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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Nov 07. 2024

막내 작가의 우울증에 대하여 (feat. 쪼다병)

  독도 지도 사건이 있고 선배는 나에게 이 회의 날까지 주말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라는 굴욕적인 숙제를 내주었고 나는 주말 내내 자괴감과 모욕감, 굴욕감에 휩싸인 채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회의날이 찾아왔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선배는 나를 따로 불러내어 면담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당연히 첫마디는 ‘주말 사이에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았느냐’였다. 이 질문이 나올 걸 예상하고 주말 내내 뭐라고 얘기할까 수없이 고민을 했었다.      


  ‘나는 분명히 소품 체크를 했고 진행팀에게 소품들을 소품차에 실어달라고 얘기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수많은 소품들을 어떻게 나 혼자 일일이 다 챙기냐, 누구 하나 같이 신경써주기는 했었냐. 이 모든 책임을 나 하나한테 뒤집어 씌우고 몰아가는 건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라는 생각은 몇 년이 지나서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제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체크를 못했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했고 결국 그만두겠다는 말까지 꺼내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나를 일 못하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데 내가 여기서 더 있을 이유가 있을까? 너무 아까운 자리지만 내가 깜냥이 안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당연히 ‘그래’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외로 ‘그런 말 말고 신경 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쪼다병’에 걸려버렸다.      


  ‘쪼다병’이 무엇이냐, 원래 잘하던 일도 버벅거리고 질문에 헛소리를 늘어놓고 말 그대로 ‘쪼다’가 되는 병이다. 심하게 주눅이 들다 보면 결국 이렇게 ‘쪼다병’이 걸려버리는데 정말 답이 없다. 결국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쪼다병’에 걸린 나는 선배들과 말 한마디도 제대로 섞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선배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않았다. 매일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혼자 일을 하다가 선배들이 오는 12시, 1시쯤이 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배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하면 퇴근할 때까지 입 밖으로 10마디도 꺼낼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매일 출근길이 지옥길 같았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차도에 뛰어들어 ‘교통사고로 출근을 못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이런 심리상태는 선배들의 태도 또한 크게 작용을 했는데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말투와 표정에서 나를 싫어한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었다. 모두가 일이 끝나고 퇴근할 때가 되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자기들끼리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지 논의하고는 휙 가버리기 일쑤였다. 물론 나 역시 선배들이 빨리 퇴근해 주는 것이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은 매일매일 대바늘이 하나씩 박히듯 가시밭이 된 채 하루하루 버텨나가야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때의 내 상태가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작가일을 처음 시작하는 막내작가들 중에 이러한 심경을 겪은 이들이 정말 많을 것이고 비단 작가뿐만이 아닌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러한 경험들을 한 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결국 이것을 극복해 내었지만 그것은 나의 노력이 아닌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6개월여 뒤의 일이었다.     


  내가 ‘쪼다병’이라고 칭했던 이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존감을 높이고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누군가 진심 어린 마음으로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라고 칭찬의 한마디를 해주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스스로를 탓하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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