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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예상과는 달랐던 대면 수업

나는 도대체 무얼 기대한 걸까?

by Nos

코로나가 점점 잠잠해지면서, 대학도 수업을 대면 수업으로 바꿔갔다.

사실, 이미 은연중에 다들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비대면으로 인해 발생하는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 저하와, 각종 부정행위나 비리 같은 행위 때문에 대면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수업마다 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은 약간씩 차이가 났다.

학생을 절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대면으로 강의실에서 띄엄띄엄 앉아 수업을 듣고 나머지 절반은 온라인.

아니면, 그냥 한 번은 대면 나머지 한 번은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등 교수님마다 성향이 달랐다.


뭐가 됐든 간에, 나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노트북 화면에서 벗어나 대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것이 즐거웠다.

없어졌던 공부 의욕도 다시 되살아났다.

온라인으로 듣는 대학 수업은 가상현실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사람은 직접 현실의 공간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대면 수업이 진행되기 일주일 전, 나는 모처럼 부족한 생활비를 탈탈 털어 옷도 샀다.

옷이라 해봐야 별 거 없는 반팔티였고 수업은 딱딱한 공학 수업이었지만, 소풍을 가는 초등학생처럼 설렜다.


하지만, 내 설렘과 달리 현실은 더 차가웠다.




그 당시의 내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성격이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내향인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가 더 편했다.

성격은 환경에 따라 또 바뀌기도 한다지만,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는 동기들과 어울리기보다 도서관만 다녔던 내가 외향적으로 변했을까?

나는 오히려 어린 시절보다 더 심해졌다. 그냥 혼자 조용히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된 사람이었다.


이런 나의 성격에, 편입생인 입장까지 합쳐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렇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첫 대면수업이 진행되면서, 강의실 문을 열 때의 설렘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미 친해진 무리들끼리 모여 앉는 것은 당연했다.(물론 한 칸씩 건너뛰어 앉았지만)

나는 그저 구석에 혼자 앉아 강의를 듣게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당연.


강의가 끝나자, 오랜만에 모인 재학생 무리들은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으러가 거나, 놀러 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 무리에 당연히 끼일 수 없었고, 그냥 조용히 자취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인과의 흐름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냥 모든 게 실망스러웠다.

자취방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컵라면을 먹으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지 않았나? 난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한 거야?'

'애초에 먼저 말 걸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말 걸고 싶을 만큼 호감 있는 외모도 아닌데 자기 객관화도 못해?'

'너 그냥 학벌 높여서 취업하려고 편입한 건데, 취업준비나 해야지 뭔 대학라이프야? 이미 그 청춘생활은 끝났어.'


결국, 대면수업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방에서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대면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학우들을 한 번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뿐.

학교 도서관이 개방됨에 따라, 도서관의 자습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거 말고는 내 생활에 달라진 점이 없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대면 수업만 진행되면 마법처럼 모든 게 잘 풀릴 거라 착각했던 것이다.

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그렇게 말을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재밌게 대학생활을 하는 라이프가 시작될 것이라 생각했던 나 자신.

너무나도.. 우습고 한심했다.


강의실만 잠깐 갔다 오고 다시 좁은 자취방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는 나 자신을 다시 인지하자, 세상 모든 게 갑자기 부질없게 느껴졌다.

난 도대체 뭘 기대한 걸까? 먼저 다가가도 모자랄 판에, 혼자 가만히 앉아있는데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가당키나 한가?


생각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현재의 나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고 우스워졌다.

그 우스움이.. 점점 심해지자,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자신에 대한 경멸감과 혐오, 모멸감 등이 가득 차서 뱉어내기 위한 웃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발작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웃고 나자, 이번에는 온몸이 아플 정도로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울음까지 다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도 텅텅 빈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여름이 거의 다 끝나가고, 가을이 다가오는 선선한 계절의 일이었다.

청춘의 한가운데에 머물러있던 25살의 나였지만, 나는 그 시절에 세상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다.




사람의 웃음은 꼭 기쁠 때만 터지지 않는다.

슬플 때도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방어기제에 가까운 웃음이 나온다는 걸 25살에 알게 되었다.

왜 드라마에서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지 몰랐는데, 그 웃음은 진통제였다.

나는 그 진통제를 주기적으로, 스스로 처방하면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2학기는 역시, 내 기대와는 정반대방향으로 흘러갔다.

그저 강의만 듣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게 끝.

대면 수업을 하게 되면서 바뀐 점은 그저, 노트북 화면이 아니라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게 끝일뿐.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혼자서 밥을 먹고 집에서 혼잣말을 하며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공부 의욕은 당연히 다시 꺼져버렸고, 나는 다른 가상현실로 도망쳐버렸다.

그 세계는 드라마나, 만화,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였다.

그때 내가 본 세계들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1.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를 그려낸 이야기.

2.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웃고 떠드는 이야기.


내가 만족하지 못한 현실을 즐기는 주인공들을 통해, 내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채우려 하다 보니 저런 작품들만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 조차도 결국 공허하고 허탈함을 느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작품들을 읽었다.

1. 나처럼, 혼자 틀어박힌 주인공 이야기

2. 고독과 외로움에 사무쳐 사람들을 기피하는 주인공의 일상


지금에서야, 현실에서 도망쳐서 틀어박히기보다는 현실에 맞서는 게 옳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한심하고 우습기도 했던 그때의 나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안쓰러운 나 자신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방구석에서 참 많이도 울고, 웃으면서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과 겨울의 계절이 왔지만, 나는 방구석에서 혼자 미지근한 여름을 보냈다.

체력은 제일 넘치던 시절이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침대에 누워서 참 많은 시간을 흘렸다.


나의 편입 첫 해는 결국, 고독과 외로움을 학습한 해가 되었다.

학점은 1년 통틀어서 3.3 정도로 다소 아쉬운 평점을 받으며 마무리되었다.

어떤 사람도 만나고, 대화조차 못해본 채 내 1년은 그렇게 끝이 났고, 차가운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고독했던 겨울 속에서,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까지의 이야기 흐름으로 보았을 때, 나는 완전히 무너져서 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차가운 겨울 속에서 다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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