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있었다고 달랐겠는가, 군생활 2년 동안 또 마찬가지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제대 후에 사회에 던져진 나는 막막함에 사로잡혀있었다. 지금까지 무수한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그냥 아르바이트일 뿐 내 평생 직업은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계속해서 미뤄두었던 ‘꿈’에 직접 달려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절박하게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한 나는 지상파 3사와 몇몇 사설 아카데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이라는 곳이 드라마 작가들의 가장 대표적인 등용문이라는 정보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아카데미에 비해 교육원의 수강료가 절반 이하였다) 나는 또다시 무모하게 무작정 드라마 기초반의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교육원은 6개월 과정으로 기초반을 수료하면 졸업작품으로 단막극 한 편을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 심사에 통과한 사람들만 다음 연수반으로. 연수반에서 또 작품을 심사받아 통과한 사람들만 전문반으로, 그리고 또 심사를 받아 심화반까지. 그것도 작품을 한 번에 통과해야만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고 못 넘어간다면 같은 수업을 다시 6개월 수강해야 한다. 기초반 6개월 동안 배운 드라마 집필 수업은 큰 도움이 되었고 함께 수업하던 친구들과도 스터디를 할 만큼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글을 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현재는 정말 많은 드라마 작가들이 수많은 매체에서 드라마를 집필하고 심지어는 예능작가들까지도 드라마를 쓰는 시대지만 그 당시만 해도 드라마 작가로서 입봉을 하려면 아주 유명한 드라마 작가의 문하생의 문하생의 문하생의 문하생의 문하생...으로 시작해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수년의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집에서 지원을 받을만한 형편이 전혀 안되었기 때문에 언제 입봉 할지 모르는 인고의 시간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이제야 진짜 ‘꿈’을 쫓겠다고 나선 내게 또 한 번의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냥 이대로 포기하고 이제라도 기술을 배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것인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가며 ‘꿈’을 지킬 것인가. 결론적으로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다음 수업과정을 이어갈 수는 없겠지만 대신 방송계에서 일을 구해서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방송 관련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금 방송작가를 하고 있는 선후배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MBC아카데미’ 출신들이 많다. 출신들이 많다는 것은 선배들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곧 취업이 아주 유리하다는 의미가 된다. 드라마 작가의 등용문이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이라면 예능작가의 등용문은 ‘MBC아카데미’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작가를 목표로 교육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유리한 조건을 달지 못했고 ‘미디어잡’ 같은 방송 관련 리크루팅 사이트들을 전전했고 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곳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천지개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