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화. 전역 후 동굴에 박혀버리다

내 아까운 돈과 시간들..

by Nos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 곧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12월 중순에 학기는 이미 끝이 나버렸지만, 근로장학은 아직 좀 더 할 수 있었다.

희망자들은 방학 때도 할 수 있어서 나는 냉큼 하겠다고 선언했다.

학기 중에도 거의 일을 안 하는 꿀알바였는데, 방학중에는 얼마나 더 좋겠는가?


나는 군대를 가기 전까지 딱히 할 것도 없었으므로, 조금이라도 더 돈을 모아두고 가고자 했다.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편입을 준비하게 되면 돈이 부족할 테니..


다른 장학생들은 입대를 앞둔 내가 겨울방학에도 근무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통상적으로, 다들 군대 가기 전엔 신나게 놀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죄책감에 휩싸인 청춘으로써 그런 휴식과 즐거움을 나에게 선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잘 놀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어쨌든, 시험이 끝난 근로장학생들은 잉여 그 자체였다.

학기 중에도 정말 간단한 일만 했는데, 방학중엔 대체 무슨 일을 시킬까?

정보전산실을 담당하던 교직원분들도 꽤나 난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학기 중에 20명 정도 가량되는 학생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 방학 때도 근로를 한다고 했기에(이런 꿀 알바를 누가 놓치겠는가?) 15명 정도가 남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학 때는 주 20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까지도 가능했다!

그 당시의 근로장학은 최저시급보다 2천 원을 더 줬기에, 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이 기회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나는 2016년 1월 18일 월요일에 해군 630기로 입대했는데 그 전주인 1월 13일 수요일까지 출근을 해서 일을 했다.

방학때 근로를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2월 말까지 하기에, 중간에 빠지는 나를 다들 의아해했다.

하지만, 군대를 간다고 하자 모두들 수긍했다.

다른 남자 학생들은 대부분 군필자였기에 군대를 잘 갔다오라고 인사도 해주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이 정도 인사까지 안 할 정도로 사회성이 없진 않았다.) 마지막 근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름 감성적으로 젖을법한 일이었지만, 사실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근무 중엔 딱히 실감이 안 났는데,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당장 일주일도 안 남은 군대.

특히, 주말에 머리를 밀고 나니깐 피부에 너무 와닿았다.


이 군대 때문에, 내가 편입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인생에 큰 산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서 빨리 제대해서, 편입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리라.

그렇게 성공하고 나면, 어머니에게 좀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 있겠지.


어머니는 입대 전까지 근로장학을 하다가 바로 입대하는 나를 보며 마음 아파하셨다.

하지만, 나의 진짜 아픔은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시는 어머니께 좀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지 못했던 것.

그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대학을 다니는 1년 동안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입대 당일날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보고도 내 눈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 군대를 빨리 해결하겠다는 마음의 독기가 내 눈물마저도 메마르게 한 듯 했다.


나는 그렇게 2016년 1월 18일.

해군 630기로 입대를 하였고, 2017년 12월 17일에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제대하였다.




군대시절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의 전반적인 군대생활은 대학 1학년과 똑같았다.

난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내 일은 열심히 하지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해서 겉도는 사람이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은, 조금 좋은 대학을 나왔던 선임이 내가 다니는 대학을 묻더니 "개쓰레기 같은 대학을 나왔네."라고 말했던 것.


지금은, 그 선임보다 좋은 대학에 편입하고 졸업한 내게 있어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당시에 나는 좀 적잖이 상처를 받았었다. 하지만, 이 정도 일은 나한테 딱히 편입을 위한 동기부여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대학을 나온 몇몇 후임들이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고 공부를 하는 모습. 공무원 합격한 후임이 한 1~2주 공부하더니 어려운 자격증 시험에 척척 붙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자극을 받았던 나는 군대에서 기른 체력과 정신력으로 제대하자마자 미친 듯이 공부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국방부의 시계는 느리지만 꾸준하게도 흘러 2017년 12월 17일이 되어 드디어 제대를 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어머니를 안아드린 후, 나는 다시 한 번 굳게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습니다.'


복학은 다음 해 2018년 3월에 바로 할 예정이었기에, 나는 약 두 달 반의 남는 시간이 있었다.

수중에는 군대에서 알뜰살뜰하게 모은 300만 원이 모여 있었다.

당시에 월급이 병장 기준으로 20만 원이었으니, 나름 잘 모은 셈이다.


두 달반동안 텅 빈 시간과 300만 원의 돈.

누가 봐도, 여행 가기에 참 좋은 돈과 시간이며 공부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시간과 돈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름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를 한 20대 초반의 남자 청년으로 넘치는 체력까지.


이 황금기에 나는 무얼 했을까?

1. 제대한 기념으로 여행을 한 번 갔을 것이다.

2. 바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을 것이다.

3. 수험생활을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복학 전까지 알바를 했을 것 같다.


위 3가지는 전부 나름대로 좋은 행동이다.

1. 평생에 남을 추억이 되어줄 불멸의 여행이 되었을 것.

2. 더 좋은 대학에 편입하게 되었거나, 내 편입 수험기간을 1년 줄여줬을 것.

3. 좀 더 풍족한 편입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

각각 1. 추억 2. 시간 3. 돈을 벌어들이는 좋은 활동이다.


나는 이 중에 무엇을 선택했나?

놀랍게도, 나는 저 3가지를 전부 버리는 행동을 했다.


방에만 틀어박혀서 두 달 반의 시간과 200만원의 돈을 버렸다.

집 밖을 거의 나가지도 않았던 내가 어디서 그렇게 돈을 썼을까?


바로 모바일 게임이었다.

이 모바일게임과의 악연으로 인해, 나는 내 소중한 시간과 돈을 버렸다.

그 시절을 되짚어 보기 위해, 2017년이 얼마 남지 않았던 12월 말로 돌아가보겠다.

keyword
이전 04화3화. 별일 없었던 20살 하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