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오는데 당신은 왜 못 오시나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응시자에게 지원 동기를 물었다.
Q ; 어떤 연유로 지원하게 됐습니까?
A ; 네...채용공고에 '전공 불문'이라고 적혀 있길래 주저 않고 지원했습니다!
이 전설적인 답변은 이제 아재 개그로 술자리의 싱거운 안주가 되어 버렸지만
실제로 언론계에는 불문과 출신의 모임이 존재했다.
이름하여 불문곡직!
믿거나 말거나...
난 불어를 못한다.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한 학기 들었지만,
봉쥬~즈템므~라비앵로제~꼬몽 딸레부~이런 흉내 낼 정도다.
그런 내가 아다모의 '통 베라 네제'를 부른다.
중학교 때, 이 노랠 수 없이 따라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기타 치면서 중간중간 불어로 이 노랠 부를 수 있다.
이 역시 믿거나 말거나...
노래에 대한 내 생각은,
들으면서 따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악보를 보고, 가사를 확인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노래방에서 자막을 보면서 부르는 노래가 내 것이 되지 못하듯이...
지금도 눈이 내리면,
나는 아다모의 이 노랠 흥얼거린다.
LP를 턴테이블에 올리면,
하얀 눈물(larme blanche), 슬픈 확신(triste certitude),
무심한 회전목마(impassible manege), 추위와 그대의 부재(le froid et l'absence)같은
불어 발음이 귀에 쏘옥 쏙 들어온다.
10대 때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두 살배기 아기가 엄마 말 따라 하듯
그렇게 따라 불렀다.
눈이 내리네
당신은 오늘밤 못 오시겠지요
내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해요
(Tombe la neige / Adamo)
절망의 아픔을 얘기하는 이 노래는 그러나,
노래의 힘으로 희망을 만든다.
1998년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란 프랑스 영화가 개봉됐었다.
지독히도 가난한 프랑스 남부 시골마을에 일곱 아이들과 함께 사는 한 중년의 여인,
남편의 학대, 굶주림과 추위를 감당 못한 여인이 어느 겨울밤 난로구멍을 열어 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데...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묻는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Y'aura-t-il de la neige a Noel?)
아이들이 잠든 집안 가득 밤은 죽음처럼 깊어가고,
혼미한 정신 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세상에나~
눈 내릴 없는 남부 프랑스에 거짓말처럼
펑펑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창문을 연 여인, 울음 우는 막내,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
아이들의 눈싸움을 바라다보는 여인,
그 장면에서 깔리던 OST,
아다모의 'Tombe la neige'였다.
영상과 노래가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감탄했던 영화였다.
자연의 섭리는 때때로 사람의 선택을 바꾼다.
동상에 언 귀도 녹일 것만 같은 아다모의 감미로운 허스키 보이스,
나의 10대는 대설주의보 같은 이 노래에 온통 흰 백색으로 점령당해버렸다.
오늘 눈 내리고,
난 습관처럼 아다모의 LP를 꺼낸다.
50년 묵은 카셋테이프로 즐창 듣다가
워크맨 쓰기 불편해 듣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 청계천 풍물시장에서 산 LP 음질이 제법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