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밑에서 선풍기 하나 더 켜고, 수박 먹으면서 웹툰 보기. 고양이랑 뒹굴거리면서 밀린 예능 보기. 친구랑 전화로 시답잖은 이야기 나누기. 집 앞 편의점 가서 네 개 만 원짜리 맥주 사서 바지 양쪽 주머니에 불룩하게 하나씩 넣고 나머지 두 개는 손에 들고 돌아오기. 요리하기 귀찮으니까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배달의 민족 주문하기. 오후 네시쯤 '아 지금 잠들면 애매한데...'라고 생각은 하면서 스르르 핸드폰 놓치면서 눈 감겨 낮잠에 빠져들기...
이 시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는 시간이 아니다. 다음 도약을 준비하는 위대한 웅크림이다. 장풍 쏘기 전 기를 모으는 로딩 시간처럼, 게임에서 필살기를 쏘고 다음 필살기를 쏘기 전 기다려야 하는 쿨타임처럼.
금 같은 주말, 10시 넘어 느지막이 일어나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잠옷바람으로 넷플릭스를 보면서 아점을 먹는 직장인을 누가 욕할쏘냐. 이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이것은 다음 주를 이겨낼 에너지를 모으는 존엄한 의식이다!
내겐 노래를 듣는 것이 이 게으른 시간을 채우는 데 필수적이다. 어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보통은 손을 씻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거나 가방을 정리한다. 하지만 어제는 손만 씻고 바로 우리 집 거실 세라믹 식탁의 2인용 벤치의자에 털썩 앉았다.
"뭐해?"
"노래 골라."
2분이 지났다.
"뭐해?"
"계속 노래 골라."
난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일할 때를 제외하고 집에 있거나 차로 이동하는 시간의 80% 이상은 노래를 듣는다. 설거지할 때, 청소할 때는 '노동요'스러운 빠르고 신나는 템포의 아이돌 음악을 틀어 놓고 한다. 샤워를 하러 들어갈 때도 핸드폰이나 갤럭시탭을 챙겨가서 멜론 Top 100을 랜덤 재생한다. 운전할 때는 네비를 켜기 전에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음악부터 켠다. 지금처럼 글을 쓸 때는 가사가 없는 것을 주로 고른다. 보컬 없는 피아노 재즈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3시간짜리 로파이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쓴다. 나는 오디오가 비어 있는 집을 견딜 수 없다.
지금 내가 글 쓰면서 듣고 있는 로파이 음악.
어젯밤에도 이러한 이유로 집에 오자마자 할 일들(옷 갈아입기, 가방 정리하기, 저녁 식사 준비하기 등)을 미뤄둔 채 게으름을 피우고 노래 먼저 골랐다. 어젠 일이 많아서 많이 지쳤다. 노래를 고르는 일이 급선무였다. 어제 듣고 싶은 노래는 스탠딩에그의 '햇살이 아파'라는 곡이었다. 나의 휴대폰 메인화면에는 다양한 어플을 용도별로 묶어둔 폴더들이 있다. 그중 음악 어플과 카페 멤버십 어플이 들어있는 폴더의 이름은 '인공호흡기'이다. 없으면 못 산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이 폴더 안에는 셀카 어플도 있다.)
잠 자기 전에도 대부분 노래를 꼭 켜 둔다. 내일 일어나서 일하려면 일찍 잠에 들어야 하는데. 잠을 자꾸 미루고 늦은 밤 게으름을 피운다. 그렇지만 이 시간은 내가 하루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다. 오일 스프레이로 기름칠을 한 와플팬에 크로와상 생지와 버터를 넣고 누를 때 나는 맛깔난 치이익 소리처럼. 토스트기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식빵 냄새처럼. 이 게으른 시간이 구워지고 있다.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다. 내일도 무사히-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