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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13. 2023

K-POP 순댓국

외식 물가가 너무 올랐습니다.

기본 김밥 말고 '무슨무슨 재료김밥'이라고 따로 이름이 붙은 김밥들은 한 줄에 5천 원이 넘기도 합니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에서 순댓국이 아른거렸거든요.

오전에 댄스학원 갔다가 수업 마치고 점심으로 먹을 생각에 사당역 근처 순댓국을 찾아봤어요.

와 근데 거의 대부분 9천 원이더라고요.



2~3년 전에는  '햄버거 먹느니 국밥 한 그릇 제대로 먹지.' 할 정도로 국밥 가격이 이렇게 비싸진 않았습니다.

지금은 '국밥 먹느니 햄버거로 배 채우지.'로 전세역전 될 정도라니까요.



OK캐시백 어플을 깔면 롯데리아랑 버거킹 할인 쿠폰을 조건 없이 주거든요? 이 쿠폰을 쓰면 국밥 한 그릇 가격으로 햄버거 세트 1.5개에서 2개까지도 먹을 수가 있어요. 꿀팁이니까 적어두시고요.





처음에 순댓국이 9천 원인걸 보고 며칠간은 참아봤습니다. 마트에서 순대를 사서 사골팩이랑 끓여 먹어 볼까도 생각했어요.


근데 집에서 해 먹는 건요. 몇 시간 동안 강력한 식당용 LPG 가스로 팔팔 끓여내서 진짜 진한 돼지 육수에 들깻가루 챡 뿌린 보글보글 뚝배기랑은 견줄 수 없는 거잖아요.


그쵸?

무슨 느낌인지 알죠?



그래서 큰맘 먹고 순댓국 사냥에 나섰습니다.

 4호선 사당역과 이수역의 딱 중간에, 버스정류장 사당동 우체국 앞 정거장에서 내리면 '청와옥'이라고 줄 서는 순댓국집이 있어요.

체인점이라 서울 위주로 여기 저기에 있다고 들었고요.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고 싶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저긴 뭐길래 저렇게 줄을 서나 하고 유심히 봤던 곳이거든요. 인스타 맛집도 아니고 순댓국집에 줄 서는 건 '찐'이다 싶었어요.


흔히 생각하는 허름한 외관도 아니고 멋진 기와집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인테리어예요. 심지어 우리 아빠 또래 아저씨들도 줄 서는 걸 보고 여긴 인정이다, 나보다 두 배도 더 산 양반들이 줄 서니까요.




저는 줄 안 서려고 오전 10시 반쯤 도착해서 순댓국 하나를 드디어 시켰습니다. 점점 기대가 되었어요!





밑반찬으로는 부추, 깍두기, 김치, 새우젓, 쌈장, 그리고 이 가게의 '킥'인 어리굴젓이 있습니다. 어리굴젓에서 1차로 반했습니다.


어리굴젓은 비싸서 그런지 정말 젓갈가게 이쑤시개 맛보기 정도로만 주시고요. 더 먹으려면 4천 원을 내고 추가해야 합니다.






한옥 창호지문 모양의 예쁜 영수증 꽂이가 2차로 저를 홀렸습니다. 너무 예쁜 거예요. 돈 내라는 종이 주는 건데 대접받는 느낌이 나더라니깐요?






그러고 드디어 순댓국이 나옵니다.

여기 국물이요,

왜 우리 어렸을 때 겨울에 감기 걸리고 하면요,

 엄마가 몸 건강해지라고 집에서 제일 큰 냄비에다가 사골 끓여주신 거 먹으면 입술 찐득하게 달라붙는 거 있잖아요.


밤새 사골 불순물 국자로 퍼내면서 약불로 종일 끓이면 나오는 그 맛이랑 찐득함이요. 돼지 순댓국에서 그런 맛이 나요.


청와옥 식당에 '순댓국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쓰여있던데 손뼉 쳐드리고 싶더라고요.


근데 순댓국이 저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든 3번째 이유는 아니에요. 맛없다는 게 아니라 워낙 기대를 많이 했고 그 높은 기대치를 잘 충족했다는 거고요.


 3차 K.O 되었던 이유는 배경음악입니다. 가요도 아니고 국악도 아니고 가요 국악버전을 틀어두셨더라고요.


BTS 노래가 가야금 선율로 나오고 오마이걸 노래가 피리랑 꽹과리로 연주돼요. 근데 이게 되게 묘해요. 내가 아는 가요인데, 분명 가사도 입혀서 따라 부를 수 있는데, 악기랑 선율이 국악이다 보니까 운치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 사연 있어 보이는 거! 배우 신세경 씨가 그걸로 유명하잖아요. 그냥 얼굴만 딱 봐도 되게 사연 있어 보이는걸로요.


제가 순댓국 먹는데 국악버전 가요가 나오니까, 옥살이하면서 몽룡이 기다리는 춘향이 된 느낌인 거예요. 높으신 분들도 검찰 조사받으면 꼭 국밥 주문해서 드시잖아요.


눈가에 울멍울멍 눈물 고인 채로 울음 억지로 참으며 꾸역꾸역 밥 먹는 K드라마 캔디 여주인공 클리셰처럼. 국밥 먹는데 여주인공 빙의해서 몰입했다니까요.


음악이 이렇게 중요한지 순댓국 먹다가 깨달았어요. 레드벨벳 Psycho랑 아이유 Celebrity도 국악으로 들으니까 더 멋스러워요.


 아주 오래전부터 서민들 배고픔 달래준 순댓국이라는 메뉴에 번쩍번쩍 현대식 인테리어의 조합이, 전통음악인 국악과 세계화를 이끄는 Kpop이 만난 것처럼 딱 맞는 비례식이 되었어요.



보통 1인분을 다 못 먹는데 노래 덕분에 완뚝배기하고 나왔습니다.


사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 드립니다. 국악버전 가요 들어보세요. 진짜 신세경 씨 남부럽지 않게 분위기 잡힌다니까요.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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