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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Oct 20. 2023

단종된 실에 대처하는 법 - 스트라이프 꽈배기 뷔스티에

뜨개질하면 차분해 진다고 누가 그랬어

실은 가늘게 있을 때와 편물이 되었을 때 촉감이 다른 경우가 더러 있다. 분명 부들부들한 실뭉치를 직접 만져보고 샀는데 밑단이 겨우 넘어갈 무렵 심상치 않은 뻣뻣함을 목격했었다. 이미 여섯 볼이나 사둔 실이라 어찌저찌 끝까지 뜨긴 했는데, 내 손에 들려있던 건 부직포 같은 스웨터였다. 입기엔 면이 너무 억세고, 선물하기도 민망하고, 버리기엔 옷에 쏟은 내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지금도 그 스웨터는 장롱 한구석에 고이 잠들어 있다. 


실패를 맛본 후 꼭 한 볼, 한 콘, 한 타래씩 사서 테스트를 해 본다. 손바닥만 한 편물을 짜보고 괜찮으면 그제야 완성할 작품에 쓸 만큼 실을 사는데, 문제는 사둔 실이 단종되었을 경우다. 


재작년 가을이었나. 마실 삼아 실 구경을 갔다가 촉감이 좋아 보이는 실을 하나 구매했다. 한 콘에 150그램 내외인 콘사였는데, 테스트용이라고 하기엔 좀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한 콘만 샀다. 떠보고 마음에 들면 하나 더 사지 뭐. 이런 안일한 생각이 나중에 얼마나 크게 돌아오는지 몰랐지.


뜨고 있던 작품도 있었고 그다음 뜰 도안도 미리 사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비운의 콘사는 계속 뒤로 순서가 밀렸다. 나중에는 밀리다 못해 내 기억에서 지워졌다. 당장 급한 거 아닌데 뭐. 또 안일한 생각. 그렇게 올해가 되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실이 단종이란다. 


[단종 예정으로 20% 할인합니다. 품절 색상은 재입고되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단종 소식. 실 설명 옆에 주황색 삼각형으로 강조 표시까지 되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실 쇼핑에 나서는 건데, 요즘 들어 물욕이 줄어든 게 이런 결과를 맞을 줄이야. 심지어 내가 샀던 색은 이미 다 팔린 뒤였다. 


한 달 전, 친구에게 선언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나 이번 달 긴축재정이야. 당분간 카페도 자제해야겠어!


대차게 선언한 것과 달리 딱히 돈을 아껴 쓰지도 않았다. 카페를 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커피 원액을 두 병이나 샀으니 그 돈이 그 돈이었다. 차라리 평소처럼 실을 구경했으면 단종과 품절이란 단어에서 실을 구해낼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그제야 예전에 사둔 실을 찾아 급하게 샘플을 떠봤다. 새 실 밑에 깔려 구석에 있더라. 다 뜨고 나니 찰랑거리는, 아주 좋은 촉감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넉넉한 품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아무래도 150그램으로 옷을 뜨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 다른 색이랑 섞어서 줄무늬로 만들자. 하지만 수중에 있는 실을 뒤적거려 봐도 어울리는 색은 없었다. 하필이면 나는 왜 이 색을 샀을까? 아주 선명하고 채도가 높은 파란색을. 


빨간색을 가져다 대자니 태극기 같고, 회색을 붙이려니 양쪽 색이 모두 죽어버렸다. 고민을 거듭한 결과, 내 최선은 흰색이었다. 어떤 색과 배색해도 어색하지 않은 흰색! 그럼 이제 비슷한 굵기와 같은 소재의 흰 실을 찾으면 된다. 


세상에 면사는 많으니 비슷한 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동시에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전달 긴축재정에 돌입했던 사정이 여기에도 적용되고 말았다. 그럼 비싼 실을 사지 않은 게 아니라 사지 못했다, 가 맞는 말인 것 같다. 여러 실을 고르고 살피다 내가 선택한 건 다이소 뜨개실이다. 


면 100%에 단돈 1,000원이라니! (물론 한 볼에 25그램 밖에 되지 않는다) 기존 실과 함께 떠보니 나쁘지 않았다. 넉넉하게 6볼을 사와 뜨개질을 시작했다. 여름에 입을 민소매 내지는 뷔스티에를 생각하고 뜬 건데 다 뜨고 나니 어쩐지 더위가 가셨다. 아쉬우니 위에 셔츠를 걸쳐 당분간 입고 다녀야겠다. 



다이소 면실(흰색)과 미니코튼(마린블루)를 사용했고, 고무단은 4mm, 평단은 4.5mm 바늘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바늘은 니트프로. 두 실 모두 권장 바늘 굵기가 3mm에서 3.5mm라고 써있긴 했지만 조금 시원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더 굵은 바늘을 사용했다. 아주 성긴 느낌은 아니었고 딱 원하는 질감으로 완성되어 아주 만족스럽다. 


실 소요량 계산을 잘못해 중간에 실이 떨어진 적은 있어도 아예 단종된 건 처음인데 나름 잘 대처했다. 예상치 못한 고난에도 사람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해결한다. 


우리는 최선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매 순간 끊임없는 선택을 하고, 갈림길에서 뒤도 돌고, 중간에 주저앉기도 한다. 수많은 역경을 지나면 자연스레 차선을 찾게 된다. 모두가 그렇다. 항상 생각대로 되지 않듯이 항상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 불뚝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 생각지도 못한 – 게다가 아주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 실을 발견했고, 차선으로 완성한 옷도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 기억과 경험이 다음 고난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사람은 발전하고 나아가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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