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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별일 없었던 20살 하반기.

내 20살은 결국 학교 도서관에서 끝이 났다.

by Nos

기말이 끝나고 나니, 여름방학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쳐야 할 시험을 다치고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여름방학이 찾아오는 건 줄은 몰랐다.


허무할 정도로 찾아온 여름방학.

나는 이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편입카페에 들러 편입 정보를 알아보기도 하고, 좋아하던 책을 읽거나 잠깐 놀기도 하면서 그저 성적 발표를 기다렸다.

성적은 시험이 끝난 지 2주 만에 대부분 발표되었는데, 나는 대학수학만 빼고 전부 A+이었다.

평점 4.5점 만점에 4.3점 정도가 나왔는데, 그 당시에는 이 성적에 딱히 감흥이 없었다.

대학 동기들이 워낙 공부를 안 했으니.. 이 정도 성적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끝난 1학기.

여름방학의 넘치는 시간 동안 토익을 미리 공부해야 하나 싶었지만, 군대를 갔다 오면 어차피 만료될 것이기에 뭘 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그냥 1학년 1학기만 하고 바로 군대를 가는 게 어떨지 잠깐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기도 했고, 별거 없는 캠퍼스 생활이었지만 캠퍼스의 가을, 겨울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


그렇게, 여름방학은 뭘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다른 이들은 1학기때 사귄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피서지로 놀러 가거나 그랬겠지만 나는 그저 집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 하염없이 핸드폰만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편입공부는 본격적으로 안 하더라도, 뭔가 습관을 잡자.

그래서, 그냥 동네도서관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1학기 성적도 나름 잘 받았으니, 다시 게임이나 시작할까도 고민했지만 꾹 참았다.

내 학창 시절을 망쳐버린 주범인 게임을 또 하는 것은 아닌 거 같았다.

차라리 다른 걸 하면서 놀더라도 게임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동네 도서관은 나름 신식이라서 지내기엔 불편함이 없었지만, 대학 도서관을 맛보고 나니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기어이 학교 도서관도 다니기 시작했다.

버스로 왕복 1시간 40분은 걸리는데도.


방학 때 찾아간 대학 도서관은 한적함 그 자체였다.

근로장학생과 교직원을 제외하고는 재학생들은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동아리실이나, 과방에는 가끔 다른 학생들도 찾아오긴 했겠지만 도서관은 수험생이나 일부 나 같은 학생을 제외하면 거의 오지 않았다.


학기 중의 도서관도 좋았지만, 방학의 도서관은 더 좋았다.

나는 여기서 그저 책을 읽으며, 한가롭고도 평화로운 20살의 뜨거운 여름방학을 지냈다.

어떠한 대인관계도 없이, 그저 책과 도서관에서만 파묻혀 살아갔던.. 조금은 싱거웠던 시절.

그렇게 내 여름방학은 딱히 떠올릴 추억도 없을 만큼 어영부영 지나가버렸다.




6월 말부터 시작된 두 달 정도의 여름방학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버렸다.

2학기 개강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와서, 캠퍼스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무덥지만 새로운 2학기가 시작되는 9월.

고등학생들을 제외하면, 학생들은 모두 1학기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익숙해져서 좀 더 즐겁고 활기찬 2학기. 하지만, 나는 여전히 1학기와 똑같은 마음으로 도서관이나 다닐 생각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근로장학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겨울에 공장알바를 하며 모아놓은 돈은 진작에 다 써버렸기에, 나는 2학기 생활비가 부족했다.


본가에서 버스로 등교를 했고 딱히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한 달에 50만 원만 있어도 충분했지만, 그 돈을 어떻게 벌 지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근로장학생 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 합격했다.


근로장학생은 업무 장소가 도서관, 정보전산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나는 정보전산실로 배정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근로장학생을 붙은 것도 운이 컸고 정보전산실로 배정받은 것은 더욱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정보전산실 근로장학생은 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도서 정리 및 잡무가 많은 편이었는데, 정보전산실은 그저 컴퓨터를 사용하는 실습실을 준비만 해놓은 후 모니터링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말이 모니터링이지, 그냥 강의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조치만 취해주면 되는 것이었는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강의실 뒤편에 근로장학생들을 위한 조그만 컨테이너 같은 공간에서 개인적인 자유시간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 게다가, 당시에는 최저시급보다 더 많은 돈을 줬으니 이보다 더 꿀일 수가 없었다.

