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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20. 2023

정리 귀차니스트의 어쩌다 미니멀리즘



와~ 이 스티커 가져가도 돼요?


요즘 힙히고 핫한 카페나 수제맥주집에 가면 카운터 앞에는 으레 가게에서 직접 만든 스티커가 있다.


사람들은 이 스티커를 한두장씩 가져가서



첫째, 노트북에 붙이거나,



둘째, 인테리어용으로 집의 어느 공간에 조화롭게 붙여두거나,



셋째, 서랍에 처박아 두고는 다음번 이사 때 버린다.


그 동안 스티커의 존재가 잊힘은 물론이요, 다른 물건을 찾는 데 걸림돌만 되는 건 보너스.


그렇게 우리 집 서랍에도 XX브루어리, 카페OO, 디저트 쿠키 전문 YY의 스티커들이 잔뜩 잠들어있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실 사람? 나야나!


나는 다꾸족도 아니고 일기도 안 쓰는데 힙&핫 스티커들과 갬성 스티커들을 왜 챙겨왔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스티커들을 집에 가져오면 나도 힙앤핫 갬성 하우스를 가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그 스티커들은 그런 공간 안에 있으니까 예쁜 것이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꽃분홍 자주색 고무장갑이 싱크대에 걸려있고 현관 앞에는 나갈 때 버릴 분리수거 쓰레기들이 항시대기하고 있는 우리 집에선 제 아무리 갬성 스티커라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다.


왜 이걸 가지고 온거지.


손바닥 절반 보다도 작은 스티커 앞에서 나는 현타를 맞이한다.


쪼그리고 앉아서 겸허히 선언한다.


"나는 앞으로 갬성 스티커를 챙겨오지 않겠습니다." 


이미 가져와버린 스티커들을 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컴퓨터 모니터에 내려앉은 먼지를 스티커로 스윽 닦아내거나 바닥에서 춤추는 고양이털과 내 머리털을 찍어서 버리기로 했다.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주방 찬장에는 1년에 1번 정도 쓰는 컵이나 접시가 있다.


신혼 초, 예뻐서 사들인 접시들은 보통 실용성이 부족하거나, 모양이 불규칙적이어서 쌓아 두기엔 공간 효율성이 좋지 않다.


첫 신혼집에서 이런 애물단지 접시들로 설거지 때마다 찬장 테트리스를 해야 했던 나는 이제 접시를 사기 전 2주 정도를 고민한다.


그 후로 새로 산 접시는 딱 2개이다.


가끔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시시호시같은 편집샵을 구경하거나, 아울렛에 있는 그릇가게를 구경하다 보면 감탄이 나오게 예쁜 접시들이 있다.


인스타 유명 브런치 맛집에서 쓰는 듯한 접시, 당연히 가지고 싶다. 그렇지만 접시 소유로 부터 오는 효용보다, 그것을 관리하고 이고지고 사는 수고가 나에겐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안 산다.



나는 화장대가 없다. 화장품은 아주 단출하다. 파운데이션은 없다.


예전엔 코랄색, 피치색, 레드색, 핫핑크색... 아주 오색 찬란한 색상표처럼 립스틱도 종류별로 썼다.



21호 파운데이션이랑 23호 파운데이션을 섞어야 내 피부와 맞는 색이 나온다며 무슨 도미노 게임처럼 화장품들을 화장대에 늘어놓고 산 적도 많았다.


그래봐야 결국 바쁘게 나가야 할 땐 쿠션만 팡팡 두드리고 가게 되는데.



이제 쿠션은 거울이 달린 껍데기 케이스 말고 리필형으로 쓴다. 립스틱은 버리고 버렸는데도 아직 많다. 로션은 아무거나 쓴다.


다 쓰면 보통 시드물에서 사는데, 다 쓰기 전에 친구가 주거나 어디 사은품으로 받거나 해서 생각보다 자주 사지 않아도 된다.


샴푸도 마찬가지다. 선호하는 브랜드 같은 건 없다. 그냥 추석 선물세트로 들어오면 그걸 쓰고, 본가에 가면 엄마도 쟁여둔 선물세트 목욕용품을 주니까 그걸 쓴다.


구매하지 않고 그냥 생기는 것들을 쓰니까 신경쓸 게 없어 편하다.



소유를 위한 소비가 이젠 좀 지겹다.





#별별챌린지 #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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