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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Jul 18. 2024

게으르고 운이 좋은 사람 – FO

마냥 웃긴 뜨개일지

에세이를 쓰다 보니 은연중에 (혹은 대놓고) 나와 주변인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조금 깊은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에는 미리 귀띔을 해주며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다는 게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지인들에 관한 에피소드는 물어가며 쓴다지만 정작 내 이야기는 어디까지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살이 찌거나 실패한 이야기는 부끄러웠고 꿈을 이뤘거나 성공한 이야기는 자랑 같았다. 세상에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정도면 그래도 평범하고 편안하게 산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조그만 사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 그걸 떠벌리는 건 아닌지 매번 조심스러웠다. 특정 에피소드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첫 화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그랬다.      


요즘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생각해보면 꼭 불행의 홍수 속에 있는 느낌이다. 개인에게 국한한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세상’이 그렇다. 미디어의 발달로 나는 듣고 싶지 않은 정보를 듣게 된다. 자극적인 표지와 제목에 시선을 빼앗겨 한 번이라도 누르면 연관 기사와 영상이 마구잡이로 떠올라 불행이 불행을 낳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어디선가 살인범이 도망쳤고 누군가는 뺑소니 사고를 당했고 어느 주부는 보이스피싱으로 전재산을 날렸으며 학교 폭력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퇴근길 가장은 난데없는 음주운전 차량에 중상을 입었다는, 그러면 안 되지만 이렇게 편안한 의자에 앉아 손가락만 움직이며 타자를 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해지는 영상이 줄지은다.      


감히, 주제넘게 그들을 동정하려는 게 아니다. 슬픔에 공감하는 건 당사자가 아닌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안타깝고 먹먹한 영상(혹은 게시글)에는 어김없이 해당 주제와 관련 없이 무작정 분탕을 치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 나타난다. 특정 성별 –그게 동성이든 이성이든-을 비난하거나 특정 세대를 헐뜯고 특정 분야 혹은 특정 지역을 비하하며 ‘그 사람들은 이렇더라, 그 사람들은 별로더라’ 하는 댓글이 달린다. 그럼 그 댓글에 또 댓글을 달며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본래 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모든 게 평온하지 않은 삶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혼란과 불안을 가져다줄까 봐 걱정한 것 같다. 쓸데없는 걱정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자신에게 완벽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는 게 가능하진 않겠지만 내가 나를 평가하자면, 나는 ‘게으르고 운이 좋은 사람’이다. 노력에 비해 꽤 성과가 좋다. 입시, 대학, 시험, 공모, 출간 같은 중요 지점을 거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전부 아니었다.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더 열심히 학교 생활할 수 있었고 더 열심히 글을 써야했는데 게을러서 그렇지 않았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일했고 카드값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돈을 벌었고 공모전에 당선될 때까지 글을 썼는데, 어떻게든 이 나이까지 살아있다.      


전에 누가 나한테 ‘너는 취미도 많은데 글도 쓰고 일도 하잖아. 부지런한 거야.’라고 한 적이 있다. 오히려 반대다. 한 가지를 깊고 꾸준히 실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 발을 걸쳐놓으며 얕은 지식만 습득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모든 걸 적당히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건 사고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건 어두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안에서도 불안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이만큼만 행복하면 충분한데 자꾸 그 정도만 행복한 건 행복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균열이 일어나고 있던 마음을 메워준 건 뜨개였다. 몇 년째 포기하지 않고 쉬지 않는, 내게서 살아남은 취미다. 쩍쩍 갈라진 마음이 뜨개를 할수록 끈적하게 하나로 엉겨 붙었다. 도톰하고 폭신한, 때로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실로 열심히 가슴을 바느질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제 타인에게 덜 휘둘리고 부정한 감정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혹여 울렁거리는 일이 생겨도 집에 들어가 안락한 소파에 양반다리를 한 채 뜨개를 하면 된다. 그럼 마음이 가라앉는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뜨개를 놓지 못한다.      


일주일에 한 편씩 내 뜨개 생활을 공유할 뿐인 이 글을 통해 출간 제의를 받았다. 역시 운이 좋다. 세상에는 수억의 좋은 글들이 그 반짝거림을 알아봐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데 나는 내 글이 마음에 든다는 사람을 만났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글과 뜨개에 습관을 들이겠다는 계획으로 시작한 이 일지는 이제 목적을 이뤄 막을 내린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닳디 닳은 바늘을 움직이며 편물을 만들어 내겠지.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될 테고. 일지 밖에서도 계속될 나의 뜨개를, 또 여러분의 안온한 삶을 응원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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