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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ul 15. 2023

목적의 배신

오늘도 걸어서 체육관에 간다. 주짓수를 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온종일 들러붙은 생각의 파편들 떨어져 나간다. 못마땅한 나를 운동으로 후려치는 시간이다. 내 몸과 상대방의 몸,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거친 숨결, 끈기 있게 덤비 매달리다 보면 뿌옇던 세계가 선명해진다. 묵직 마음도 무겁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간간이 불어오는 청량한 여름 바람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 식다.


나는 매일매일 확연하게 물러나고 있다. 소란했던 모든 민원과 보고와 계획과 실적과 전화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하게 서두를 일도 시급한 마감도 없다. 아무 일도 없고 오가는 사람도 다. 정적이 흐용한 동굴 있는 기분이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 혼자서 시간을 거슬러 다. 팽팽한 긴장감에 숨죽이며 불안정하게 흔들던 지난 일 년을 올린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분명 내가 그 일을 좋아했고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고민했지만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완전하완벽하지 못해서였을까?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무엇을  싶었던 것일까? 힘들고 지치면서도 놓지 못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평가에 떨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나? 무엇이 그리 조급했을까? 그들에게 어떤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고 있었다.


적이 있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고 싶었던 그 마음. 밥만 하는 엄마가 아니라 일로 당차게 성과를 내는 엄마이고 싶었던 마음. 삼 남매의 엄마이자 여성으로서 일로 성장하고 싶었던 마음, 일 잘하는 팀장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남들보다 앞서며 부러움과 주목을 받고 싶은 마음 그것은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어려움을 버티고 장애물을 넘어설 힘과 끈기가 있어야 했다. 밑바닥이 드러난 마음은 누구라도 쉽게 들어와 밟아놓고 짓이겨 놓을 수 있는 상태였다. 직장에서는 집에서 쉬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고, 집에서는 직장에서 지쳤다고 밥을 안 할 수도 아이들을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다.


성공과 전진에 대한 욕망에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계획한 대로 실하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걸려 넘어지는 일도 풀썩 주저앉을 일도 없을 거라 각했다. 설익은 욕망과 근거 없는 오만이었다. 조금 더 빠르게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쫓겼다. 남들처럼 달리지는 못할 망정 무언가 시도하고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무언가 해야 할 거 같고 뭐든 돼었어야 할 거 같은 조급함에 나를 다그쳤다. 나만의 속도를 모르고 없던 열정을 끌어모으며 안달복달했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는 마음의 소리에 굴복했다. 힘들고 버거웠지만 이 정도는 참 텨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조급한 마음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잘하려는 의지는 기본이었다. 그것만 가지고는 업무평가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는 없었다. 마구잡이로 시도하는 것을 도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지나친 목적의식은 조함을 낳는다. 뭐든지 과한 것은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잘하려는 마음 이기려는 마음 주목받으려는 마음이 과정을 건너뛰고 싶은 성급함을 불렀다. 무턱대고 잘하려고만 했던 나는 쉽게 지쳤다. 목적이 선명하다고 결과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의지가 절박해도 결과는 부실할 수 있다. 성큼 뛰어서 목적지로 가려다가 제풀에 지쳐 넘어졌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쓰러진 몸을 일으킬 힘은 나지 않는다. 주저앉아서 멀리 희미해 보이는 목적지를 바라본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시작할까? 그냥 여기서 그만둘까?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간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느라 몸은 부실해졌다. 허술하게 관리하던 살림살이는 퍽퍽해지고 신용도는 추락했다. 상대방의 작은 행동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별일 아닌 일에도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불편하고 꺼려졌다. 패배감에 빠져 변두리를 서성거린다. 인정에 굶주려 스스로를 착취했다. 그동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며 살았다.


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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