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얼굴이 칼에 베었다. 마치 석류 같은 피가 피부에서 새어 나왔다. 내 얼굴의 피부가 눌리는 듯한 느낌과 통증이 느껴졌다. 신이 더 이상 내리지 않지만, 마치 신이 내린 듯한 처절함. 성해나의 소설 『혼모노』다. 주인공의 애타는 갈망이 결국 신을 불러들이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좋은 황태를 구하러 강원도 덕장까지, 싱싱한 생새우를 사러 인천 소래포구까지 가셨다. 전국 어디에도 좋은 식재료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면 꼭 다녀오셨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한 후에는 많은 음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몸이 아프셔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겨울이 오는 초입에 김장을 담그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어머니는 강원도에 사시는 외숙모 댁에서 배추를 절이셨다. 추운 날 밖에서 절인 배추를 씻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손이 시리고 다리가 저렸다.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힘든 기색 없이 계속 배추를 씻고 계셨다.
배추를 다 씻은 후 외숙모가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외숙모는 새로 지은 밥과 나물 반찬으로, 시골의 정취가 느껴지는 밥상을 차려 내왔다. 외숙모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난 이렇게 진 밥 싫고 이 나물 반찬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고기가 없네." 처음 보는 어머니였다.
절인 배추를 가지고 와서 간 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 무채, 갓, 액젓, 생새우 등을 넣어 양념을 치대셨다. 온 동네 할머니들이 모두 모여 마치 작은 축제인 양 김치를 만드셨다.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묻어났다.
집안에는 온통 액젓의 쿰쿰한 냄새와 빨간 고춧가루가 가득해졌다. ‘내 새끼에게 맛있는 김치를 먹일 수 있다. 그러면 올 겨울도 모두 무사히 날 수 있겠지’라는 안도감이 보였다.
김장이 끝나면 김치 통을 자식들에게 배분하셨다. 남편은 김치가 너무 많아 여름까지 먹게 되니 받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서운함을 생각해서 안 받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김치를 참 맛있게 먹었다.
익지 않은 싱싱한 김치는 겉절이로, 숙성 후에는 마치 사이다가 들어 있는 듯 톡 쏘는 맛이 나는 숙성김치로, 더 익으면 감칠맛이 나는 묵은지로.
추운 날에는 돼지고기를 크게 썰어 넣고 찌개로, 비 오는 날에는 김치전으로.
어머니는 김장하고 나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기도 하셨다.
“요즈음은 사 먹는 김치도 맛있는 게 많아요. 그러니 김장 그만해요.”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사는 김치는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고, 값이 너무 비싸다’며 요지부동이셨다.
교직은 나에게 삶을 일구는 방편이었고 사회적 지위를 주었지만, 학생들과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갈등, 출퇴근의 부담, 매 시간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늘 뒤따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사라는 직업은 나 자체가 되어 있었다. 퇴임 후 월급날이었던 17일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많은 옷을 보며, 이 옷을 입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친구와 여행을 가서 예쁜 가방을 보고 사고 싶었으나, 막상 가방을 들고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기간제 교사를 2개월 했다.
낯선 학교에서 교문을 들어설 때의 날 선 교문지도에서 느껴지던 생경한 풍경. 나를 이물질처럼 보던 학생들. 나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젊은 교사들. ‘아 인제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간제 교사까지 그만둔 후, 아침이 고요해졌다. 베란다를 통해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분주한 일상이 느껴졌다. 한편으론 사회에서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쓸쓸해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김장을 담그셨다. 늘 하시던 대로.
어머니의 김장은 혼모노였을까? 그럼 나의 교직 생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