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4년차 작가다. 아니, 남자 작가다.
세상 가장 친한 작가 선배의 결혼식이다. 10년을 넘게 같이 일해오면서 선배는 툭하면 본인의 한 달에 한 번 찾아와야 하는 마법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굳이 굳이 남자인 내게 알렸고 그때마다 임신이 분명하다며 ‘레몬테라스’ 카페 같은 곳에서 ‘스드메’를 알아보고는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김칫국 마시지 말라며 선배의 결혼식에는 꼭 한복을 입고 가겠노라 우스갯소리를 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생리현상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절친했던 선배가 결국 10여 년이 지난 후 정말로 시집을 간다.
예정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식장에 도착했다. 아직 신부대기실도 비어있는데 이미 작가 후배들이 도착해서 결혼식 어레인지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옷만 하객이지 하는 행동들은 꼭 촬영장에서 일하는 모양새다. 방송작가들은 왜들 이렇게 사서 고생들을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서 서둘러 한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식장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그득했다. 오랜만에 보는 선배들은 한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며 그저 놀리고 ‘야지’ 놓기 바빴다. “너가 결혼하냐?” “주인공 하고 싶어 난리가 났네.” 등의 반응으로 광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눈치가 빤히 보였다. 옛날이었으면 이런 선배들 반응에 어쩔 줄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헛소리나 늘어놓았겠지만 그건 정말 10년도 훨씬 지난 막내 시절에나 그런 거지, 지금은 그저 “가족끼리 한복 입을 수도 있죠~” “정장 보다 훨씬 편한데요~” 정도의 너스레를 떨며 웃어넘겼다.
한때는 함께 방송국에서 밤새 일하고 웃고 화내고 혼나고 혼내던, 그리고 짧은 만남과 긴 인연을 이어가는 작가 선후배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새삼 옛날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일을 하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들로 가득했던, 여자가 99%인 방송 작가 세계에서 1%의 남자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나의 방송 작가 생활기를 되짚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