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속도로 피어나기로 했다
맑고 선명한 빨강 튤립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느 학교 담장 너머,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꽃들.
출근길, 늘 걷던 길인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멈췄다.
카메라를 켠다.
찰칵.
그 주변에는
제 할 일을 다한 듯한 벚꽃잎들이
조용히 흩어져 있었다.
이미 한 계절을 지나온 얼굴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얼굴이
같은 자리에서 겹쳐 있었다.
4월 초.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낮에는 덥다고 느껴질 만큼
계절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었을까.
혹은,
어딘가에 그대로 멈춰 있었을까.
그래서였을까.
그날의 나는
잠깐 멈춰 서 있는 이 튤립들이
이상하게도 부러웠다.
누군가는 이미 지고,
누군가는 이제 피어난다.
그저 자기 순서대로
조용히.
그 사실이,
괜히 마음을 건드렸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로
조금은 덜 서두르기로 했다.
나도,
내 계절에 맞게 피어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