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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ul 24. 2022

이 결혼사진, 몇 년 된 것 같나요?

오늘은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대학교 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만나 불같은 20대 청춘을 함께 보낸 친구예요. 함께 MT에 가고, UCC를 찍고―요즘 사람들은 이 단어를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UCC는 사용자가 만들어낸 창작물이라는 뜻으로, 당시에는 학생들이 브랜드 홍보 공모전 따위에 출품하거나 대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 직접 찍고 편집한 동영상이라는 협의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운영진으로서 동아리 살림을 꾸려나갔던 친구입니다. 



몇 주 전, 사당역 11번 출구 근처의 일본식 선술집 '토모야'에서 했던 청첩장 모임에는 가지 못했었지만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꾸밈없는 새내기 예비부부의 사진을 보면서 티 없이 하얗고 부드러운 순두부가 떠올랐어요. 오랜 시간 만난 남자 친구와 이제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 친구가 기특하고 예쁩니다. 모바일 청첩장 스크롤을 옆으로 밀며, 친구가 고심해서 골랐을 12장의 사진들을 구경합니다. '인물 중심'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는지 두 사람의 설레는 표정이 사진에 묻어납니다.



친구의 결혼사진을 보니 제 결혼이 생각났어요.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부와 신랑들이 많이 가입하는 '다이렉트 웨딩카페'가 있습니다. 저도 결혼 준비의 시작과 함께 카페에 가입하고 열심히 다른 '예신'들의 글을 탐독했습니다. 서울에 유명한 스튜디오들에 대한 리뷰들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 스튜디오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바로 '인물 중심'과 '배경 중심'. 글자 그대로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찍느냐입니다.





인물 중심 스튜디오에서는 배경이 대체로 간단하고 수수합니다. 신혼부부가 사진의 초점이 되고 주제가 됩니다. 두 사람의 표정과 포즈가 중심적으로 드러나요. 배경 중심 스튜디오는 멋진 조명의 야경(야간 촬영을 하면 비용이 늘어나지만 낭만적인 사진을 건질 수 있습니다.), 초록색의 예쁜 식물들과 나무 배경, 뉴트로를 생각나게 하는 한옥 씬 등 영화 포스터처럼 화려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저는 어떤 종류의 스튜디오에서 찍었을까요?



당시 예비남편과 저는 '스드메'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큰 투자를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돈은 정직하기에, 결과적으로 같은 시기 결혼한 친구들처럼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어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촌스러운 사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실내에서 배경지를 내리고 찍었는데 정열의 빨간색이었어요! 





스드메를 통째로 한 업체에 맡겨서 했는데, 사진 소품과 배경은 차치하고서라도 촬영용 드레스 한 벌은 어떤 사진도 고를 수 없을 만큼 촌스러운 드레스가 끼어 있었어요. 이제 와서 말하지만 드레스가 아니라 수영복인 줄 알았습니다. 어찌 되었건 촬영을 마치고 메인 사진을 골라야 했는데요. 고르고 고르면 나름 '핫한' 스튜디오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사진을 고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나름 '핫한' 스튜디오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진



그치만 위의 사진은 모바일 청첩장 메인 사진으로 사용했고, 액자로 제작하여 식 당일에 포토테이블에 전시하고 집에도 가지고 오는 사진은 아래의 것을 골랐습니다.



고루한 괘종시계와 그 뒤로 보이는 정리되지 않은 여러 오브제. 자세도 정말 편히 앉아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이다.




딱 봐도 요즘 스타일은 아니지요. 이 글을 쓰면서 안 그래도 궁금해 검색해봅니다. 검색 옵션에 게시글 기간을 2004년부터 2007년 사이로 설정하니 딱 이 배경이 나오네요! 이 15년 전 대표 스타일 '괘종시계와 서재 컷'을 고른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실 이 배경은 촬영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이미 오래된 스타일이라 그런지 작가님도 메인으로 두고 촬영한 장소는 아니었어요. 여러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물론 이 배경들도 그리 세련된 곳은 아니었습니다만.) 다음 컷 준비를 하는 동안 여기 앉아있으라고 하셨는데 잠시 촬영을 쉰다고 하니 긴장이 많이 풀렸었던 모양이에요. 예비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촬영 너무 힘들다. 두 번은(?) 못 하겠다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때 다음 컷 카메라 준비가 되었다고 작가님이 연습용으로 "여기 보세요" 하고 찍은 사진이 바로 이 사진입니다.



배경은 정말 촌빨 날리지만 저랑 예비남편 표정이 가장 편안해 보였어요. 결혼식은 각본이 준비된 꾸며진 것이지만 결혼생활은 꾸밈없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잖아요. 그게 좋아서 이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결혼 15주년에 이 사진과 비슷하게 한 번 찍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둘이 같이 할 버킷리스트가 하나 늘었습니다. 오래된 스타일의 배경이지만 그 안에 웃음은 때 묻지 않았기에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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