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보기로 한 곳은 OBS라는 경인 지역 방송국(나름 지상파이기는 했다)의 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면접을 보기 위해 여의도에 도착해서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빌딩 꼭대기 층에 OBS가 아닌 제작사의 간판을 달고 있는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방송 제작환경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방송작가의 일이 뭔지도 모른채 그냥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지원을 해서 찾아왔는데 아무리봐도 방송국이 아니다.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나 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문 앞에서 의심을 잠시 접어두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사무실이었다. 낮은 파티션들로 자리를 구분해놓았고 30평 정도에 사람은 대여섯밖에 안보이는 작은 사무실. 여기서 진짜 방송을 만든다고? 의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
방송 작가 2명이 나를 상대로 면접을 시작했다. 면접 질문은 대체로 평이했다. “왜 작가를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는지?”, “아르바이트는 해봤는지?” 등의 구태의연한 질문이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경력도 없는 완전 생초짜 막내작가를 뽑는데 특별한 질문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잠시간의 면접이 진행되었고 나름 ‘말빨’에는 자신 있었던지라 대답도 무리 없이 면접관(작가들)의 마음에 들게끔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면접이랑 별 다를게 없구나라고 느끼고 있을 때 질문을 모두 끝낸 작가들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결과 통보에 대신 숙제를 내주었다.
작가들이 내게 내준 숙제는 ‘보도자료’였다. 프로그램을 만들면 방영을 하기전에 각 언론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를 한다. 가장 큰 홍보 수단 중 하나인 것이다. 이번 방송에서는 어떤 출연자의 어떤 내용이 방영하는지, 또 어떤 기대 포인트가 있는지 가장 중요한 ‘야마(중점 포인트)’를 숨긴채 궁금증을 유발하는 내용으로 적당히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보도자료’를 만들는 것이 포인트다.
물론 ‘보도자료’라는 것 자체를 이 날 처음 알게 되었다. 이게 무엇인지 어떤 용도인지도 전혀 모른채 대략의 설명만 듣고 다 이해한 똘똘한 인상을 심어주고 면접 자리를 나왔다. 집에 돌아와 참고하라며 메일로 보내준 이전 ‘보도자료’들을 읽어보았다. 현재도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미 작성되어있는 것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하얀 백지 위에 새롭게 글씨를 채워나간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지상파 아카데미를 나왔다면 리크루팅 사이트를 전전하지 않고 소개 소개 받아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몇 안 되는 귀중한 자리였다. 방송국이 어디인지 어떤 프로그램인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일단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예시로 보내준 ‘보도자료’와 최대한 비슷한 느낌으로 흰 백지를 채워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연락이 왔다. “내일부터 출근 해요.”
연락을 받은 나는 당장 집 근처 하이마트로 달려가서 100만원이 훨씬 넘는 노트북을 할부로 사버렸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