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학 리뷰

간병의 슬픔을 다룬 소설 <페퍼민트> 후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

by Nos

INTRO


우리의 행복한 일상은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기 쉬운 아슬아슬한 유리창 위에서 유지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나와 가족이 건강하고, 학교/직장 생활이 평탄하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는 생활이 유지되어야만 이 상태가 유지되니까요.


이 모든 일상이 위협받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게 되는 상황입니다.

'간병'을 하게 되면 평온한 한 가족의 일상도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에 처하게 되죠.


이 지독한 슬픔과 불행은 차마 대중매체에서는 다루기 어려운지, 메인주제로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 불편함과 슬픔은 소설로도 잘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용감하게 소설로 그려낸 것이 바로 <페퍼민트>라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줄거리


시안이라는 열아홉 소녀는 그녀의 아버지와, 간병인 최선희와 함께 어머니를 간병하며 살아갑니다.

소설에서는 프록시모라는 전염병이 돌아서 어머니가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가 되거든요.

언젠가는 깨어날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시안.


어느 날 시안은 해원의 오빠 해일과 마주칩니다.

해원은 프록시모라는 전염병을 널리 퍼뜨린, 슈퍼 전파자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병을 퍼뜨린 해원이, 멀쩡하진 않지만 가족끼리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시안은 복잡한 감정에 빠져듭니다.


그 감정의 혼돈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더 갈등의 고조에 이르며 시안의 감정은 혼란스러워져 갑니다.

이야기의 주요 초점은 시안의 복잡한 감정에 포커스를 맞춘 채 이어져가네요.


책 속의 문장들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서 모든 마음을 다 받고 자랐다. 염려, 걱정, 사랑,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 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때, 기저귀를 갈 때, 우유를 먹일 때.


시안이 어머니를 간호하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 중 하나네요. 어머니는 나를 키울 때에, 그 어떤 시간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모든 것을 바치셨을 텐데 정작 딸인 나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시간을 낭비라 생각하는 죄책감.


간병을 하게 되면 수많은 힘듦과 어려움이 다가오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죄책감이 아닐까 싶네요.

이제는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것을 되돌려줄 시간인데, 왜 이 반대는 이토록 힘들고 가슴 아픈지.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 아빠가 썩든 내가 썩든 누구 한 명이 썩기 시작하면 금방 두 사람 다 썩을 것이다. 오염된 물질들은 멀쩡한 것들까지 금세 전염시키니까.


간병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가족의 모습을 축축하게 잘 표현한 문장이네요.


어머니는 식물인간 상태로 잠깐 고여있지만, 삶의 일부를 계속 차지하고 있기에 흘러넘칩니다. 그 물은 아쉽게도, 깨끗한 물이 아닙니다. 고여있던 썩은 물이 그렇게 넘쳐흘러 가족의 삶을 적시면.. 금방 썩은 내가 나고 곰팡이가 피겠죠.


시안과 시안의 아버지. 둘 중 하나가 끝내 그 물을 견디지 못하고 썩어버리면.. 금방 다른 사람도 썩어버리고 말 겁니다. 둘이라서 그나마 같이 의지하며 버텨온 것이지, 누군가 하나가 무너지면 금방 다른 하나도 무너질 테니까요.


END


대중매체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족 중 누군가 아파서 간병을 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을 겁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아쉽게도 그 정도 여유를 가진 이들은 많지 않겠죠.


내가 사랑하는 가족임에도, 그 가족의 아픔이 나를 힘들게 하여 생기는 온갖 복잡한 감정들.

그 감정 속에서 사람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무너져 가는지, 또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디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바라게 된 소설

<페퍼민트>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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