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를 위한 변명

재난 리포트

by Spero

뼈 아픈 단어


'기레기'.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에서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 (위키백과)


평생 기자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퇴직한 내게 가장 뼈 아픈 단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 단어다.

언론사에 입사해 평기자, 데스크, 국장, 임원을 거치는 34년 동안 나는 '기레기'란 단어를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다. 비교적 최근에 들었을 뿐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했을까? 단언컨대, 그 시점은 세월호 보도 이후일 것이다.

언론은 세월호 보도를 어떻게 했을까?

나는 지난 2014년 한국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 재난보도분과 위원장을 맡았었다. 각 방송사 기자들과 함께 세월호 보도 관련 사례를 분석했고 그 결과물을 '세월호 보도... 저널리즘의 침몰'이란 제목으로 내기도 했다. 위원회는 “세월호 참사는 한국 방송 언론의 수준과 시청자들의 기대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고였다"라고 정의했다.

잘못된 대표적 사례를 살펴보자.


1. 역대 최악의 오보


세월호 참사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언론 역사상 최악의 오보에 기인했다는 주장이 여전히 공감을 얻고 있다. 구조하지도 않은 희생자 관련 소식을 팩트 확인 과정 없이 한 언론이 보도했고, 다른 언론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이를 뒤따랐다. 보도 참사였다.


세월호 보도 참사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 자막으로부터 시작됐다. 사건 발생 두 시간 정도 후인 11시부터 11시 반 사이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가 연쇄적으로 씻을 수 없는 자막 오보를 이어갔다. '속보'가 '정확'을 추월하면서 빚어진 대한민국 언론 역사 상 최악의 오보 참사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MBC가 11시 1분 "학생 338명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내면서 거의 모든 방송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최초 오보 논란과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MBC 아닌) MBN이 11시1분7초 "단원고 측, 학생 모두 구조"라는 자막과 함께 단원고 측에서는 학생 모두가 구조되었다고 밝힌, "다행입니다 일단은 증언과 각 곳에서 나온 말이 다른데 이 보도가 정확한 사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앵커 멘트도 함께 방송하여서 이같은 내용을 명확한 오보 라고 단정하여 자료로 제출하기에는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보았다.) 오보를 둘러싼 정황은 이러했다. 사고 당일 단원고등학교 강당에서 누군가가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라고 말한 것을 MBC에서 사실 확인 없이 보도했고, YTN은 이를 그대로 여과 없이 받아 보도했으며, 경기도교육청은 YTN 보도를 근거로 '전원 구조' 문자를 학부모들에게 발송했다. 속보 경쟁에 휘말린 언론사들이 팩트 체크 없이 경쟁적으로 오보를 양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학생 전원 구조', '선체 진입 성공' 등 검증되지 않은 언론보도를 정부 기관이 인용 확인함으로써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2. 받아 쓰기 식 보도


언론은 현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팩트 취재 없이 정부가 내놓는 자료만 참고하며 입체적인 구조활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식의 왜곡 보도를 이어나갔다.


[KBS 뉴스 9]

“육해공 총동원, 하늘·바다서 입체적 구조작업”

[앵커멘트]

구조작업에는 해경과 해군의 함정과 헬기는 물론이고 민간 어선까지 모두 동원돼 하늘과 바다에서 동시에

입체적인 구조 작업이 펼쳐졌습니다.

[기자]

사고 직후, 동원 가능한 모든 장비와 인력이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가장 먼저 사고를 접수한 해경은 현장에

헬기와 경비함정을 급파해 곧바로 구조작업에 나섰습니다. 투입된 경비함정만 81척, 헬기 15대가 동원됐고,

2백 명에 가까운 구조인력이 배 안팎에서 구조작업을 벌였습니다.

군 당국도 육해공군 가릴 것 없이 전력을 총동원해 현장에 투입했습니다. 사고 직후 해군은 유도탄 고속함을

시작으로 20여 척의 함정을 현장 구조 작업에 즉각 투입했고, 해상 수색이 가능한 링스 헬기 등 항공기도

공중에서 수색과 구조를 도왔습니다.

수중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해군 해난구조대 SSU와 해군 특수전여단 UDT/SEAL 소속 정예병력 백 70여 명도 구조에 들어갔습니다.

공군 역시 구명보트를 탑재한 수송기와 구조헬기를 사고 해역에 급파해 구조 지원에 나섰고, 육군도 특전사

신속대응부대 150명을 현장으로 보냈습니다.

구조작업에는 민간 어선과 행정선 등도 힘을 보탰습니다. 사고 직후 조업에 나섰던 민간 어선 등 10여 척이

구조현장을 누볐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숫자는 수십 척으로 늘어났습니다.

