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었던 모바일 게임의 유혹
그토록 바랐던 군대 제대.
편입을 위해 미리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군대를 갔다 오면 다 까먹을까 봐 뭘 하기도 애매했던 1학년.
하지만, 이제 군대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나는 복학생을 앞두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기다려왔던 날이었던가.
힘찬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2년 동안 세월의 풍파를 겪은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약간 아렸다.
어머니에게 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복학 전까지의 이 소중한 시간 동안 토익부터 공부해서 어학점수를 미리 만들어놓고 학기 중에는 전공 공부를 하면 얼추 계획이 맞을 것 같았다.
공부 장소도 잘 마련되어 있어서 더욱 공부할 의지가 불탔다.
내가 사는 동네는 기본적으로 시골이었는데,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다 빈 집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방값이 싼 편이었다.
서울에서 50만 원의 월세로는 정말 좁은 방 한 칸을 살지만,
우리 동네는 방 한 칸짜리가 20 ~ 25만 원이었고 잘만 구하면 30만 원에 두 칸짜리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형은 진작에 따로 방을 구해서 살고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오니 좋은 방이 생겼는지 조금 더 넓은 투룸에서 살고 있었다. 거기서 넓은 방을 나에게 주었는데, 이 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하면 기다란 복도가 펼쳐지고 방이 각각 하나 있는 투룸이었다.
내가 있었던 방은 창문이 있어서 동네의 도로와 가로수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풍경이 어찌나 살랑거리던지.
또, 밤에는 달빛이 은은하게 나의 방을 방문하여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책꽂이, 책상과 컴퓨터는 내가 군대에서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나만의 공간과 물품들을 완벽히 갖추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마음껏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무조건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군대에서의 2년 동안 그런 공간을 가지지 못해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갖추어진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게 되자 가슴속에 벅찬 희열이 차올랐다.
2017년 12월 17일의 저녁.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도착한 나의 방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행복한 잠을 잤다.
아무리 독한 사람이라도, 제대 첫날부터 무언가를 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독기를 잠시 잊은 채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그 휴식이 3월의 복학까지 이어질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제대한 다음 날. 어머니가 있는 집에 잠깐 들러 밥을 먹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쉬면서 이런저런 알찬 계획을 세웠다. 복학 전까지 두 달 반동안 미친 듯이 토익을 공부해서 900을 넘기고, 학기 중에 내내 전공공부를 하면서 학점을 챙기면 토익으로 갈 수 있는 높은 대학은 갈 수 있지 않을까?
그중에 최고봉은 연세대였는데, 나는 애초에 그 정도 급은 아닌 걸 알아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서울시립대는 도전해 볼 만했지만, 아직 나의 실력을 잘 모르기에 일단 보류. 이 두 곳 외에는 부산대나 경북대가 있었고, 그 밑으로 전남대, 부경대 정도들이 있었다.
일단은, 토익은 높을수록 좋았기 때문에 950점을 목표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3월까지 최소 900은 찍고, 1학기 중에 틈틈이 공부를 해서 여름쯔음에는 950을 만들자.
편입 시험은 1월쯤에 치니까, 다음 6개월 동안 전공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산대나 경북대 정도는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만 해도 내 목표는 충분히 이뤄질 것 같았다.
한 가지 문제는, 어느 정도로 해야 토익이 900점 이상을 맞을 수 있는지 잘 몰랐다는 점.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나는 900이라는 점수를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지 잘 몰랐다.
인터넷 수기를 찾아보니 거의 노베이스였던 대학생이 두 달 동안 미친 듯이 공부하자, 930을 받았다는 인터넷 기사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용기를 얻은 나는,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며 이것저것 토익문제집을 샀다.
10만 원 가까이 왕창 문제집을 사버렸는데, 군대에서 모은 적금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문제집을 사고 난 뒤에는 딱히 할 게 없어서 내가 자랐던 동네를 산책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란히 있는 학교거리.
내가 12년을 지긋지긋하게 걸어 다녔던 그 거리를 걸어 다니며 생각에 잠겼다.
진작에, 이 등굣길을 밟을 때 열심히 할걸.
