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대행 예약 - 통보편

대신 퇴사통보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by Nos

"야, 여기 퇴사대행사가 진짜 일 처리 최고야. 너 깜짝 놀랄걸?"

"그래? 비용은 얼마 정도인데?"

"음.. 기본 20만 원에서 시작하고, 네가 추가하는 옵션에 따라 가격이 좀 달라져. 정확한 건 상담하면 알게 될걸."

"생각보다 비싼데? 그 정도 값어치 하냐?"

"어. 무조건. 나 이거 덕분에 아주 깔끔하게 퇴사했잖아."


통화를 마친 진우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그도 역시 퇴사를 고민 중이었다. 퇴사를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할 때마다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가장 힘든 것은 역시 퇴사 의사 표현이었고, 그 뒤의 자잘한 인수인계도 귀찮았다. 솔깃한 진우는 친구에게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캐물었다.


"근데, 어차피 퇴사 통보 후에 출근도 해야 하잖아? 통보 하나만 해주는데 그렇게 비싸?"

"통보 후에, 사직 관련 절차나 회유, 설득 등등의 공격도 전부 방어해 줘. 말하자면, 중간다리 역할인 셈이지."

"헐, 왜 이렇게 싸냐?"


진우는 친구에게 더 캐묻기 시작했다. 들을수록 괜찮았다.

돈이 약간 아깝기도 했고, 뭔가 비겁한 느낌도 들긴 했지만 그래도 편리해 보였다. 친구의 얘기를 듣던 진우는 반신반의하며 연락처를 받았다.


친구와 헤어진 다음 날, 진우는 회사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사업 확장으로 진우의 업무가 더 늘어난 것이다.

부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우가 싫어하는 웃음이었다.

"진우, 네가 현재 중간다리로서 역할이 아주 중요해. 밑으로 후배들도 잘 챙기면서 사업 잘 이끌어줘."

"하하, 네 알겠습니다."


진우는 긴가민가 하던 마음을 확실히 정했다. 아, 진짜로 퇴사를 해야겠구나. 이미 업무가 많아서 야근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다가 업무가 더 추가적으로 주어진다고? 딱히 더 나은 보상도 없이?

일을 더 많이 하고, 회사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간다고 해서 진우에게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성과급을 따로 받기는 하지만, 그거 하나로는 의욕을 이끌어내긴 역부족이었다.


더 많은 일을 수행하고, 매출액이 늘어난다고 해서 진우에게 좋은 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미한 연봉 상승과, 상사의 신뢰 같은 것은 아무리 따져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경력도 괜찮게 쌓였고 헤드헌터에게서 연락도 간간이 오던 진우는 본격적으로 이직을 하기로 했다.

진우는 어제 저장해 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두세 번 울리던 착신음 뒤로, 친절한 상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상담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퇴사 대행 서비스 맞나요?"

"네 맞습니다. 고객님. 퇴사 대행 예약 때문에 전화 주셨을까요?"

"헉. 예약이 필요한가요? 내일 당장 이용 가능할까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예약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서비스인가?


"네, 지역이나 대기 인원에 따라 예약이 필요할 수도 있어서요. 언제쯤 원하시는 걸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저는 당장 내일 사용할 예정이었거든요."

"음.. 내일이면 조금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고객님. 우선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알아봐 주시고 혹시 문자로 간단하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진우는 근무시간 중에 짬을 내어 나온 것이라, 다시 들어가 봐야 했다.

"알겠습니다 고객님. 문자로 최대한 빠른 일정 가능 여부 알려드리겠습니다."


1시간 뒤, 진우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이번 주 금요일에 가능합니다. 원격 및 대면이나 추가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오니, 설명서를 읽어보신 후 추가 회신 부탁드립니다. 계약금 입금 후, 서명해야 할 필수 서류와 관련 내용 추가적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영업시간은 20시까지이니, 편하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금요일이면 이틀 뒤였다. 진우는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딘가 싶었다.

진우는 약간 들뜬 마음으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야근해야 할 업무량이었지만, 급한 것만 빨리 끝내고 퇴사 대행 상담을 해야 했다.

퇴사를 마음먹는 순간부터, 갑자기 마음이 초연해진 탓일까? 진우는 생각보다 빠르게 업무를 끝낼 수 있었다.

"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어~ 진우야.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네?"

"네, 오늘 뭔가 집중이 안 돼서요."

