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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12. 2023

제 때 밥을 못 챙겨 먹는 건 꽤나 서럽거든요

우리나라는 밥의 민족입니다. 모든 안부가 밥으로 귀결됩니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지내니?

저런 감방에 들어가서 콩밥 먹을 놈!

야,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지.

콩 한쪽도 나눠서 먹는 사이.



2021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1인 당 돼지고기 소비량 2위입니다. 다른 나라에선 향신료로 분류되어 한 두 톨씩 소분해 파는 마늘을 한국인들은 어떤 음식이든지 아빠 숟가락으로 크게 한 스푼 이상 넣어야 맛이 제대로 난다며 좋아합니다.




식문화가 발달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식당들이 늦게까지 열고 야식도 즐깁니다. 유럽 국가에 여행을 가 보신 적이 있다면 어찌나 식당들이 일찍 닫는지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저녁을 쫄쫄 굶고 신라면을 먹게 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밥에 진심인 나라에서,



제 때 밥을 못 챙겨 먹는 건 꽤나 서럽거든요.








제 직업은 강사입니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돈을 법니다. 그럼 보통 언제 일을 할까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보통 4시에서 4시 30분쯤 모든 수업을 마치고 학교 일과가 마무리됩니다. 저는 아이들이 하교를 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이르면 4시, 늦으면 5시쯤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어 보통 10시에 마칩니다.





각 시·도 별 교육청에서 정한 학원 운영 가능 시간이 있어서 그때에 맞추어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을 돌려보내야 하는데요. 우리 지역은 10시가 제한시간이라 망정이지 11시까지인 지역도 있습니다. 그곳의 많은 학원 강사들은 11시에 수업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면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있지요.





저도 일반 사기업에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9 to 6로 근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퇴근하고 회식만 가도 그 시간에 우릴 위해서 삼겹살도 팔아주고 돼지껍질도 팔아주는 가게 사장님들이 미끌미끌한 테이블을 열심히 소주 칙칙이를 뿌려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니까 그냥 남들도 다 그러겠거니 하고 주변엔 관심도 없던 거예요. 이기적이거나 또는 그냥 깊게 생각을 안 하는 헛똑똑이인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평범한' 회사원을 그만두고 인생 제2의 직업으로 학원 강사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별다른 꿈이 없어서 부모님이 초등학교 교사 하라고 하셨거든요. 매 년 학년이 바뀌면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이 원하는 학생의 장래희망, 학생이 원하는 학생의 장래희망 적어서 내라고 할 때 고1, 고2 때는 모든 칸이 다 교사였어요.



그러다 고3 때 꿈이 바뀌어서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어 더 이상 교사의 꿈을 꾸지도 이루지도 않았는데요. 지금은 학교 교사가 아닌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아이들이랑 지내는 건 꽤나 할 만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제 장래희망 변천사가 아니라 밥에 대한 이야기니 이만 각설하고요.




강사가 되고 나서 가장 힘든 것은 끼니를 제 때 못 챙긴다는 겁니다. 누굴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알고 시작한 직업이고, 몰랐다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것인데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중간에 식사 시간을 주는 학원도 있지만 지금 제가 근무하는 학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사실 원장님이 스케줄을 조절해 주실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러면 학원에 체류하게 되는 시간이 더 길어져 버리니까 그게 싫어서 제가 거절한 거예요.




그래서 기진맥진 수업을 마치고 집에 11시 넘어서 들어오면 허겁지겁 뭐라도 집어먹고 또 금방 잘 시간이니까 누워서 역류성 식도염 걸리고.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퇴근 후 먹은 똠얌꿍 밀키트




제가 9 to 6로 계속 똑같은 삶만 살았으면 여전히 소주 칙칙이 가게 사장님들처럼 다른 시간에 일하는 사람들 생각은 여전히 못 하고 살고 있겠지요?




회사 다닐 때 영업팀 동기의 차에 한 번 얻어 탄 적이 있어요. 차 안은 지저분하고 이런저런 업무 관련 서류, 제품 샘플들, 운전할 때 신는 신발, 그리고 마트에서 산 것으로 추정되는 딱딱하게 식은 먹다 남은 꿀떡 몇 개... 그때는 솔직히 속으로 흉을 봤습니다. 으휴. 좀 깨끗하게 치우고 그러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동기의 사투였습니다.



영업을 뛰다 보면 제대로 밥 챙겨 먹을 시간이 없을 때도 있고, 그러다 보니 운전하면서 중간중간에 아무렇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을 거고, 그래서 생각한 게 김밥, 떡 같은 것이었을 거예요. 안 봐도 뻔해요. 제가 지금 그러고 있거든요. 하루하루 쳐내면서 살아내고 있는 전투장이었습니다. 전쟁터요. 전쟁터 보고 왜 깔끔 치 못하냐고 생각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 그대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냅니다



저도 이동할 때 도시락 싸간 거를 신호대기 할 때 얼른 한 입 먹고 우물거리고 삽니다. 차에는 김치볶음밥 냄새랑 탄산음료 냄새랑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거든요. 지금 이동하면서라도 먹어야 이따 수업할 때 안 쓰러지고 수동태 설명을 할 수 있거든요.



이 직업을 가진 이후로 밥때를 못 챙기는 많은 직업 전선에 계신 분들에게 마음속 응원을 전합니다. 미용사, 장거리 화물 운전수, 1인 카페 사장님, 승무원... 모두, 젓가락질 잘 못 해도 밥 잘 먹기를!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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