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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Nov 01. 2024

1박2일 막내 첫 위기 (A.K.A 멸치액젓 사건)

  녹화 전 주에는 작가들끼리만 다녀오는 사전답사가 있었다. 사전답사는 아직 정확한 촬영 콘셉트나 구성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여러 후보 장소들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작가들끼리만 여러 장소로 찢어져서 답사를 진행했고 이때 PD, FD들은 편집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답사는 콘셉트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지방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고 섬에 들어갈 때에는 아예 1박 2일로 답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보통 이렇게 여러 팀으로 찢어져서 답사를 다닐 때는 아무래도 남자작가가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주로 험지(도서산간 지역, 또는 몸을 쓰는 체험 등)로 배치를 해서 답사는 다녔었다.      


  이 팀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여 정도 되었을 때 1박 2일로 섬 답사를 가게 되었다. 지역이 멀리 떨어진 2개의 섬을 답사해야 해서 작가들도 2팀으로 찢어졌고 나는 ‘추자도’라는 섬으로 답사 배정을 받았다. ‘추자도’는 ‘멜젓(멸치젓갈)’이라는 젓갈이 특산물로 유명하고 제주도보다 내륙에 가까운 섬으로 제주도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다른 일반적인 섬에 비해 꽤 큰 규모의 섬이었다.      


  이 섬에서는 배차가 안되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답사를 다녔고 답사를 모두 마친 후에는 미리 예약해 놓은 펜션에서 숙박을 했다. 나를 배려해서였는지 선배들 스스로를 배려해서 였는지 방은 따로 잡아주어서 나름 편하게 혼자 독방을 쓰게 되어 내심 만족스러운 답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선배들이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자고 했다.      


  이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펜션에서 식당이 위치한 시내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는데 도무지 걸어갈 거리는 되지 않았고 배차도 없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이때만 해도 카카오택시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라 택시회사에 콜택시를 불러야 했다. 마음씨 좋은 펜션 사장님은 굳이 택시 부르지 말고 펜션에 있는 차를 타고 가시라 선뜻 차키를 내주었는데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장롱면허 수준의 운전실력이라 불안했지만 선배들 앞에서 뭐라도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당당하게 차키를 받아 들고 운전석에 앉았다.      


  펜션 사장님이 선뜻 내어준 차량은 연식이 오래되었으며 심지어 뒤창문을 펜션 스티커를 붙여놔서 룸미러를 볼 수 없었다. 어디 들이박아도 티도 안 날정도의 상태의 차였다. 조심스럽게 아주 여유로운 척을 하면서도 몰래 식은땀을 흘리며 시내로 나갔다. 섬의 곳곳은 도로정비 공사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왕복 2차선 도로 한쪽을 막아놓은 상태로 공사를 해서 왕복 1차선 도로를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정차하고 기다렸다가 지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뭣도 모르고 도로에 진입을 했는데 하필 마주 오는 차와 정면으로 대치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후진으로 도로를 빠져나와야 하는데 뒷창문을 스티커에 가려서 룸미러를 볼 수 없고 사이드 미러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후진을 하던 중이었다.     


“쿵”     


  무언가를 치고 말았다. 순간 차에 있던 나와 작가 선배들은 급격하게 표정이 어두워졌고 급하게 차에서 내려 내가 친 것이 무언인지 확인을 하러 차 후미로 이동을 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혹시나 사람을 쳤으면 어떡하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합의금으로 수 백, 수 천만 원이 나오면 어떡하지?’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차량 후미에서 눈에 들어온 모습은 파란색 플라스틱 드럼통이 드러누워있고 그 안에서 비리고 짠내 가득한 액체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친 그 무언가는 ‘멸치액젓’이었다. 내가 친 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먼저 안도를 했고 넘어진 드럼통을 바로 세우는데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을 대표 격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액젓 값을 보상하라고 했고 그 값이 약 300만 원이라고 말하는데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월 200만 원도 못 받고 일하는 나에게 300만 원의 돈이 당장 어디 있으며 나중에 사무실로 돌아가서 내가 이런 사고를 쳤다는 것이 알려지면 어렵게 얻은 기회를 다 날려버리는 게 아닐까, 또다시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선배들은 사무실에 있는 메인 작가님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했고 선배가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멍하니 얼어붙은 채 그저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멸치액젓’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한 방에 날아가버리는구나.     


  곧이어 선배가 통화를 끝냈고 ‘멸치액젓’에 대한 보상은 회사에서 해주기로 정리가 되었다. 잠깐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수 번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었다. 보상에 대한 것이 정리되었으니 현장에 쏟아진 멸치액젓 뒷정리를 도와드리고 선배들과 다시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보상금은 해결되었지만 ‘300만 원’이라는 큰 지출이 생기는 사고를 친 나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내려질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통화를 했던 메인작가님은 답사나 촬영하다 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노라, 많이 놀랐을 테니 걱정 말고 안심하라는 말을 전달해 주셨고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행히 잘리지 않았다. 막내 생활 중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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