"흠.. 엄청 집중해서 잘하던데.. 알겠어, 이만 들어가 봐."

괜히 한 소리 하는 부장님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진우는 다시 통화했다.

"여보세요. 아까 전화드렸던 김진우라고 합니다. 몇 가지 더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금요일에 예약하신 분 맞으시죠? 무엇이 궁금하실까요?"

"아, 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면 절차가 어떻게 되나 싶어서요."

"말 그대로, 저희 쪽에서 인력이 파견되는 형식입니다. 보통, 오전 중에 가서 퇴사 의사를 통보하고, 이후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가는 편입니다. 물론, 최대한 의뢰자의 요구를 반영하려는 편입니다."

"아하, 대면 서비스가 좀 더 비싼 거죠?"

"네, 아무래도 출장비나 서비스 비용이 좀 더 올라가는 편입니다. 기본 요금에 10만 원 이상 추가되는데 괜찮으실까요?"

그러면, 30만 원까지 가격이 뛰는 편이었다. 퇴사 통보 하나로 이 정도 지출은 좀 쓰린 돈이긴 했다.

하지만, 부장의 얼굴을 떠올린 진우는 30만 원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네, 괜찮습니다. 이용하겠습니다."

"네, 고객님 그러면 바로 계약서와, 위임장 등 서류 보내드리겠습니다. 작성하신 후 보내주시고, 계약금은 입금 부탁드리겠습니다."

"네네, 제 요구사항은 어떻게 전달드리면 될까요?"

"보내드린 서류에 체크하는 란이 있습니다. 다 작성하시고 보내주시면, 저희 쪽 파견원이 전화해서 상담 후 조율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30분 뒤, 진우의 이메일로 관련 안내문이 왔다. 각종 서약서와 서류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이런 서비스가 다 있구나. 진우는 서류를 뒤적거리며 요구사항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음.. 어디 보자, 최대한 빠른 퇴사일자 요구, 이직확인서 요청, 사직원 서류 대리 전달, 경력증명서 발급..'

진우는 필요사항을 체크 후 회신했다.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한 진우는 바쁘게 회사 업무를 시작했다. 진우의 딴 맘을 어떻게라도 안 것인지, 업무가 정말 휘몰아쳤다. 각종 서류 작성과 고객사 응대를 깔끔하게 처리한 진우에게, 후배가 말했다.

"와.. 진우 대리님 아니면 저희 부서 어떻게 돌아가려나요."

"뭘, 시간 지나면 다 알아서 하게 되어 있어."


이제 막 업무에 적응하기 시작한 후배를 보며, 진우는 마음이 쓰라렸다. 본인이 사라지면, 업무 부담은 모두 이 후배가 대부분 받게 될 것이다. 똘똘하고 눈치도 빠른, 에이스 기질이 있는 후배의 모습에 얼핏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후배에겐 미안하지만, 또 후배 덕분에 부담이 덜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후배를 걱정하던 진우는, 순간 자기가 뭐라고 이런 것까지 걱정하나 싶었다. 어차피, 회사 생활은 다 그런 것이다. 본인이 없어도 잘 굴러가게 되어 있다.


시간은 어느덧 퇴근을 앞둔 오후 5시 30분이 되었다. 진우의 핸드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진우는 퇴사대행사에서 온 전화임을 직감했다.

전화기 너머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우 선생님 되실까요? 저는 내일 퇴사 통보의사를 대신할 김대리라고 합니다."

"아, 네 맞습니다."

이름이 김대리인 것은 닉네임인 것일까, 아니면 진짜 본명일까. 진우는 궁금했지만,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기로 했다.

"작성해 주신 서류, 요청사항 다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퇴사 일자인데, 최대한 빠르게 퇴사 원하시나요?"

"네, 웬만하면 빠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근데, 보통은 한 달 걸리는 건 다 알고 계시죠? 제가 최대한 빠른 일자로 잡아보겠지만 한 달 정도는 각오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진우는 한숨을 쉬었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서도 한 달이나 다녀야 한다니. 보통, 한 달 전 통보가 의례이긴 하지만, 진우는 그 한 달이 얼마나 힘든지 이미 경험상 알고 있었다.


"혹시, 더 빠른 경우는 없었나요? 한 달이나 다니기는 너무 긴 거 같아서."

"음.. 빠르게 나가는 케이스가 없었던 건 아닌데, 그렇게 좋은 케이스는 아닙니다."

