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뒷면 Mar 18. 2022

아이에게 찾은 애착

2차 성장기에 들어선 둘째가 감정 기복이 심하다. 세상 행복하게 웃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도 금세 굵은 눈을 뚝뚝 떨어뜨린다. 몸의 변화만큼이나 감정의 변화도 빠르다. 이미 경험한 일인데 이제와 보니 아이의 요동치는 감정 변화가 낯선 풍경처럼 생경하다. 몸이 경험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아이가 학교 WEE클래스 상담을 신청하겠다고 보호자 동의서를 내밀었다. 내 몸에서 나와 작은 발을 꼬물거리던 생명체에게 이제 저만의 이야기 비밀겨나고 있었다. 성큼 낯설어지는 아이의 변화가 반갑고도 당황스러웠.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도 늘어날 것이다. 내가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도 그렇게 세계를 구축하고 성장할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머리로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오작동을 일으키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서명 해주었다.


아이는 하굣길에 종종 전화를 한다. 오전의 일과를 공유하고 마음을 나눈다. 오늘은 발신자 정보에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학교번호가 보인다. 이상한 걱정에 사로잡히기 전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상담 선생님이었다. "어머님, 자녀분 동의하에 상담내용 말씀드리려고요. 괜찮으시죠? 아이가 학업 스트레스가 많아서 힘들고 오빠와 동생보다 자기가 소외되는 거 같아서 속상하다고 하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머님. " 가슴이 답답했다. 괜찮지 않았다. 아이가 한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부인하다. 가빠진 호흡을 누르고 움찔거리는 마음을 감추며 너그러운 어머니 행세를 했다. "아... 예... 그랬군요. 좀 당황스럽지만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빠는 중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막내는 연령이 어려서 밀착되어 있고, 제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네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난처하게 만든 아이에게 화가 났고 이래서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녀석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일하느라 살림하느라 힘에 부쳐도 너를 위해서 애쓰고 부지런을 떨며 노력했는데 뭐라고? 공부 스트레스? 엄마가 자기는 안 챙겨 준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시끄러운 속내를 알리 없는 선생님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군요. 삼 남매를 돌보시다 보면 그럴 수 있지요. 자녀분은 상담이 더 필요할 거 같은데 어떠세요? 괜찮으시죠? 동의하시면 자녀분 편에 보낸 동의서 제출 부탁드릴게요.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서명지도 보내겠습니다."


전화를 끊 음이 산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이의 울먹이는 얼굴이 모니터를 채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선생님의 말과 아이가 선생님에게 했을 말을 되감기 했다.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들었다는 것이 불쾌다. 게다가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 고작 공부가 힘들어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두 마디였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엄마의 역할을 무한대로 올려놓고 스스로를 책망다. 너에게 이보다 더 어떻게 해줄 수 있겠냐며 아이를 탓하다가 결국 모든 원인을 내게 돌다. 아이의 마음도 살피지 못한 나쁜 엄마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꾸짖었다.


나는 엄마가 주는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그것이 손에 잡히는 물성을 가진 것이라면 쉬울 텐데 그게 아니라서 막연하고 막막했다. 사랑을 주는 엄마를 경험하지 못했다. 엄마는 냉담했다.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사랑을 호소하는 어린아이가 내 안에 있다. 그래서 아직도 엄마 앞에만 서면 삐뚤어지고 난 아이가 된다. 그녀가 들으면 정색하고 반박할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랑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행위는 주는 사람을 지우고 받는 자를 우위에 둔다. 상대방이 수없이 주었어도 받은 적이 없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아이소외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주었던 사랑을 아이는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중요했다. 주었으니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 사랑은 아니었다. 폭력이었다. 아이가 받았다고 느낄 때까지, 충분하다고 여길 때까지 주어야 하는 것이 사랑이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엄마에게 마음을 온전히 내주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떠올리며 어린 날의 나를 생각했다. 아이가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소외되었다고 말하는 마음과 내가 엄마에게 동생만 편애한다고 말 마음이 다르지 다. 사랑을 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엄마인 나와, 냉담 엄마에게 화가 난 아이인 나는 한 사람이었다.


사랑을 주는 방식이 서툴러서 공부했다. 오은영 선생님에게 매일 배다. 어색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같은 상처를 대물림하게 될 것 다. 엄마 같은 방식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번 처음이라서 그렇다고 핑계 댈 수는 없었다. 애써서라도 사랑을 배우고 억지 그런 척해야 했다. 복잡한 마음을 접고 아이를 안고 말했다. "엄마가 꽁냥 이를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했어? 오구오구 " 안 어울리는 옷을 걸친 것 같이 어색하고 멋쩍다. 아이가 울음을 삼키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 후에 고개를 든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녁을 먹는 내내 아이는 떠들고 웃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 모든 일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 마라고 예외는 아니다. 엄마니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만 사랑이 필요한 아이의 마음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가운 엄마의 모습은 아이에게 상처로 남는다. 엄마를 부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대답하지 않는 울음이 차곡히 쌓여서 아이는 엄마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게 된다. 글을 쓰며 엄마가 나에게 남긴 상처를 알아차리고 얽힌 감정을 수용하려 한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려고 글을 쓴다.


<사진출처:pinterest>


이전 13화 굴레 밖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