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게 된 프로그램은 원로 개그맨 둘이 MC로 나와서 마찬가지로 각 분야의 원로들을 불러놓고 잘 나가던 시절의 썰을 푸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처음 막내 작가로 일하면서 주어진 업무는 자료조사였다. 진짜 원로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전전하면서 자료조사를 했었다는 고릿적 썰들을 많이 들었지만 내가 처음 막내작가로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래도 이미 인터넷과 온라인 활동이 활발할 때였다. 나는 이번 회차의 게스트가 정해지면 그 게스트에 대한 자료조사를 했고 선배 작가들은 그 자료조사를 통해서 토크쇼 대본을 써 나아갔다.
가장 밑바닥의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내가 자료조사를 하고 그 자료 안에서 토크거리로 쓸만한 것들을 정리해 나간다는 것이었는데 내 기준으로 재밌겠다 싶은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그 에피소드를 선배들이 대본으로 녹여냈을 때의 희열은 마치 이 대본 자체가 내가 만들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다만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맹점은 현존하는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는 인물이 아니라 옛 신문 아카이브 자료를 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인터넷 기사들을 뒤지면 인물에 대한 위키백과나 기사들이 철저하게 정리가 되어있지만 그 옛날의 사람들에 대한 것은 인터넷에서 전혀 찾을 수가 없어서 네이버 신문 아카이브 자료를 찾기에 급급했다. 심지어는 그들의 60년대~80년대 활동했을 당시의 전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하면 강남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국립도서관에는 없는 책이 없었다. 세상에 출판되는 모든 책들은 최소 1권 이상 모두 소장되어 있는 곳이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우리 프로그램의 게스트들이 편찬한 책들은 이 시기에는 모두 절판된 책들이기 때문에 국립중앙도서관 정도는 가야 찾아볼 수 있었고 나는 국립도서관의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출연했던 게스트가 누구였느냐하면 원로 MC 이상벽, 원로 배우 신성일, 원로 가수 장미화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인터넷보다 회고록 같은 도서들이 자료조사에 더 필수였다. 회고록이라는 것들이 으레 그러하듯 작은 사건을 크게 미화한 것들이 많았는데 20대 중반의 내가 뭘 알았겠나, 그저 증거로 남아있는 것들이 그들이 직접 기록한 회고록이니 곧이곧대로 그 말을 믿고 에피소드를 만들어갈 수박에 없었다.. 물론 그들의 에피소드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거나 축소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야~ 진짜 자기 이야기라고 무슨 뻥을 이렇게까지 치냐?”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뻥’이라고 생각하는 회고록의 내용들을 나도 대단한 에피소드인 마냥 자료조사의 한 귀퉁이에 몰아서 대단한 ‘미다시’(사람들이 혹할만한 제목)를 뽑아서 완성해 나갔다. 그러면 선배들도 그 ‘미다시’에 속아서 에피소드를 대단한 원로들의 ‘썰’처럼 부풀려서 대본으로 녹여냈다. 그러면 나는 내 나름대로 일의 보람을 느끼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