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웃긴 뜨개일지
내 작디 작고 작디 작은 카디건에게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었다. 무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꽈배기와 바늘비우기의 반복으로 시원한 무늬가 한눈에 들어오는 게 이 카디건의 매력인데 단색 실이 아닌 그라데이션 실을 사용했더니 무늬가 실에 묻혔다. 분명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실로 무늬가 많은 옷을 뜨면 원하는 대로 완성되지 않을 거란 걸.
그런데도 굳이 이 옷을 뜨기 시작한 건 실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실수 없이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뒤집어 망하더라도 티가 나지 않는 실을 쓰자는 결론을 낸 거다. 지금까지 실수한 게 한두 번인가, 잘못 뜨면 풀고 다시 뜨는 게 일상 아니었나,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반복된 ‘푸르시오’는 날 강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완성에 임박한 편물을 풀어낼 미래가 두려워 어려운 도안을 미리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학원이나 학교에 가기 싫었던 경험이 있는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싫어 학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중학교 때까지는 아침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학교 자체를 싫어했던 게 아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과 학교까지 가는 길이 힘들었던 거다. 막상 등교하고 나면 수업도 잘 듣고 친구와도 잘 놀았다. 어떨 때는 하교가 아쉽기까지 했다. (기억 미화일 가능성이 높긴 하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뜨는 행위 자체는 좋은데 거의 100%의 확률로 다가오는 푸르시오가 두렵고 뜨고 난 뒤 정리해야 하는 수많은 실 가닥이 귀찮아 시작을 못하는 거다. 오히려 뜨개에 막 취미를 붙이던 시기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심해졌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무늬가 보이든 말든 끝까지 떴다. 원작은 긴 소매지만 난 짧은 소매로 줄여서 떴다. 그래야 이번 여름 동안 잘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완성 후 세면대에 물을 받아 옷을 푹 담그면서도 긴가민가했다. 이게 잘 뜬 게 맞나, 입을 수는 있나. 여름에 입겠다고 소매까지 줄여 떠놓고 세탁하고 다 마를 때까지 확신이 없었다니. 이렇게 우유부단할 수가.
대망의 착의. 역시 작았다! 나보다 두 사이즈는 작은 사람이 입어야 훨씬 잘 어울릴 옷이다! 게다가 무늬 역시 잘 안 보인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긴 하지만 내가 입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아이코드로 둥글둥글 마무리한 끝단도 귀엽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구멍이 송송 나 바람이 잘 통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바늘을 잡지 않았다면 이 옷은 없었겠지.
무늬가 잘 보이지 않으니 군데군데 실수한 부분도 티가 나지 않았다. 소매 어디에는 구멍이 잘못 났고 등판 어디에는 코 늘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도 모른다. 나도 그게 어딘지 모르고 남들은 더 모른다. 이제 뜨는 방법도 알았겠다, 이번에야말로 내 몸에 맞는 블루웨이브를 뜰 수 있을 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구나 싶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나, 싶을 때는 대체로 쓸데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돌파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럼 혹시 아나. 근사한 옷 하나 입게 될지.
P.S. 이번 화의 제목 ‘파도 앞에서 파도 입기’는 이맘때면 바다 한 번은 갔겠지, 라는 생각으로 몇 달 전에 미리 정해놓은 제목이다. 매년 여름이면 꼭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보러 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지 못했다. 그래서 바다 앞에서 이 옷을 입고 사진을 찍겠다는 당찬 계획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구태여 제목을 바꾸지는 않겠다. 이미 문제점 백 개 정도 있는 옷인데 제목만 정상적이면 무엇하겠나. 차라리 제목까지 알차게 실패하는 게 진정한 이번 화의 완성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