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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10. 2023

'모르는' 친구의 안부를 훔쳐보곤 합니다.

모두 잘 지내고 있나요?

카카오톡의 도움으로 이제 친구의 생일을 외우지 않아도 되고, 사진이나 메시지를 바꾸어 프로필을 업데이트한 친구의 근황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카카오톡 '친구'에는 총 497명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친구일까요?






이 '친구'안에는 세 가지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첫째, 가족이나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5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둘째, 학교에서 또는 일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친구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이 카테고리의 지분이 가장 많습니다.


셋째, 번호의 주인이 바뀌어 정말 누군지 '모르는' 사람. 완벽한 타인. 낯선 이름도 있고, 프로필명을 개인이 지정하다 보니 이름이 아니라 명언 같은 문구로 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AI 스피커가 날씨를 알려주고 서빙 로봇이 팟타이를 가져다주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타인의 일상과 안부를 훔쳐보는 은밀하지만 합법적인(?) 디지털 관음증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현대병 같아요. 저도 물론 앓고 있고요. 요즘 태어나는 친구들은 이미 완벽한 디지털 세상에 살다 보니, 제가 일부러 '디지털'이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컬러사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오히려 생경할 것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선 어쨌건 이런 종류의 관음이 불가능했으니까 촌스럽지만 저 단어를 사용함에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저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문구를 바꾸지 않은지 6~7년이 넘어갑니다. 초반에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기 셀카, 다녀온 여행지, 선물 받은 물건 등을 업데이트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나는 남에게 내 정보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치 팬옵티콘 Pan-Opticon처럼
나는 남을 감시하지만 감시당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이고, 이 정보의 격차가 자본의 차이를 만들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너희들과 달라. 웃기는 말이죠. 자기는 할 거 다 해놓고 남들한테 당하는 것은 싫다니. 어찌 보면 더 겁쟁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자랑한 것이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일까 봐 숨겨왔던 것일 수도 있고, 하도 보이스피싱범들이 지능범죄를 행하다 보니 내 개인정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황급히 가리는 것일지도요.



어쨌든 저는 위와 같은 모종의 이유들로 프로필을 바꾸지 않지만, ㅡ이게 더 음흉하게 보입니다만 사실이 그러하니 고백합니다ㅡ '친구'들의 업데이트를 관찰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어쩌면 남들 보라고 올린 것 보는 것이니 훔쳐보는 관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위로를 해 봅니다.



보통 제 또래의 여자 '친구' 들은 결혼식 사진이나 아이 사진이 가장 많습니다. 원래 프로필은 자랑하고 싶은 것을 올리는 공간이잖아요. 그들의 삶에 자랑할만한 사건과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점에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그냥 아는 사람 카테고리에 있는 분들은 공교롭게도 여행, 자연물 사진이 많습니다. 일상을 떠나 여행지에서 즐거워 보이는 모습, 빌딩 숲이나 아파트촌에선 볼 수 없는 산이나 풍경들도 단골 사진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카카오톡에서 저는 '멀티프로필'에 가둬져서 진짜 프로필을 못 보고 평범하고 무난한 프로필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번엔 번호의 주인이 바뀐, 이름도 모르는 완벽한 타인들도 한 번 살펴봅니다. 어떤 분은 이름이 '운이 트일 때까지 버티는 끈기와 근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들을 둘러보니 터울이 좀 있는 자매를 키우는 엄마인 것 같아요. 남편과 둘째 딸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도 있습니다. 전에 외삼촌이 사용하던 번호는 지금 초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친구가 사용하나 봐요. 배경사진이 온통 로블록스ㅡ초등학생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임입니다ㅡ 와 포켓몬 빵, 태권도복을 입고 찍은 셀카네요. 저에겐 아직 작은 외삼촌으로 저장되어 있는데 이제 주인은 초등학생이라 어린이 취향의 프로필이 있다 보니 어색합니다. 조검용 씨는 프로필도 기본 프로필에 소개 문구 등이 일절 없습니다. 정말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어떤 연유로 제 '친구' 목록에 저장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이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텐데 추론조차 불가능하다니.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마음이 풍족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도 7년째 바뀌지 않는 제 프로필을 보고 누구일까 갸웃할까요? 조금 반성을 해 봅니다. 중요한 사실은 프로필을 바꾸든 아니든 오늘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멋진 하루를 보내서 자랑할 사진을 올릴 수도, 휴대폰을 손에 쥘 만큼의 힘도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아서 프로필을 못 바꿨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 '친구' 목록에서 오늘 업데이트한 친구는 13명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하고 행복한 것들을 자랑하는 모든 '친구'들의 행복을 바라봅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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