왜 그때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남들 다 재밌는 청춘을 즐길 때 나 혼자서 이렇게 암울한 청춘을 즐겨야 하는가?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아련함이 밀려와 슬펐다가도, 그 당시의 한심함이 떠올라서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 어차피 나란 인간은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결국 똑같겠지.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충분히 과거를 만회할 수 있을 거야.'
오늘이 12월 18일이었으니, 12월 말까지 딱 2주만 쉬고 새해부터 열심히 새 인생 살아보자!
나는 이 2주의 휴식이 2달의 휴식이 되어버릴 줄 몰랐다.
12월 18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약 2주간의 시간 동안 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2년 동안 열심히 국방의 의무를 다 했으니, 2주 정도는 쉬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고 더 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수능날에 느꼈던 그 자괴감과, 그로 인한 독기들은 어디로 다 갔던 건지.
전역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겨우 2주 만에 무너져버렸다.
달콤한 휴식과 독기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였다.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게임을 하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었기에 좋은 컴퓨터는 일부러 사지 않았다.
대신에, 게임이 안 되는 중저가 노트북은 학교를 다니면서 써야 했기에 하나 장만했다.
문제는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필수품이나 다름없는데, 전역도 해서 돈도 모았던 나는 냅다 최신폰을 질렀다.
군대에 있던 2년 동안 많이 발전한 스마트폰은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전부 마음에 들었다.
할 일 없던 나는, 이 핸드폰을 계속해서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터넷 방송 어플을 깔아서 몇몇 비제이들의 먹방을 봤었는데, 재밌긴 했지만 괜히 배만 고파졌다.
게다가, 좀 수동적으로 즐기는 콘텐츠라 그런지 지루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워서 곧 그만 보게 되었다.
조금 더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재미는 역시 게임뿐이었다.
플레이 스토어에 있는 수많은 무료 게임들이 나를 유혹했고, 나는 이것저것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재미를 느끼게 된 게임 중 하나가 방치형 게임이었다.
시간을 놔두면 알아서 재화가 벌리고, 그 재화를 이용해서 캐릭터들을 성장시키는 시스템.
그 성장한 캐릭터들을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통해 비교시킴으로써,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과금을 유도하는 구조.
나는 이런 게임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가만 놔둬도 성장하는 이런 게임은 사실 그렇게 재미가 없는데, 남들과 경쟁을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돈을 지를수록 내 캐릭터들은 강해졌고 그 '강함'이 수치로 명확히 드러나는 걸 보는 게 아주 재밌었다.
게다가, 나의 '강함'은 내가 속한 길드에도 도움이 되면서 다른 길드와의 경쟁 콘텐츠에서도 압도적인 성능을 드러냈다.
남들보다 강력한 전투력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이 재미는, 나의 삐뚤어진 열등감과 자괴감을 보상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의 내 현실은 더욱 나빠졌지만, 게임 속에서의 나는 압도적인 승리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약해지고 나의 전투력이 별 쓸모가 없게 되면 새로운 서버로 옮겨가며 그 재미를 느꼈다.
특히, 이 새로운 서버에서 시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떻게 하면 최단 시간에 빠르게 강해지고, 어떤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키워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된 나는 최소한의 돈으로 2~3일 동안 1등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서버를 몇 번씩 옮겨가며 게임을 즐기다가, 게임이 질리면 비슷한 구조의 다른 게임을 또 했다.
너무나 달콤했던 재미와 즐거움은 시간마저 그렇게 녹여버렸고, 돈은 더욱 빠르게 녹여버렸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수강 신청과 복학신청을 해야 되는 2월 중순이 되었다.
통장에 있는 돈은 한 달 정도 겨우 생활할 60만 원가량뿐이 안 남아있었다.
돈은 근로장학생을 또 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큰 문제는 안되었는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토익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곧 3월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군대를 갔다 왔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핸드폰 게임을 삭제해 버린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제대한 복학생들은 다시금 설레는 캠퍼스 라이프를 맞이하려 할 때, 나는 스스로의 한심함에 마음을 가뒀다.
쌀쌀하지만, 다가오는 봄이 산뜻함을 한 모금씩 불어주는 3월.
나는 그 숨결을 거부하고 겨울처럼 혹독하게 살리라 다짐하며 2년 만에 다시 캠퍼스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