학의 재임용심사에서 징계를 이유로 탈락한 김명호 씨. 당시 교원징계재심위원회도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경징계인 견책으로 바꾸라고 했지만, 김 씨는 결국 해직됐습니다. 이민 이후 10년 만에 고국을 찾은 김 씨는 해직교수 복직을 위한 특별법에 기대기보다는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녹취:김명호] "10년 동안 고려했었던 재임용 소송을 김민수 교수의 판례 번복으로 인해 가능성이 보여서 그것을 끝맺으려 왔습니다." 지난 97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이호영 씨. '보편성을 넘은 독특한 가치관을 보인다'는 주관적인 평가가 부적격 사유였습니다. 교육부조차 대학의 이 같은 처분은 부적정하다는 감사 결과를 통보했지만 결국 해직됐습니다. 이교수 역시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며 현재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녹취:이호영] "현재 특별법에는 공백 기간 동안의 여러 가지 신분상의 보상문제가 전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특별법에 의해 구제 결정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대학이 이를 거부할 경우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녹취:이종서,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저희 위원회로서는 강제적으로 집행할 권한은 없습니다. 교육부를 통해서 저희 결정이 실효성 있게 이행되도록 행, 재정적인 압박수단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부당하게 해직당했다고 주장하는 교수들은 줄잡아 5백여 명. 이들을 위한 특별법까지 준비되고 있지만 해직교수들의 복직 길은 여전히 험난합니다. YTN 김호성입니다.
김명호 교수 관련 1보를 리포트 한 뒤 나는 속보를 이어가지 못했다. 1년 동안 해외연수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연수 후 귀국한 나는 2007년 1월 15일 김 교수 관련 뉴스를 접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날아든 화살을 맞은 느낌이었다.
제목 : 고법 부장 판사, 전직 교수에 석궁 피습
현직 고법 부장판사가 판결 결과에 불만을 품은 소송 당사자로부터 석궁으로 습격을 당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고등법원 민사부 박 모 부장판사가 오늘 저녁 7시쯤 김 모 씨로부터 석궁에 배를 맞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밝혔습니다. 박 부장판사는 현재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직 대학 교수인 김 씨는 해직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지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김 씨를 붙잡아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난 뒤 속보 아닌 새로운 1보를 전하는 사건사고 스트레이트의 주인공은 바로 김명호 교수였다.
이후 김 교수는 '석궁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011년 만기 출소했다.
그를 소재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출소한 그해 개봉했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영화 속 대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이 시점에서 김 교수 사건과 연관된 재판 과정을 얘기하는 것은 '미디어 트레이닝'의 주제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석궁 사건' 이전 1보 리포트를 했던 내가 2보, 3보를 통해 해직교수 문제를 속보로 전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스러움이다. 개인의 사례를 공적 영역으로 확대시키면서 이 사안이 갖는 공익의 문제가 어떠한 것인지 하는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어야 한다는 자성이었다. 그렇게 했다면 한 개인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어도 석궁을 쓰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도 늘 안타까운 부분이다. 스트레이트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리포트를 통해 전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속보 리포트를 써야 했을 내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시공간적으로 뉴스의 현장을 떠나 있었던 것이 아쉽고 또 아쉬운 대목이다.
세월호 보도의 경우도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팩트를 바탕으로 늑장 구조 1보를 날리고, 현장의 위기 상황을 속보로 타전하고, 리포트를 통해 세부 사항을 알리고, 생중계를 통해 3보, 4보를 이어 나갔다면, 끔찍한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 다음 회에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속보 리포트는 왜 하는가?
저널리즘은 현장에서 확인한 팩트 조각의 퍼즐을 맞춰가면서 사건 발생-사건 개요-사건 원인-대안 제시까지 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일 팩트가 보여주는 사실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팩트를 통해다른 사실을 확인하고, 사실 검증을 위해 크로스 체크하고, 그 과정에서 진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