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서 내려오니 비가 쏟아진다. 한꺼번에 몰아치는 빗방울이 우산 속으로 들이닥친다. 우산 속으로 한껏 몸을 움츠렸지만 도복을 넣은 가방과 상의가 축축해졌다. 여기서 잠시 멈춰서 피해 갈까 망설였다. 세차게 내리치는 빗방울에 걸음이 머뭇거렸다. 엄마를 기다릴 막내를 떠올리며 한걸음 씩 빗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하늘이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눌러놓은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처럼 느꼈다. 정작 울고 싶은 건 나였다. 당장이라도 펑펑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사람은 나였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출근만 하면 마음이 눅눅하고 꿉꿉해진다. 습기와 물기가 가득 찬 마음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감춘다. "창피해서 어떡해? 이석증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받으며 열심히 했다고. 그동안 내가 만든 결과물은 인정해 줘야지? 문서능력이 떨어져서 안 되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낯부끄러워서 이제 이 바닥에서 어떻게 살아. 병원비로 쌓인 카드 할부는 아직도 남아서 생활비도 부족하다고, 억울해 엉엉엉" 생떼 부리는 아이처럼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싶다. 그러고 나면 답답한 속이 좀 시원해질까? 자꾸만 들러붙는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홀가분 해질까? 흘러넘치는 빗물이 웅덩이가 되어 길가 곳곳에 작은 물길을 만들었다. 발가락 사이로 빗물이 스며든다.
평가결과를 알게 된 팀원들과의 점심시간, 나는 평가 결과에 승복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되지도 않는 겸양을 둘러쓰고 고개를 떨구었다.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치의 의혹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팀장으로서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 덕분에 고마웠다고 말하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고 역성을 드는 그들 앞에서 나는 의연하고 싶었다. 구차하게 구겨지는 말들을 흘리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이 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태도로 말하고 싶었다.
사실은 이대로 조직에서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무섭다. 이 공포가 나를 수시로 뒤흔들고 질리게 한다. 매일 조금씩 조직의 중심부에서 멀어져 바깥으로 맴돌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게 나를 우습게 만든다. 나긋한 태도로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속은 쉼 없이 들끓고 있다. 당장이라도 지긋지긋한 직장을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다. 멍청하고 오만한 그네들을 향해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거냐고 멱살을 쥐어 잡고 주먹질을 해대고 싶다. 수없이 상상만 할 뿐 실현할 수 없는 현실에 서글픔만 남는다.
잘해보겠다고 했던 일도 부족한 나를 자책했던 일도 소용없는 일이었다고 체념하게 된다. 남은 것은 텅 비어버린 쓸쓸한 마음뿐이다. 껍데기만 남은 초점 없는 눈으로 모니터 뒤로 나를 숨긴다. 도전도 절망도 없었던 일로 지울 수는 없다. 삶은 되돌아가기도 취소도 없다. 계획과 맞아떨어지는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언제나 일어났고 충분한 시간과 완벽한 환경은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결정의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했던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결과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탈락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부끄럽고 막막한 마음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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