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로 Feb 03. 2023

맥심은 커피가 아니라

*커버 사진 출처 : 동서식품 홈페이지




"쌤 힌트 주세요~~"

"여행 가거나 치과 갈 때 하면 좋은 거!" 


"음....


보험이요?"


정답은 reservation, 예약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학생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는데 재미있는 상황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얼마 전에 글로 썼던 more money 모레머니 같은 발음으로 한바탕 폭소를 유발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psychology 프시촐로지는 약과입니다.


수업 중에 있었던 기억에 남는 짧은 에피소드들을 소개합니다.






1.


독해 수업을 하다가 <이 연구 결과는 사'실이'다.> 하고 독해를 했더니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네, 부르셨어요?> 하고 아이폰 '시리(siri)'가 대답을 해서

다 같이 깔깔깔 웃은 적도 있습니다.


시리 덕분에(?)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데스크에 휴대폰을 제출하고 와야 하는데 제출하지 않은 학생을 잡아내는 것도 성공하고요.



2.


어휘 수업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형용사형 어미를 가르치던 중이었어요.


"현진아, 오늘 접미사 뭐니?"


"...이씨?"


(이마를 탁 치며 질끈!) "쌤한테 화내지 말고. 이럴 땐 알파벳 하나하나씩 읽어야지.

아이, 씨, 이렇게.

단어 뒤에 -ic로 끝나는 단어들은 형용사일 확률이 높아.

-ic가 형용사형 어미거든.

예시 단어들 좀 볼까?


economy(경제)에 -ic가 붙어서 economic(경제의),

base(기초)에 -ic가 붙어서 basic(기초적인)..

이런 것들이 모두 형용사야."


"선생님."

"응?"

"그럼 갈릭(garlic)도 형용사예요?"

"야이 멍청아! 갈(garl)이라는 단어가 있냐! 원래 있는 단어 뒤에 ic를 붙이는 거잖아!"


옆자리 학생의 일'갈'로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3.


독해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한 줄씩 영어로 읽고 한글로 해석을 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한때 제안했다.

동네에 새로 온 사람이 원래 살던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고.

한 늙은 커피 도시에서."


"지수야, 어디 해석한 거야? 셋째 줄 맞아?"


"네."


"커피 도시라는 내용이 어디에 나와?"


"여기 maxim이요."


"... 얘들아, 맥심은 커피가 아니라 격언이라는 뜻이다..."


(아이들 모두)"ㅋㅋㅋㅋㅋㅋㅋ"


"도시는 또 어디 있었는데?"


"citing 여기요.."


"명사 시티에 ing가 붙은 게 아니라 동사 cite(싸이트)에 ing 붙은 거겠지!!!!"





아이들의 뜻밖의 상상력(?) 덕분에 독해 수업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된 격언을 인용하면서>가 <늙은 커피 도시에서>가 된 것처럼요.


놀랍게도 다른 수업에서 다른 학생이 더 멋진 해석을 만들었습니다.




<물고기 어디 물고기가 커피이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어디부터 손 대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독해를 뜯어고쳐 주었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은 기특하게 잘 따라와서, 지난 2022년 중간고사 때는 무려 17점이나 오른 점수를 보여주었습니다.




4.


단어 테스트 채점 중이었습니다.


보통 단어 테스트를 볼 때 품사만 틀리게 썼으면 0.5점을 주고요, 단어책에 나와있는 뜻을 그대로 쓰진 않았지만 의미가 통하게끔 쓰면 1점을 그대로 인정해 주곤 합니다.


예를 들어 careful을 조심스럽게라고 쓰면 0.5점, cause가 책에는 초래하다, 야기하다만 나와있어도 유발하다를 쓰면 당연히 1점을 줍니다.


그러던 중, 몇 점 처리를 해야 하는지 심히 고민되게 만드는 아이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kidnapper - 아동 훔치기


몇 점을 주었는지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5.


"연우야 오늘 어머니가 직접 결제하러 오셨네?"

"네. 엄마 어제 드렁큰이어서 죽겠다고 오늘 회사 안 갔어요."



"태희야 어제 뭐 했어?"

"아빠 병문안 갔어요."

"헉? 아빠 어디 아프셔?"

"치질수술이요."



"쌤, 저희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거든요? 엄마가 학교에서 있었던 웃긴 얘기 해줬는데요. 근데 엄마가 자기 선생님인 거 쌤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제가 말했다고 하지 마세요?"



때로는 아이들 가족 분들의 TMI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제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수업할 때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재밌는 이야기 해 주실 때,

만우절날 선생님 골탕을 먹이려고 반 전체가 단합해서 아이디어를 짤 때,

수업 중에 같은 반 친구가 방귀를 뀌어서 난리가 났을 때.


공통점은 모두 맘껏 웃었을 때입니다.


제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먼 훗날 이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즐거웠다고 돌이켜 생각해 준다면 제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지요.

앞으로도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들을 기대해 봅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매거진의 이전글 쉬지 않고 Tmi를 말하는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