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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Jun 13. 2024

<토크쇼> 막내 작가 업무를 알아보자 3 (촬영준비)

  자료조사와 인터뷰가 모두 정리되면 이것들을 토대로 선배들이 한 회차씩을 맡아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고 나는 그동안 무한 대기를 시작했다. 선배들이 대본을 쓰면서 어떤 정보들을 더 추가로 찾아달라고 할지 모르기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 틀어박힌 채 노트북을 켜놓고 무한한 대기를 했다. 선배들은 희한하게도 꼭 밤 10시가 넘어갈 때부터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 대본을 썼는데 그러면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같이 밤을 새웠다. 언제 어떤 일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밤을 새운다고 일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그 부분만 비워놓은 상태로 다음날 채워놓으면 될 일인데 그저 후배들을 괴롭히려고 그랬나 싶다. 그게 아니더라도 확실히 막내작가에 대한 배려가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선배들이 대본을 쓴다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하릴없이 밤을 새우고는 했다.      


  그렇게 대본이 나오면 담당 메인 PD와 함께 대본 회의를 했다. 지금도 열받는 포인트 중 하나가 이때 메인 PD는 난독증이 있었는데 4~50페이지에 달하는 대본을 직접 소리 내어 읽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 메인 PD가 소리 내어 MC들의 흉내를 내면서 대본을 읽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나도 대본을 쓰면서 MC나 출연자들의 이미지와 말투를 고려해서 대본을 쓰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본 회의를 하면서 한 줄 한 줄 읽어가는 것은 정말 미련한 일이었다. 메인 PD는 대본을 읽으면서 수정사항을 얘기하고 선배들은 수정사항에 맞춰서 대본을 수정했다.      


  대본 수정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내일 촬영인데 항상 대본은 오리무중이었고 나는 대본이 나올 때까지 회사에서 또다시 대기를 시작했다. 밤 12시가 넘어가고 촬영 슛 시간까지는 12시간도 채 안 남았을 때 대본이 넘어오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나의 업무가 시작된다. 대본의 맞춤법 검사를 하고 대본을 ‘큐카드’(MC들이 현장에서 보는 대본) 형식의 틀에 맞춰서 다시 정리하고 큐카드로 정리되면 그것을 출력해서 큐카드에 붙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대본을 ‘프롬프터’(MC들이 녹화 때 큐카드 대신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읽는 대본) 형식으로 정리를 하고 프롬프터를 전지에 적어나가는 일(현재는 모니터로 하지만 당시에는 직접 적었다)이 시작된다. 녹화 슛까지 남은 약 12시간 동안 혼자서 큐카드를 만들고 프롬프터를 만들고 몇 안되지만 소품까지 준비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홀로. 누구보다 외롭지만 누구도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끝나고 녹화현장에 가면 이날의 게스트와 MC 대기실에 이름표를 붙이고 대기실에 간식들을 세팅해 놓으면 비로소 나의 제일 기본적인 막내작가의 업무가 종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기실 이름표를 붙일 때가 되어서야 “이번 녹화도 문제없구나”라는 안도감에 휩싸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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