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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08. 2023

한 자리에서 10년 넘게 장사한다는 것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대학교 동기들과 모임을 갖습니다. 그럴 때마다 학교 근처에서 모여서 이 술집은 아직도 있네, 저 자리는 1인분에 3,900원짜리 삼겹살집이었는데 지금은 이자카야로 바뀌었네, 하면서 한 마디씩 거들곤 하죠.



우리 동기들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갔던 식당 중 하나는 김치찌개집과 알밥집, 그리고 닭칼국수집입니다. 김치찌개집은 좀 웃기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가게는 사실 이름이 장어구이집이고 장어구이를 팔기는 합니다만 손님의 97%는 모두 김치찌개를 시켜 먹습니다.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가 고소한 기름냄새가 나는, 테이블마다 하나씩 놓여있는 버너에 팔팔 끓이면서 먹으면 진짜 요즘 같은 날씨에는 더 없는 천국입니다. 가격은 2~3명이 먹을 수 있는 소자에 만 원 밖에 하지 않아요. 심지어 더 놀라운 점은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계란말이가 서비스로 나옵니다. 아무리 공깃밥은 따로 시킨다 해도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렇게 해서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어구이집인데 장어구이 먹는 사람은 없는...


 알밥집은 이름이 원래 노벨알밥이었는데 알촌으로 상호가 바뀌면서 체인점이 되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빨간 양념도 없고 하나도 안 매워 보이는데, 비벼서 먹으면 생각보다 매워서 도대체 비법이 뭔지 궁금해했었는데요. 아직도 학교 앞에 가면 가게가 있고 심지어 이제 체인점이다 보니 이곳저곳의 대학교 근처에 보면 심심치 않게 이 알밥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원에 볼 일이 있을 때, 아주대학교 앞에도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혼밥을 했던 경험이 있어요.




닭칼국수집은 보통 네 명 정도 모여서 가서 치킨 한 마리 시키고 칼국수나 곰탕은 인원수보다 한 개 정도 적게 시켜서 나누어 먹으면 아주 그만입니다. 테이블에 있는 후추랑 고추 다진 양념도 양껏 뿌려서 먹으면 아저씨도 아닌데 아저씨 크으-가 자동으로 발사됩니다. 여긴 2022년 9월에도 갔으니 비교적 최근에 다녀왔지요.



김치까지 맛있는 닭칼집! 치킨 주문은 필수.



학교 말고도 동네에 오래된 가게들이 있습니다. 제 학창 시절과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안양시 범계역에는 아직도 배스킨라빈스가 같은 자리에서 20년도 넘게 영업 중이고, 친가 쪽 우리 항렬의 막내 친척동생이 스무 살이 되었던 2012년에 친척 오빠가 동생들 술 한잔 사주겠다며 불러냈던 수원역 찜닭집 '하회마을'도 10년이 넘도록 성업 중에 있습니다.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이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제가 기억나는 것만으로도 지난 3년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던, 지금도 진행 중인 코로나라는 악재가 있고 그전에도 힘든 순간이 얼마나 수도 없이 많았을까요.




대학교 새내기 시절, 바닥을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셨던 막걸릿집, 연인과 헤어져 실의에 빠진 친구를 위해 다 같이 뭉쳐 소주를 마셨던 동네 포차, 취준생 신분으로 없는 돈을 아끼고 아껴 끼니를 해결했던 저렴한 백반집... 음식은 맛이 아닌 위로가 되어 우리 인생을 쓰다듬고, 가게는 건물이 아닌 추억의 앨범이 되어 나도 잊고 있던 행복한 순간의 책갈피를 꽂아줍니다. 내 마음에 드는 가게를 만나면 보물섬이라도 찾은 꼬마 해적처럼 마음이 기뻐지고, 자주 가던 음식점이 폐업을 하면 덩그러니 붙어있는 임대문의 스티커마냥 마음이 텅 비곤합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해주는 식사



한 자리에서 10년 넘게 장사한다는 것은 길을 가다 가게에 들어온 어느 누군가의 눈물짓고 깔깔 웃고 허기를 채우며 맛을 보는 이 모든 순간을 따뜻한 한 그릇에 담아내어 주면서 삶마저도 따스히 데워주는 것이 아닐까요.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1월 9일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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