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계절 Oct 22. 2023

번외 – 뜨개 없는 뜨개 에세이

질문 : 뜨개에 미친 사람은 평소에 무엇을 하며 지낼까. 

정답 : 빨리 뜨개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른 일을 합니다.     


20가지 정도 되는 내 취미 중 근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단연 뜨개였다. 다른 취미로는 다이어리(스티커나 메모지로 일기 본질을 흐려가며 예쁘게 꾸미는 것), 독서(좋은 문장이나 표현을 발견하면 왜 나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할까 비관하는 것), 영화 감상(일부러 난해한 예술 영화를 고른 다음 머리를 싸매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 여행(열심히 모아놓은 돈을 탕진하는 것) 등이 있다. 


위 설명은 무엇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제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절대 해당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목적이나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최근의 나는 지난날의 나보다 빈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극장 관람이나 여행 같은 취미는 줄였고 이별의 상실을 탓하며 일기도 쓰지 않았다. 책이야 원래 틈틈이 읽었던 거고, 손을 움직일만한 취미는 결국 뜨개질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라면 뜨개질도 꽤 값이 나가는 취미다. 어떤 실이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스웨터 하나를 뜨더라도 조립식 바늘팁과 케이블이 사이즈별로 필요하다. 저렴한 일체형 줄바늘로도 가능하지만 나는 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도구 탓을 많이 하는 편이다. 뜨개에 문제가 있는 경우 비싼 도구를 사용하면 대개 해결된다. 


나는 결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움직이고 있는 것’에 조금 더 중점을 두었고 도구야 예전에 미리 사둔 것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본인 한정으로 뜨개가 가성비 취미가 되었다.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이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돈을 쓰려면 돈이 필요한 것과 같은 말이다. 실제로 아무 걱정거리가 없던 때에는 실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비 욕구가 커져 새 실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신나게 서랍을 채워놓으면 꼭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나 스트레스가 덮쳐온다. 그럴 때는 이렇게 글을 쓰거나 뜨개를 한다. 손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얼마나 깊은 생각을 동반하느냐가 다르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뜨개질을 하지만 사람을 잃으면 글을 썼다. 글을 쓰며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끝내 어떤 결말에 도착할 때까지 쓴다. 내용도 없고 맥락도 없는 글인데 그걸 하느냐 안 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글을 다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뜨개질 생각이 난다.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토독토독 자판을 치는 게 아니라 손에 힘을 주어 바늘과 실을 쥐고 움직이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원하게 된다. 뜨려고 마음 먹은 게 없어도 괜찮다. 일단 무작정 코를 잡고 겉뜨기든 안뜨기든 이어나가면 된다. 손바닥 크기의 편물에게 위로받을 때도 있는 법이다. 


요즘은 이래저래 글을 쓸 일만 생긴다. 정작 정말 써야 하는 글은 안 쓰고 내 마음 달래는 글만 쓰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바늘을 손에 쥘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이전 11화 언제쯤이면 어른이 될까 - 카라 스웨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