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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y 27. 2024

방송작가의 학창 시절은 뭐 특별했을 것 같아?

  중학생 때였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하교 후에는 매일 친구들과 PC방에 게임이나 하고 어른들 몰래 술, 담배나 하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갈 때였다. 그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친구들 집에 하나씩 있는 컴퓨터가 우리 집에는 없었다. 대신 내 방에도 TV가 있었다. 밤늦게까지 TV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정규 방송이 끝날 때까지 보다가 잠들고는 했다. 이때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강호동의 천생연분>, <유재석의 동거동락>같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었는데 매주 주말마다 기다렸다가 챙겨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그저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과 더불어 항상 챙겨봤던 게 밤 10시에 하는 미니시리즈였다. 요즘과 달리 당시만 해도 드라마는 무조건 지상파 3사에서 밤 10시 월화 드라마, 또는 수목드라마, 그리고 주말 드라마가 전부였다. (물론 아침 드라마, 일일연속극도 있었지만 이 시간대의 드라마는 사춘기의 내 취향에 안 맞았다)

그 시절에 방영했던 드라마 한 편이 내 인생을 가장 크게 바꿔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여전히 모두가 마니아를 자청했던 인정옥 작가의 ‘네 멋대로 해라’였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으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드라마를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가장 큰 계기가 된 건 맞으니까) 그냥 적당히 학교를 다니다가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서 적당히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 조차도 별 관심도 없던 나에게는 ‘꿈’이라는 것이 생겨버린 천지개벽 같은 일이었다. 한지만 나에게 ‘꿈’이 생겼다고 무작정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갈만한 의지까지 생기지는 않았다. 내게 꿈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별종' 같은 직업일 뿐이지 현실적으로 와닿지도 않은 탓도 있었다.


  ‘꿈’은 꿈으로 남겨둔 채 놀기에 바빴던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건축디자인과(나름 공고 안에서 전도유망해 보이는 과를 선택했었다)에서 제도나 캐드(CAD)따위를 하면서 또 여전히 하루하루 놀기에 바빴고 고등학교 3년의 세월을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그냥 시간만 보내며 대학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찾아왔다. 친구들 대부분은 실업계 입시전형 같은 걸로 적당한 대학교의 건축디자인과로 진로를 결정한 것 같았다. 나 역시 친구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왜인지 문득 ‘그’ 드라마가 다시 한번 보고 싶어져 어둠의 경로를 통해 드라마 정주행을 완료했다. 나는 잊고 지냈던 ‘꿈’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서울에 있는 전문대에 문예창작과에 수시로 합격을 했다.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라마작가 또한 ‘작가’니까 글을 쓰는데서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아서 무작정 문예창작과에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문예창작과란 어떤 곳인가? 소설, 희곡, 시, 수필 등 글을 쓰는 전반적인 학문을 배우는 학과지만 드라마를 어떻게 쓰는 것인가에 대해서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다못해 시나리오에 대한 수업도 없었다.(내가 다녔던 시절에 내가 다닌 학교 한정일 수도 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나는 지난 학창 시절의 허송세월을 다시 한번 반복하기 시작했다. 수업보다 동아리 활동에 더 집중했고 친구들과 술 먹고 노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은 10대 시절보다 곱절로 빨리 지나갔으며 졸업과 함께 군입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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