KBS 뉴스 000 기자입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의 취재후기는 위 보도와는 상반된 입장을 전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 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낮에는 헬기를 타고 현장 상황을 취재하러 사고 해역을 다녀오던 참이었습니다.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사고가 발생한 지 7시간 이상이 지난 오후 4시 20분쯤이었습니다. 뱃머리 부분 일부만 수면 위로 드러나 있었는데, 구조작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구조에 나선 인력이 너무 없었습니다. 잔인할 정도로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밤늦게 진도군 실내체육관에 도착해 실종자 가족들의 상황과 수색 상황을 중계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실종자 가족들에게 지금 심정이 어떤지를 물었습니다. 그 사이 구조작업을 총괄하고 있던 해경은 잠수요원을 수백 명 투입해 대대적인 구조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많은 언론사들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서 썼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가족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과 비판은 커져갔습니다. 체육관이나 체육관에 묶여 있는 기자들과 달리 배를 타고, 헬기를 타고 구조 현장을 직접 갔다 왔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진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규모 구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에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014.5.9 SBS 취재파일)


3. 비윤리적, 자극적, 선정적 보도


재난보도는 남의 불행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다.

BBC는 속보라는 미명으로 희생자 명단조차 방송을 통해 알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실종된 경우, 그것이 합리적으로 실행가능하다면, 희생자 의 가족이나 최근친(next of kin)이 그 사실을 BBC를 통해 알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BBC 제작가이드라인 11.4.7)

When poeple have been killed, injured, or are missing, it is important that, as far as is reasonably practicable, next of kin do not find out from BBC output.


독일언론윤리강령도 "사고나 재난 시 언론은 희생자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조치를 정보 제공보다 우선 시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들은 알 권리에 부응한다는 미명 하에 재난보도 현장을 마치 스포트 경기 중계하듯 비윤리적이고 자극적인 선정성 보도를 경쟁적으로 이어갔다.


[YTN 뉴스]

“순식간에 기울어”... 사고 직후 영상 확보

[앵커멘트]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전해드렸지만, 세월호는 순식간에 기울어 바다에 침몰한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YTN이 사고 발생 직후, 세월호 내부 모습이 담긴 영상을 단독으로 확보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기자]

09시 08분------------

지금 보신 화면은 세월호에 승객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화면인데요, 9시 8분쯤에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입니다. 신발도 가지런히 놓여있고, 승객들도 눕거나 앉아서 TV를 보고 있습니다.

09시 11분 38초------

하지만 불과 몇 분 뒤, 배는 벌써 확연히 기울어졌습니다. 상당히 기울어져서 받침판 없이는 누워있기도 힘든

상황 구명조끼를 이제 막 입기 시작한 듯 서로 구명조끼 주고받음

09시 20분------------

마지막으로 9시 20분을 조금 넘긴 뒤의 영상입니다. 승객들도 이상을 감지. 구명정을 띄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오가고 조용하던 객실이 웅성거립니다.


4. 본질 희석식 보도


'구원파'라는 종교 단체가 등장하면서 세월호 보도는 본질이 희석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해상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함에도 시건의 본질을 벗어난 특정 종교 단체에 보도 프레이밍 하면서 흥미 위주의 보도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SBS 8 뉴스]

'구원파' 뭐기에? "직원은 신자로… 헌금으로 사업"

[앵커멘트]

유병언 씨는 또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속칭 '구원파'로 불리는데, 유병언 씨 일가가 주요 계열사들을 이 구원파 신자들로 채우고, 이들의 헌금을 사업자금에 이용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기자]

기독교복음침례회, 속칭 '구원파'는 지난 1962년 권신찬 목사와 권 목사의 사위인 유병언 전 회장이 설립한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단 문제를 연구하는 기독교 전문가들은 구원파가 특이한 교리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탁지원/종교연구단체 '현대종교' 소장 : 한 번 회개하면 더 이상 죄를 지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의 죄를 지어도 한 번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구원의 취소가 되지 않는다라고….]

외부 전문가들은 이런 교리가 사람들의 죄책감을 약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도덕 폐기론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국가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출근길 아침 시사 프로그램 '김호성의 출발 새 아침' 진행 당시 출연자로 나왔던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10대는 88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과 같은 대형 이벤트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예요. 그 대신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세월호를 통해 경험한 세대이지요. '국가는 나를 지켜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세대입니다."


바로 이 세대들이 '국가' 뿐만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책임도 묻고 있음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2014 전국 초중고 학생 논술대회' 심사를 맡으면서였다.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학생들이 언급한 대표적 키워드는 ‘안전’, ‘늑장 구조’, ‘리더십’, ‘언론’이었다.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4933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의 취재현장에서 재난 리포트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는 기자가 있을 것이다.

어제의 재난 현장에서 일상처럼 반복됐던 과오는 이제 끝내야 한다. 오늘의 재난 리포트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실천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언론의 책임을 묻고 있는 미래의 저널리스트들의 몫이기도 하다. '세월호 보도... 저널리즘의 침몰' 보고서에 실린 4년 차 카메라 기자의 반성문으로 기레기를 위한 변명을 대신한다.


희생자 가족에게 "기레기다". "보도 똑바로 해라" 욕을 듣고 맞고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다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10kg이 넘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견디는 이유는 우린 사실을 기록하고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로서 늘 평양, 뉴욕 같은 현장 한가운데 있었던 나는 세월호 당시에는 현장을 비껴 나 있었다. 등산할 때 안 보이던 꽃들이 하산 길에 하나 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골짜기를 벗어나니 비로소 산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팩트에 기반해 진실 속으로 들어가는 순례를 다시 하고 싶었다. 30초 안팎의 스트레이트, 1분 30초를 넘기지 않는 리포트가 아닌 호흡이 긴 '피처 스토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참고 : 재난보도준칙 https://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