진우는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싸우고 나서 그냥 바로 자리를 뜨는 거겠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던 진우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죠."

김대리는 잠깐 헛기침을 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퇴사 사유는 무엇으로 말씀드릴까요? 보통 저희가 이 경우까지 다 답변을 해드려야 하는 거라."

"이직한다고 해주세요."

진우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이직할 수 있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네, 그 편이 제일 깔끔하죠. 그러면, 내일 오전 10시에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대리는 더 말할 게 없었는지, 전화를 끊어버렸다. 진우는 내심 불안했다. 이 정도면 된 건가?

하긴, 퇴사 통보가 가장 큰 일이고, 나머지는 또 본인이 해야 할 일이니 더 논의할 것도 없을 것이다.




다음 날, 오전에 출근한 진우는 내내 긴장이 되었다. 김대리는 어떻게 들어와서 통보를 하는 거지? 그 이후에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뭘까? 급하게 아침부터 보고서를 작성하던 진우는 어느덧 10시가 다 되었음을 깨달았다. 다들 일을 한다고 바빠서, 사무실은 정적이었다. 약간은 숨 막힐 정도의 분위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진우는 무르고 싶어졌다. 오늘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하루를 더 미룰 수는 없나? 갖가지 고민이 들 때쯤, 또각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큼지막한 검은 뿔테 안경에 회색 정장까지 차려입은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진우네 회사의 캐주얼한 차림과 비교하면 너무 이질적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진우의 모습과 정말 대비되는 그 남자는, 누가 봐도 김대리였다.

"혹시, 김진우 씨 있을까요? 업무 미팅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전화기로 들었던 굵직한 목소리. 정장 차림의 모습까지 보니 진우는 신뢰가 확 섰다.

"앗, 이쪽으로 오시죠."


이런 식이었구나. 진우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파악이 됐다. 김대리를 남는 회의실 안으로 안내한 진우는 맞은편에 바로 앉았다.

"안녕하세요 김진우 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어제 전화드렸던 김대리입니다. 가끔, 분위기가 안 좋을 때가 있어서 이렇게 업체 미팅 느낌으로 방문하는 점 미리 얘기를 못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어우 괜찮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섬세하게 서비스해 주셔서 저야 감사하죠. 안 그래도 분위기가 그렇게 좋진 않아서, 조금 타이밍을 보려던 참입니다."

"네네, 제가 여기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을 테니, 진우 님이 상황 보시고 사직의사 통보할 분을 데려와주세요. 업무 미팅 때문에 와달라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김대리는 노트북까지 꺼내서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했다. 꽤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진우는 마음에 들었다. 이런 쪽으로 꽤나 잔뼈가 굵은 느낌이었다.


진우는 회의실에 나와, 본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숨 막히는 사무실이었다. 부장은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딱히 바빠 보이진 않았다.

"어, 진우야. 업체 미팅 온 거 같던데, 나도 가봐야 되니?"

부장이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절호의 기회였다.

"아, 네 부장님. 신사업 아이템 발굴 차 연락드렸던 업체인데, 한 번 들어보시죠."

"그래? 알겠어."


부장은 할 일이 없었는지, 수첩 하나와 펜을 들고 회의실 안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진우의 심장은 별안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진우는 회의실로 향하는 부장의 뒷모습을 흘겨봤다. 오늘따라 유독, 덩치가 커 보였다.


거침없이 걸어가던 부장이 벌컥 회의실 문을 열었다.

"어~ 안녕하세요. 명함부터 교환할까요?"

능글맞은 부장의 목소리를 뒤로, 회의실 문이 닫혔다.

진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회의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부장이 문을 벌컥 열어 소리를 지르기까지는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김진우 씨! 잠깐 회의실로 와보세요."

갑작스러운 함성에 사무실 사람들은 부장과 진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자 직원은 깜짝 놀라 작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올게 왔구나. 진우는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김대리가 말했다.

"진우 씨. 안 오셔도 됩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화가 잔뜩 난 부장의 시뻘게진 얼굴 뒤로, 김대리가 보였다.

김대리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화가 좀 난 게 분명했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저랑 이야기하시죠 부장님."

김대리는 활짝 열린 회의실 문을 다시 닫았다.

콰이앙.

닫힌 회의실 문 너머로,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진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진우는 그제야, 사무실 사람들이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하루, 굉장히 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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