주 20시간 제한이 있긴 했지만 꽉 채워서 일하면 2015년 기준으로도 한 달에 6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배정받은 곳은 컨테이너가 아니라 아예 휴게실이 넓게 있던 공간이라 정말 쾌적하게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도서관도 좋았지만, 여기 근무장소도 너무 좋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근로장학생들도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근로 시간이 아님에도, 찾아와서 다른 장학생들과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많았던 걸 보면.

1학년은 몇 명 없었고, 대부분은 2~4학년들이 많아서 나는 조용히 근무했다.


그때의 나는 필요이상으로 조용하면서도 성실하고 도덕적이었다.

몇몇 학생들, 특히 3~4학년 되는 선배들은 부정 근로(근무시간에 없었지만 근무한 척)를 하거나, 늦게 도착하거나 빨리 나가는 등의 행위들을 했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요령을 부리거나 불성실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하지도 않는 청소나 기타 잡무까지 도맡아서 했다.


그럼에도 너무 여유로웠고, 그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데도 돈이 쑥쑥 들어온다니.

나는 즐겁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근로장학생 생활 외에, 내 학과생활은 1학기와 비슷했다.

내 성적이 어느 정도 공개되고 나자, 시험기간이나 과제 관련해서 동기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 게 1학기와 좀 차이가 있었지만.


공강시간에 같이 공부를 하자거나, 아니면 밥을 먹자고 하는 애들도 생겨났지만, 나는 그 시간을 다 근로장학 시간으로 채웠기 때문에 어울릴 수 없었다.

뭐, 근로시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어울릴 생각은 없었지만.

근로장학과 강의 시간으로 다 채운 내 시간표는 직장인과 비슷한 9 to 6의 시간표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도 근로장학 시간에는 거의 대부분 공부를 하거나 책만 읽었으니 실제로는 그렇게 힘든 느낌은 아니었다.


이렇게, 2학기도 정보전산실에서 근무하게 된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장학생들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고, 그저 묵묵히 공부만 했던 나는 당연하게도 시험을 잘 볼 수밖에 없었다.

몇몇 과목은 오히려 너무 압도적으로 시험을 잘 봐버렸다.

평균이 40~50점대였는데 나는 90점 이상을 받아버렸으니 말이다.

심지어, 어떤 교수님은 내 시험지를 먼저 채점한 후 다른 학생의 시험지를 채점하시기도 했다.

채점이 끝난 시험지를 나눠주시는 교수님도 계셨는데, 100점으로 1등을 차지한 내 시험지가 공개되자, 동기들이 나를 신기해했다. 그럴 법도 한 게, 남자들은 대부분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다 보니 2학기때는 더욱 공부를 안 하고 놀던 때니까.

내 동기 남자애들은 좀 열심히 하는 애가 그나마 70점 이상이었고, 다른 애들은 50점도 안 되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 혼자 100점을 받아버렸으니, 중간고사가 끝난 10월 말부터 동기들이 더욱 과제와 시험공부를 물어보기 시작해서 귀찮아졌다.

그냥 성적이 좋으니까 친한 척하는 애들도 있었고, 과제를 그냥 베끼고 싶어 하는 애들도 많았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넘겨준 적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순진하게 행동한 게 좀 아쉽긴 하다.

그래도, 그냥 같이 밥 먹거나 피시방도 다니자는 느낌으로 친근하게 구는 애들도 많았다.

물론, 나는 전부 다 거절했지만.


중간고사가 끝나고도, 내 생활은 너무나 단조로웠다.

9 to 6의 시간표를 묵묵히 지키면서 꾸준히 공부를 하였다.

다른 학생들과는 어떠한 교류도 하지 않았고, 같은 근로장학을 하는 형들 몇 명과는 친분을 쌓긴 했지만 따로 놀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 2학기도 아무런 추억 없이 지나가버렸지만 한 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올 A+을 받은 성적이었다.

중간고사도 압도적이었고, 기말고사도 비슷하게 잘 봤기에 올 A+을 확신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성적표를 받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비싼 등록금도 이 정도면 전액 장학이 되었을 거고, 다음 학기도 정보전산실 근로장학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 생각해야 했다.

1학년이 끝나고 곧 21살이 된 나름 튼튼한 대한민국의 남자가 해야 할 일.

그렇다. 나는 군대를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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